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는 시나리오]
[뒤집는 시나리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2009-07-29
글 : 길윤형 (한겨레 기자)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까지…

“선조들이여 이 잔을 내게서 멀리하옵소서. 그렇지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선조들의 뜻대로 하옵소서.”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을 직감한 옵티머스 프라임은 하늘을 바라보며 묵상에 잠겼다. 하늘은 파랗게 드높았고, 스산한 바람이 옵티머스 프라임을 감싼 초합금을 스치고 지나갔다. 날이 밝으면 윤활유가 튀고, 볼트가 꺾이는 대격전이 벌어질 것이었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서글픈 마음이 들었지만, 머리를 흔들어 그의 중추신경을 이루는 메모리칩의 활동을, 접속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엔진 오일과 브레이크 오일을 교체해 임박한 싸움에 대비하려다 포기하고 말았다.

그의 눈에 지구인들은 유약하지만, 잔혹한 족속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도 모른 채 엄청난 대량살상을 저지르곤 했다. 지구인들은 수명이 10년도 안된 자동차들을 압축기로 눌러 폐차했고, 아직 지능이 발달하지 않아 자기 결정권이 없는 전투기와 탱크들을 조종해 서로를 파괴하는 일을 반복했다. 옵티머스 프라임의 세밀한 중추신경은 아직 진화가 덜된 지구산 자동차들의 “살려달라”는 아우성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생물과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는 ‘비생물학적 존재’들을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를 인간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폐차장의 압축기로 들어가면서 현다이는 “살려줘”라고 외쳤고, 지엠은 “오 마이 갓”이라 울먹였다. 기다리던 선조들로부터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기도를 끝낸 옵티머스 프라임에게로 디셉티콘들이 다가왔다. 그와 인간 친구 샘(샤이어 라버프)을 구하기 위해 그의 충직한 제자 범블비는 맹렬한 공격을 전개하는 디셉티콘 한 마리의 머리를 잡아 중추 회로를 끊어내고, 예리한 발차기로 다리에 동력을 보내는 엔진을 파괴했다.

“폭력을 행사하지 마라.” 옵티머스 프라임이 나지막하게 외쳤다. 범블비는 샘을 태우고 디셉티콘들의 공격을 피해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남겨진 옵티머스 프라임을 보며 샘이 눈물을 흘렸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인간의 눈물도 오토봇의 워셔액만큼이나 슬픈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어제 마신 JP-8(미군이 쓰는 항공유)가 평소에 그가 즐겨하던 디젤과 달라 다소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기계들의 배신자.” 디셉티콘의 대장이 옵티머스 프라임의 등을 향해 전자 채찍을 내리쳤다. 엔진에 금이 갔고, 냉각수가 터져나와 땅을 적셨다. 마침내 디셉티콘들은 옵티머스 프라임의 옆구리를 강한 전자 창으로 날카롭게 찔렀다.

“다 이루었다.” 꺼져가는 의식의 끝을 붙잡고 옵티머스 프라임이 서글프게 되뇌었다. 그리고 사흘 낮밤으로 계속된 치열한 접전 끝에 디셉티콘들을 물리친 인간과 오토봇들은 양지바른 언덕 위에 옵티머스 프라임의 엔진을 묻었다. 그리고 옵티머스 프라임의 바람대로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까지 차량 폐차를 금하는 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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