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파라다이스 빌라
2001-12-03
시사실/파라다이스빌라

빌라(villa)란 본래 주로 휴가 때 이용하는, 시골에 있는 정원 딸린 저택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한국에서 그것은 그리 크지 않은 다세대 주택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당연히 여러 가구가 살고 있는 그곳을 훑어보면 다양한 인간상들을 살펴볼 수 있다. 최근 들어 특히 서울의 주택가에 늘어나고 있는 ‘빌라’라는 한국적 주거양식을 매개로 삼아 박종원 감독은 동시대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삶의 일면과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욕망의 단편들을 조감하려고 한다.

아마도 서울 강남의 삼성동 어딘가에 있음직한 ‘파라다이스 빌라’에 발을 디디면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몰래카메라 찍기가 취미이자 사업인 고등학생들, 주인집 남자의 섹스 파트너가 돼준다는 조건으로 빌라의 옥탑방에 살고 있는 소녀, 정수기를 팔기 위해 급기야는 옥상 물탱크에 흙을 쏟아붓고 마는 주부, 오래 전부터 다른 사람들 몰래 만나온 펀드매니저와 그 옆방에 사는 피아노 강사 등 여기 살고 있는 이들은 우리 현실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그렇기에 때론 폭력적인 광기를 터뜨리기도 하는 사람들, 그들은 박종원 감독의 전작 <송어>(1999)에서 이미 보았던 것과 같은 유의 인물들이기도 하다. 한-일전 축구 경기가 열리던 어느 여름날, 그렇듯 ‘일상적으로 사악한’ 이들 앞에 인터넷 게임의 사이버 무기를 해킹당해 미쳐버린 한 청년이 찾아온다. 그의 출현과 동시에 빌라는 핏빛 가득한 연쇄살인의 현장이, 즉 ‘파라다이스 빌라’가 아닌 말 그대로 ‘카오스 빌라’가 돼버린다.

<파라다이스 빌라>는 캐릭터들을 시공간상으로 철저히 밀폐시켜놓은 다음(영화는 한-일 축구경기가 열리는 100여분간 동안 파라다이스 빌라에서 일어난 사건들만 보여준다) 그들을 극한적인 공포감에 빠뜨리고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하는 그런 영화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평가했을 때 그런 시도가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빌라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관찰이라기보다 그저 스케치를 한 정도에 그친다는 인상을 주고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나머지 살인마가 되어버린 청년도 인간의 광기를 제대로 보여주기엔 다소 피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을 대략적으로 파악하느라, 그리고 결코 억제하지만은 않은 폭력장면들을 참아내느라, <파라다이스 빌라>를 보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노력이 요구되건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지 못하는 쪽이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antihong@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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