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테이>를 뭐라고 하면 좋을까? 혼돈, 혼란, 모호함. 어떤 말로도 충분하지 않다. 2005년,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대부분의 관객과 평단은 도무지 알 수 없는 플롯에 기겁을 했지만 극히 일부는 환상과 현실이 불분명하게 뒤섞인 독특함에 환호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좋아한 쪽이건 싫어한 쪽이건 공통적으로 인정한 건 영화의 ‘스타일’이다. 뉴욕 고층 건물의 창문과 계단, 불빛을 이용한 장면의 세련된 점프, 슬프고도 몽롱한 화면의 비디오 테크닉, 모던한 리빙룸과 모던한 주방과 모던한 침실이 있는 영화 속 공간, 그리고 주인공 이완 맥그리거의 패션.
의상을 맡은 프랭크 플레밍은 정신과 의사인 샘 포스터 박사(이완 맥그리거)를 위한 옷을 당시 뉴욕 패션계의 새벽별 톰 브라운에게 맡겼다. 1960년대 은행원의 땅콩 같은 머리와 다부진 슈트를 추앙하는 이 신진 디자이너는 그 보답으로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샘 박사의 슈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버튼다운 체크 셔츠와 광택이 없는 모직 검정 타이에 단팥색 카디건을 입고 도톰한 회색 홈스펀 슈트를 입은 샘 박사가 첫 장면에 등장할 때부터 남자 관객은 그게 어디 옷인지 궁금해했다. 밤색 글렌 체크 슈트 안에 흰색 옥스퍼드 셔츠와 남색 카디건을 입고 고동색 니트 타이를 맸을 때도, 발마칸 코트와 겨자색 바지를 입었을 때도 ‘닥터 샘’의 스타일은 새롭고도 새로웠다.
그런데 조합이 신선하긴 하지만 알고 보면 그다지 유별날 것 없는 남자 옷들이 왜 그토록 달라 보였을까? 이유는 아래쪽에 있다. 복숭아뼈가 보이도록 짧게 잘라 한번 접은(턴업) 바지와 투박한 윙팁 슈즈. 모름지기 슈트는 날씬한 검정 구두와 발등을 살짝 스치는 바지 길이가 정석이라고들 믿는 시절에 톰 브라운은 질질 끌고 다니는 게 슈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자의 발목이 얼마나 상징적이고도 섹시한지를 강조했다. 결국, 그 덕분에 이런 양말도 등장한다. 처치스 윙팁 구두 안에 샘 박사가 신은 것은 검정색 발목 양말이다. 급박하게 계단을 뛰어내려갈 때도 나오미 왓츠와 벤치에 앉아 있을 때도, 거실에서 계란국수와 깍지콩을 먹을 때도 이완 맥그리거의 단단한 발목은 휑하니 드러난다.
클래식 슈트 옹호자들이 보면 이런 룩은 ‘맙소사’ 소리가 절로 나는 괴상한 것일 테지만 톰 브라운은 그러거나 말거나, 밀고 나갔다. 결국 2009년, 뉴욕 남자들은 “발목이 보이지 않는 것은 톰 브라운의 바지가 아니다”라는 믿음으로 그의 짤막한 바지를 산다. 그것도 엄청난 돈을 기꺼이 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