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3일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에서는 어느덧 40주년을 자랑하는 코믹콘이 열렸다. 코믹콘은 단순히 젊은 코믹북 팬들만이 아니라 40년 전 최초의 코믹콘에 참가했을 당시의 10대들, 이제는 나이든 팬들 역시 한데 모이는 의미있는 장이다. 손을 꼭 잡고 전시장 내를 돌아다니는 천진난만한 표정의 노부부에서부터 그룹 코스프레를 한 심각한 표정의 10대 아이들, 벌써 지쳐버린 어린 아들을 달래며 상기된 표정으로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젊은 아버지, 그리고 여느 관객이나 다름없는 표정으로 슬렁슬렁 돌아다니며 사진기를 눌러대며 구경하는 텔레비젼 시리즈의 익숙한 얼굴을 이곳저곳에서 마주치는 곳이 올해의 코믹콘이었다.
제임스 카메론이 14년간 꿈꿔온…
코믹콘 첫날 오후 3시, 6천여명 규모의 인원을 수용하는 H홀. <타이타닉> 이후 처음으로 장편영화를 들고 나온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25분 분량의 <아바타> 클립을 전세계 최초로 팬들 앞에 공개했다. 새벽부터 기다렸지만 밖에는 미처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뒤로한 채, 사람들이 가득 찬 H홀 속으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캐나다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스타트렉>을 보면서 우주를 꿈꾸어왔다던 14살 소년의 마음 그대로 그가 14년간을 꿈꾸고 4년 동안 만든 3D영화 <아바타>가 공개되기 직전, 카메론은 6천명의 군중 앞에서 외쳤다.
“여러분, 그럼 새로운 행성 판도라로 떠날 준비가 되었나요?”
<아바타>는 인류가 발견해낸 새로운 행성 판도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미래 액션서사극이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판도라에는 파란 피부, 3m가 넘는 신장, 뾰족한 귀, 긴 꼬리를 가진 나비라는 종족이 산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인간의 몸은 견뎌낼 수 없는 환경의 행성 판도라. 이 행성의 무한한 자원에 접근하기 위해 인간은 나비족과 같은 육체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한 아바타라는 하이브리드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공개된 25분 클립에서는 거대한 밀림 속 움직이는 식물들, 마치 물속에서 부유하듯 판도라의 공기를 가로지르는 신비로운 생물들, 원시시대 공룡을 닮은 위협적인 생물들이 눈앞에서 끊임없이 펼쳐진다. 지구에서는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하반신 불구의 몸이지만 아바타의 육체를 통해 판도라에 발을 내딛게 된 제이크(샘 워딩턴)에게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들떠서 판도라의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는 제이크를 향해 활시위를 겨누는 나비족 공주 네티리(조이 샐다나)가 등장한다. 그녀의 팽팽한 활시위 위로 꽃가루가 신비롭게 사뿐히 내려앉고, 그 모습에 네티리는 조용히 활시위를 내리고 만다. 조용했지만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그러고 나면 아름답고 신화적인 판도라의 자연 속에서 신화 속 영웅처럼 제이크가 사나운 익룡을 길들여 하늘을 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해 25분짜리 영상이 끝난다. 지구 및 인간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기존의 실사영화 방식으로 촬영되었고, 판도라와 그 속에서 숨쉬는 생명체는 말 그대로 제작진에 의해 가상의 공간에서 창조되었다. 아바타와 나비족은 배우들의 ‘퍼포먼스 캡처’를 통해 살아 움직이게 되었고, 3차원 공간의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테레오 카메라 시스템이 도입되어 3D영상이 완성되었다. 이 새로운 세계의 언어와 억양을 창조하기 위해서 전문 언어학자가 동원되었으며 판도라의 지리·역사·문화 역시 빠짐없이 실재처럼 창조되었다.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고픈 바람, 바람, 바람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뒤 관객과의 문답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판도라는 미지, 미개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잊어버렸던 우리의 또 다른 영적인 모습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는 10여년 전 디지털 도메인의 수장으로서 기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하는 욕심으로 <아바타>를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힘겹게 달려와 마침내 도달한 곳은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같은 낭만적인 서사시였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타이타닉>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아바타>의 프로듀서 존 랜도, 생물학자이자 아바타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그레이스 어거스틴 박사를 맡은 시고니 위버, 인간의 입장에서 판도라를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쿼리치 대령를 맡은 스티븐 랭, 네티리 역의 조이 샐다나가 이어지는 패널에 참석해 팬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샘 워딩턴은 촬영 때문에 영상 인사로 대신했다.
소년은 조그마한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고, 생물학자는 황폐해진 지구를 벗어나고 싶었고, 휠체어 위 군인은 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벗어나서 자신과는 다른 세계를 만나고 싶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아바타>에서 그들 모두는 그 꿈을 이룬다. <아바타> 밖의 세계에서도 그 바람은 여전한 것 같다.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고픈 그 바람은 실시간으로 트위트를 하며 감상을 올리는 옆사람의 모습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