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이 죽일놈의 인연
2009-07-21
글 : 주성철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김재원 감독의 <닿을 수 없는 곳> 촬영현장

“기억도 안 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요!” 진섭(최현)은 부양 의무자인 어머니가 6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경우, 그러니까 동생은 다섯살에 불과하고 어머니는 경제활동이 힘들 정도로 아픈 상태라 진단서 끊어다 제출만 하면 군 면제를 받게 될 줄 알았더니 듣도 보도 못한 아버지란 작자가 나타나 그냥 군대에 가게 생겼다. 가족 버리고 집 나간 지 10년도 넘었건만 이혼이나 재혼, 혹은 사망한 게 아니기 때문에 ‘서류상’ 존재하는 아버지라 해도 그로 인해 진섭은 이제 면제를 받을 수 없다. 면제와 입대라는 게 하늘, 땅보다 더 큰 차이일진대 진섭은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아버지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할 수밖에 없다.

지난 7월11일, 모 대학 학과 사무실이 병무청 민원실로 탈바꿈했다. 진단서만 있으면 면제될 거라 믿었던 청년이 날벼락 같은 얘기를 전해 듣는 것. 무더운 여름 촬영현장, 밀폐된 공간의 갑갑함이 그대로 그 얼굴에 새겨지는 것 같다. 수많은 연극영화과와 엔터테인먼트사를 수소문해 오디션을 보고 최종 캐스팅한 진섭 역의 최현은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실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때 묻지 않은 21살 사회초년병”으로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 같은 마스크를 찾다가 발굴해낸 연기 지망생”이다.

‘고통의 나날들을 통과하는 청춘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김재원 감독의 <닿을 수 없는 곳>은 올해 ‘코닥 단편영화제 제작지원 프로그램’ 중 한편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달콤한 인생> <외출> <행복> <김씨표류기> 등 수많은 상업장편영화에서 현장편집으로 경력을 쌓고, 지난 2006년 <유년기의 끝>으로 서울독립영화제 코닥상을 비롯해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던 그는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이름이다. <닿을 수 없는 곳>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질기고도 질긴 ‘인연’의 드라마이자, 한 소년이 드디어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성장’의 기록이다. “장마로 인해 마지막 8회차 촬영이 무려 3주나 계속되고 있다”는 이 작품을 올해 여러 영화제를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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