빙하기 친구들이 돌아왔다. 지난 6월6일 미국 LA에서는 <아이스 에이지3: 공룡시대>의 시사회와 기자회견이 열렸다. 각각 2002년, 2006년 개봉한 전편들의 세계적인 흥행 성공에 힘입어 3년 만에 만들어진 속편은 야심적인 3D CG 애니메이션이다. 일단 시작은 좋다. 지난 북미지역 박스오피스에서 독립기념일 연휴(7월3~5일)에 절대 강자로 인식되던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과 더불어 공동 1위를 기록했기 때문. 과연 한국에도 서늘한 바람을 불러올 수 있을까. 기자회견에는 레이 로마노, 퀸 라티파, 존 레기자모 등 변함없는 목소리 연기자들 외에 공동감독인 카를로스 살다나와 마이클 서마이어가 참석했다.
<아이스 에이지3: 공룡시대>(이하 <아이스 에이지3>)는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간다. 왜냐하면 빙하기와 더불어 사라졌다고 생각한 공룡들을 등장시키기 때문. 그러니까 <아이스 에이지3>는 <아이스 에이지>와 <쥬라기 공원>의 만남이라고 보면 된다. 2편에서 얼음이 녹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이겨낸 맘모스 부부 매니(레이 로마노)와 엘리(퀸 라티파), 그리고 변함없는 친구들인 나무늘보 시드(존 레기자모)와 검치호랑이 디에고(데니스 리어리)가 다시 모였다. 2편에서 밀고 당기는 사랑 싸움을 계속했던 매니와 엘리는 이제 아기 맘모스 탄생 준비에 호들갑이고, 소외감을 느끼던 시드는 자기도 가족을 갖고 싶단 욕심에 그만 동굴에서 공룡알 세개를 훔치고 만다. 매니와 형, 동생 같은 관계라고 생각했던 시드는 매니가 새로운 가족에 자신을 일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매니는 시드에게 알을 돌려줘야 한다고 설득하지만 시드는 자기가 키울 거라고 고집을 피우고 곧 세 마리의 귀여운 아기 공룡이 알에서 깨어난다. 아기 공룡들은 즉각 시드를 엄마로 받아들이지만 진짜 엄마인 거대한 공룡 티렉스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결국 이들을 발견한 티렉스는 그들 모두를 함께 데리고 산다.
지하 공룡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 대형 사건으로 인해 시드는 위험에 처하게 되고 친구들은 그를 구하기 위해 얼음 아래 미지의 야생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공룡들의 광활한 세계가 지하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 지나가는 곳마다 거대한 공룡들의 위협이 도사리는 숲에서 이들은 무자비한 공룡 사냥꾼인 애꾸눈 벅(사이먼 페그)을 만나게 된다. 지하세계 최고, 최대의 공룡 ‘루디’와 사투를 벌인 경험이 있는 그는 마치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양 그들을 돕겠다고 나선다. 마치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처럼 어딘가 정체불명의 위험한 캐릭터인 그와 함께 3편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액션은 <쥬라기 공원>과 <진주만>의 결합
지난 6월6일 <아이스 에이지3> 시사회가 열린 할리우드의 명물 만 차이니즈 시어터 앞이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 시사회에서 저마다 입체안경을 손에 든 아이들의 표정은 부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아이스 에이지>의 새로운 시리즈이기도 하거니와 시리즈 중 처음으로 시도된 3D 입체영화이기 때문이다. 자기 몸집만한 팝콘 박스를 안아든 아이들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눈앞, 코앞까지 펼쳐지는 영상 효과에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캐릭터 ‘스크랫’(도토리에 목숨 건 선사시대 다람쥐와 쥐의 중간 형태)이 긴 코를 스크린 밖으로 쑥 내밀 때 움찔했고, 3편에 처음으로 모습을 비추는 스크랫의 어여쁜 파트너 스크래티가 등장하면서 극장 가득 온통 꽃가루가 날리자 아이들은 손으로 꽃가루를 잡으려는 듯 팔을 내밀어 허우적댔다. 디에고가 먹잇감을 쫓다 놓치고는 헉헉대는 장면, 시드가 요리조리 도망다니는 공룡알을 잡으려는 장면 등 3D 효과가 주는 액션신의 긴박감은 상당했다. 정글을 헤치며 바위와 용암이 부서지고 흘러내리는 가운데 공룡들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지자 그 효과는 최고조에 달했다.
시리즈 중 처음으로 3D를 시도한 제작진의 의도는 꽤 성공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캐릭터가 더해지는 가운데 시각적으로 뭔가 좀더 강렬한 것이 없을까 하는 가운데 3D를 떠올렸다”는 게 카를로스 살다나 감독의 얘기다. “액션신에서의 강렬함만큼은 분명 만족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실제로 <아이스 에이지3>는 전편들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액션신들을 선보인다. 요약하자면 ‘<쥬라기 공원>과 <진주만>의 결합’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티렉스와의 대결을 비롯해 기분 나쁜 무수한 벨로시랩터와의 대결은 누가 봐도 <쥬라기 공원>을 연상시키고, 익룡들이 펼치는 추격전은 마치 2차대전 전투기들의 스피디한 공중전을 보는 것 같다. 이전 2편까지 빙하기의 공간 자체가 다소 딱딱하고 차가운 면이 있었다면 3편에 등장하는 열대우림 같은 초록의 지하세계는 그러한 화려하고 실감나는 액션신들을 가능하게 했다. 심지어 빙하기 세상에서 덩치가 제일 컸던 매니가 이곳 공룡들 세상에서는 무척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이스 에이지3>의 가장 큰 야심이 바로 거기 있다. 카를로스 살다나는 “<아이스 에이지3>는 세편 중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빙하기와 해빙기밖에 모르는 주인공들을 감당할 준비가 안된 세상 속으로 밀어넣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의 팬이라면 캐릭터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재밌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오프닝에 등장하는(예고편으로는 이미 등장했던) 스크랫과 스크래티의 사랑과 다툼이다. 루 롤스의 감미로운 목소리의 클래식 <You’ll Never Find Another Love Like Mine>에 맞춰 탱고를 추는 둘의 오프닝부터 뭔가 예사롭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아이스 에이지3>는 시리즈 중 가장 변화의 폭이 큰 작품이다. 시리즈의 무게중심인 매니와 엘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부모 되기 준비에 돌입한다. 특히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매니는 아버지가 되면서 묘하게도 목소리 연기를 맡은 인기 코미디언 레이 로마노와 닮게 됐다. 그의 출세작인 TV시트콤 <내 사랑 레이몬드>에서의 레이몬드와 가장 비슷한 모습이 3편에 있다고나 할까. 1편의 매니가 어딘가 거만한 모습이었다면 2편을 거치며 다소 원만한 성격으로 바뀌어갔고 3편에 이르러서는 새 생명의 탄생에 무척이나 호들갑을 떨면서 레이몬드 같은 ‘쪼잔한’ 성격까지 보여준다.
매니의 ‘절친’ 디에고와 시드도 변화에 직면한다. 디에고는 사슴을 쫓다가 숨을 헐떡거리는 자신을 보며 충격에 빠진다.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며 야수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혼자서 살아갈 궁리를 하게 된다. 시드는 그보다 더해서 아예 스스로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물론 덜렁거리는 성격과 따뜻한 심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예 자기 몸집보다 큰 공룡알들을 들고 다니며 자기만의 가족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었다. 시드는 브로콜리로 식사를 마련해주지만 아기 공룡들은 그 냄새를 못 견뎌한다. 고기가 먹고 싶은 것이다.
새 캐릭터 애꾸눈 벅이 이끄는 모험담
눈여겨볼 캐릭터는 바로 새로이 등장한 애꾸눈 벅이다. 어쩌면 그로 인해 다른 캐릭터들의 비중이 줄었다고 해도 될 만큼 맹활약한다. 과거 무시무시한 거대 공룡 루디와 운명적으로 마주쳤던 그는 루디의 이빨을 챙겼고, 대신 자신의 눈을 잃었다. 그의 목적은 오직 루디를 만나 복수하는 것인데, 마치 소설 <백경>에서 무모하게 모비딕을 쫓던 복수의 화신 에이허브 선장과도 같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아이스 에이지2: 해빙기>에 처음 등장했던 말썽쟁이 주머니쥐 형제 크래쉬와 에디는 그런 벅에게 바로 충성을 맹세할 정도다. 특히 벅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와 <뜨거운 녀석들>(2007)로 주목받은 영국 출신 사이먼 페그다. 올해 <스타트렉: 더 비기닝>에도 출연하는 등 탁월한 코미디 감각을 지닌 그는 <아이스 에이지3>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마치 악당처럼 등장했던 그가 매니, 디에고, 시드와 힘을 합쳐 지하세계를 누비는 광경 그 자체가 <아이스 에이지3>의 전부나 다름없다. 이처럼 <아이스 에이지3>는 전편들의 기대치를 그대로 만족시키는 작품이자, 전편들을 압도하는 롤러코스터 액션영화이면서, 전편들과 비교해 가장 색다른 느낌의 가족영화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