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영화 상업진영에서 가장 촉망받는 감독을 꼽으려면 나카무라 요시히로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신작 <피쉬 스토리>가 여전히 일본 내 상영 중임에도 벌써 차기작 <골든 슬럼버>의 촬영에 돌입한 감독. 지칠 줄 모르는 채산성으로 침체된 일본 상업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제너럴 루즈의 개선> 등 스릴러와 판타지, 시간과 공간을 뒤섞은 독특한 구조의 작품들은 어느 하나 ‘평범치 않다’.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고민할 여지를 주기 위해 ‘너무 친절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그가 관객에게 건네는 대화법이다. 지구 멸망을 중심점으로 록밴드의 노래를 따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신작 <피쉬 스토리> 역시 알쏭달쏭한 ‘퍼즐’을 풀어야 한다. 그 수고가 성가시지 않을 만큼 영화의 짜임새가 신선하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장르적인 특성을 꾸준히 견지한다.
=특별히 장르에 매이기보다는 독특한 전개의 구조를 선호한다. 코믹한 전개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정말 심각한 장면이라면 그런 요소들을 배제하지만 현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좀더 재밌게 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편이다.
-꼬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독특한 구조는 여전하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구조를 선호한다. (웃음) 이 사람이 왜 이렇게 걷는지, 어디에 가는 길이었는지 등의 히스토리를 배우에게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 배우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그게 좋다.
-지구 종말이라는 거창한 주제에도 소심하고 나약한 시민의 활약을 그린다.
=이 영화에는 <20세기 소년>처럼 어떤 그룹이 지구가 멸망할 때 결성되는 히로이즘이 없다. 각각의 인물이 배경을 맡는 책임감의 가벼움이다. 여기에는 ‘개개인은 과연 책임이 없는가?’라는 의문이 깔려 있다.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살아 있는 것의 불가사의함. 무언가를 달성하는 걸 그리는 것보다 내겐 이런 것이 더 흥미롭다.
-결국 지구 종말이라는 테마 아래 일본이 지금 떠안은 문제와 실마리가 엿보인다.
=원작은 지구 종말이 아닌 사이버테러였다. 그렇지만 원작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설정과 예산이 필요했다. <다이하드4.0>처럼 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떨어지고 만다. (웃음) 그래서 차라리 간단명료하게 ‘세계 멸망’이라는 막연한 것으로 해버리자라고 생각했다. 이사카 고타로의 <주말의 풀>(週末のフ?ル)의 설정도 좀 빌려와 각본을 만들어갔다.
-이사카 고타로와는 두 번째 만남이다. 이번 작품은 영화화하기 어렵다는 전작 <집오리와…>의 연출에 대해 흡족해한 이사카 작가가 전폭적인 지지를 해서 만들었다고 들었다.
=이사카에게 또 다른 작품의 영화화를 제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대부분 판권이 팔린 상태였다. 그러던 중 이사카가 먼저 <피쉬 스토리>를 영화화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해왔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사카 작가의 스토리를 즐겨 다루나.
=그의 작품 주제와 내가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굉장히 비슷하다. <집오리와…>에서 이사카는 불온한 일과 힘든 사건들이 연속적인 발생, 그 뒤 세계관의 변화 부분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책을 보는데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겠더라. 이사카는 나와 감각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각본가로 먼저 이름을 알리지 않았나. 그럼에도 원작이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원작이 있건 오리지널 시나리오건 연출을 할 때 다른 점은 거의 없다. 운 좋게 많은 소설의 영화화 제안을 받긴 하지만, 대부분 ‘아, 이거 나도 옛날부터 생각하던 건데!’라고 생각하는 영화화에만 참여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야기다. 어떻게든 이걸 영화화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원작을 만나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작품 활동이 활발하다. 원동력은 무엇인가.
=계속 찍고 싶다. 나 자신이 어떻게 될지, 어떻게 되고 싶은지 등의 일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피쉬 스토리> 촬영 직후 바로 <제너럴 루즈의 개선> 촬영에 들어갔는데, 솔직히 지난해 가을쯤 나 스스로 한계가 보였다. (웃음)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네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고 있더라. 당시에는 이보다 더한 과격한 스케줄은 없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역으로 지금 이 순간을 뛰어넘으면 더이상 무언가가 생겨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게 말이다. 현장이 혹독하기로 정평이 난 최양일 감독의 조감독 시절도 겪지 않았나. (웃음)
=그때도 언제 도망간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걸 극복하는 내 자신을 상상하곤 했다. 마치 어려운 게임을 독파하고 난 뒤 성취감을 얻는 느낌이랄까. 결국 그 느낌 때문에 작업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