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그러니까 이건, 리얼한 판타지 월드!
2009-08-13
글 : 장미
사진 : 안소라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의 제작진과 배우를 만나다

7월29일 오전 11시 신라호텔. 로비로 들어서니 한줄로 쭉 늘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본 여성들이 보였다. 다른 기자간담회에서 맞닥들이기 힘든 신선한 풍경이었다. 하스브로의 ‘지.아이.조’ 액션 피겨, 아니, 프로듀서 로렌조 디 보나벤투라가 정정한 바에 따르면, 정확하게는 래리 하마의 코믹북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은 한류스타 이병헌의 출연으로 주목받은 화제의 블록버스터다. 미국인들, 특히 지.아이.조 대원들의 인기가 대단하던 1980년대 나고 자란 이들이 유년의 공상을 현실화하는 제2의 <트랜스포머>에 열광했다면, 태평양 너머에선 이병헌이라는 아시아 배우가 할리우드의 숨 막히는 프랜차이즈 프로젝트에 합류했다는 소식에 환호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작열하는 가운데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의 프로듀서 로렌조 디 보나벤투라와 감독 스티븐 소머즈, 출연진인 이병헌, 채닝 테이텀, 시에나 밀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매트릭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성공으로 이끈 뚝심 있는 제작자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와 <미이라>로 상업영화의 재미를 화끈하게 선사했던 스티븐 소머즈는, 장난감에 기원을 둔 새로운 프랜차이즈 영화를 밀어붙이면서 어떤 포부를 다졌을까. 주인공 듀크 역에 낙점된 채닝 테이텀과 그와 미묘한 관계인 악당 배로니스를 연기한 시에나 밀러는 생애 첫 액션 블록버스터에 승차하며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보나벤투라와 소머즈, 테이텀과 밀러, 두팀으로 나눠 진행한 라운드 테이블과 기자간담회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풍부한 관계 묘사가 장점"
- 프로듀서 로렌조 디 보나벤투라·감독 스티븐 소머즈

-몇년 동안 시나리오가 수차례 수정된 걸로 아는데, 어떤 부분을 두고 특히 고심했나. 하스브로의 피겨 시리즈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뭔가.
=로렌조 디 보나벤투라: 두 번째 질문부터 대답하자면 흥미로웠던 건 액션 피겨가 아니라 코믹북이었다. ‘지.아이.조’ 코믹북 시리즈의 창조자(이자 마블 코믹스의 작가요, 편집자인) 래리 하마가 만든 판타지의 관념 말이다. 풍부한 스토리 라인을 지닌 작품인데다 이미 애니메이션 시리즈로도 나왔다.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가 나오는 과정은 늘 복잡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 영화에선 이야기상 중요한 네쌍의 관계가 제시되는데, 그래서 시나리오 작업이 더 힘들었다. 하지만 풍부한 관계들을 묘사한다는 게 다른 블록버스터들과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이번 영화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연상하게 해서 연출하기로 했다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그랬나. 혹시 이 작품을 만들면서 참고로 한 또 다른 고전영화가 있다면 뭔가.
=스티븐 소머즈: 내 말은, 아주 초기 제임스 본드 시리즈 말이다. 숀 코너리의 제임스 본드 같이. 물론 근래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도 사랑하지만 내가 어릴 적에 봤던 영화는 그것들과 완전히 달랐다. 더 재기발랄했고, 더 창조적이었으며, 더 놀라운 장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런 영화들과 함께 자라났다. 아마도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감독은 마이클 커티스일 거다. <카사블랑카> <로빈 훗의 모험> <블러드 선장>을 만든 거장. 나는 옛 걸작들에 감화를 받는 편이다. MTV가 아니라. (웃음)

-최첨단 무기들이 무수히 등장하는데, 현재 테크놀로지에 영향받은 것들도 있나.
=스티븐 소머즈: 그런 것들도 많지만 더 재미있는 건 10년에서 20년쯤 뒤에 나올 무기들이다. 영화 속 기술이 실현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정말 연구를 많이 했다. 우리가 원한 건 현실에 기반한 판타지영화였다. SF,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과학, 사이언스 팩트 말이다.

-영화 속 소품 중 10년 혹은 20년 뒤에 실용화될 만한 게 있나.
=스티븐 소머즈: 카무플라주 슈트가 아닐까. 실제 과학에 기반한 소품으로, 뒤에 가려진 사물들을 찍어서 앞부분에 반영되도록 하는 슈트다. 흥분되기도 하지만 무섭지 않나. (웃음)

-스톰 쉐도우는 아시아인일 뿐 반드시 일본인일 필요는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닌자고 일본인에 가까워 보인다. 한국 배우를 그 역할에 캐스팅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로렌조 디 보나벤투라: 원작의 창작자이자 이번 작업에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참여한 래리 하마 역시 그의 상상 속 아라시카게 일족은 중국인, 프랑스인 등이 뒤섞인 다국적인 집단이니 한국인이 있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하더라. 우린 아라시카게 일족이 무술 조직이자 일종의 고아원이라고 생각했다. 이병헌을 스톰 쉐도우로 캐스팅했으니 그 아역은 반드시 한국인이어야 했고. 한국 남자의 어린 시절이 일본인이면 말이 안되잖나. (웃음)
=스티븐 소머즈: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도) 미국인들은 그냥 그렇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의 문화와 이병헌을 존중하고 싶었다.
=로렌조 디 보나벤투라: 한국인들에게 물어봤다. 과거 한국에 일본의 닌자나 사무라이 같은 무사 계급이 있었냐고. 한데 그런 계층을 가리키는 명칭이 딱히 없다더라고.
=스티븐 소머즈: 혹시 한국 여자들의 지위가 높아서가 아닐까. (웃음)

-그건 사실이 아닌 것 같은데.
스티븐 소머즈=미국 여자들도 그렇게 말하면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 않나. (웃음) 남편들에게 물어보시라.

-이병헌과의 작업은 어땠나. 사실적인 연기를 주로 하던 배우라 이런 액션 블록버스터에 임하면서 나름의 고민이 있었을 것 같던데.
=스티븐 소머즈: 그에겐 이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었을 거다. 처음 며칠간은 어리둥절해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병헌은 프로고, 뭐든지 소화할 수 있는 탁월한 배우다. 이번 영화의 캐스팅을 위해 오디션을 많이 보지는 않았다. 그저 이미 알고 있거나 이야기를 건네 들은 배우들에 대해 상의했다. 그러다 이병헌이 출연한 DVD를 봤는데, 온화하면서도 매력적이더라. 특히 그의 눈은 대단하다.

-1편의 엔딩을 보면 2편을 염두에 둔 느낌이 강하다. 흥행에 따라 좌우될 문제겠지만 애초 3편까지 기획한 걸로 안다. 혹시 2, 3편은 어떻게 만들 계획인가. 새로운 캐릭터와 테크놀로지를 좀더 많이 선보일 생각인가.
=로렌조 디 보나벤투라: 정말 어려운 선택이 될 거다. 코믹북에는 훌륭한 캐릭터들이 많은데, 이미 영화에 등장해 다뤄야 할 캐릭터들도 많으니 말이다. 그러니 속편에선 한두개의 캐릭터만이 추가되지 않을까. 각 캐릭터들의 사연을 염두에 두고 전체 이야기를 풀어가는 건 힘든 일이다. 게다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즐거움도 있으니 이미 나온 무기나 기술들을 참고로 하지는 않을 거다. 남들이 했던 걸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스티븐 소머즈: 안 그래도 어젯밤에 뭔가 하나 떠올랐는데!
=로렌조 디 보나벤투라: 지금 말하면 안된다. (웃음)
=스티븐 소머즈: 알겠다. 신경 쓰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달라.

"실존 인물처럼 표현하려 노력"
- 듀크 역의 채닝 테이텀·배로니스 역의 시에나 밀러

-블록버스터에는 처음 출연하는 셈인데, 어떤 경험이었나.
=시에나 밀러: 정말 즐거웠다. 프로젝트가 너무 커서 위축되기도 했지만 스티븐이 영감과 에너지를 불어넣어줘서 하면 할수록 재미있었다.

-머리를 염색하기도 했지만 그외에도 액션신에 대비해 근육을 키우기 위한 훈련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얼마 동안 어떤 것들을 중점적으로 배우고 익혔나.
=시에나 밀러: 머리를 염색할 필요는 없었다. 검은색 가발을 썼으니까. 매우 비싼 가발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다 내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하니 제값은 한 것 같다. 일단은 육체적으로 강해져야 했다. 보다시피 나는 육체적으로 그렇게 강하지 않다. (채닝 테이텀이 웃자) 무슨 문제 있나. (웃음) 6주 동안 무술 훈련을 했다. 극중 (스칼렛 역의 배우) 레이첼 니콜스와 크게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위해 무척 많은 연습을 해야 했다.

-몸을 쓰는 연기를 많이 해서 다른 배우들보다 이번 영화가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땠나.
=채닝 테이텀: 아마 조금은. 춤이든 액션이든 연출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예컨대 시에나는 무술 훈련을 전혀 하지 않았다니까 그녀보다는 조금 유리했을 거다. 하지만 액션은 지속적으로 배워야 하는 영역이다. 극중 스네이크 아이즈와 봉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봉은 처음 다뤄봐서 따로 배워야 했다. 몸으로 연기하는 부분들 역시 연기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에 즐기는 편이다.

-듀크는 정의로운 영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매우 정형화된 캐릭터다. 다른 영웅 캐릭터들과 어떻게 차별화하려고 했나.
=채닝 테이텀: 나는 이게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선과 악이 극도로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요즘 드라마나 영화엔 선과 악이 뒤섞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나. 그래서 아예 다른 걸 하기보다 오히려 정형화된 캐릭터를 만들어가고자 했다. 다만 그에게 더 많은 퍼스낼리티를 부여해서 과거와 역사가 있는 실제의 인물처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전쟁을 미화하는 영화라는 이유로 출연을 거부했다가 생각을 바꿨다고 들었는데.
=채닝 테이텀: 대본을 받기 전에 긴장을 많이 했다. 군인 영화를 이미 촬영했기에 더더욱 부담이 됐다. 하지만 대본을 받아보고 기우라는 걸 알았다. 군인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건 그냥 판타지월드다. 아이들의 공상에 가까운. 또 하나 중요했던 건 가족영화라는 점이었다. 심각하기보다 재미있고, 드라마도 있고, 로맨스도 있지만 액션 역시 들어가 있는.

-2, 3편도 나올 계획이라던데, 속편에선 자신들의 캐릭터가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시에나 밀러: 아직은 잘 모르겠다. 듀크와 배로니스의 관계가 계속 진행되지 않을까 싶지만. 궁극적으로 배로니스는 악역이 맞는 것 같다. 원작인 피겨나 카툰에 충실하려면 말이다. 어쨌든 당장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제 막 1편을 끝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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