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부터 짚고 넘어가자. 그녀의 이름은 키엘레 산체즈가 아니다. ‘키일리’ 산체즈다.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꽤나 헷갈려하는 모양이다. IMDb조차도 그녀의 이름은 kee-lee라고 발음해야 옳다며 친절하게 일러주니 말이다. 여하튼 키일리 산체즈라는 이름의 이 신인 여배우는 크면 메릴 스트립 같은 성격배우가 되리라 열망… 한 타입의 여배우는 절대 아니다. 그녀는 지난 2000년 MTV의 <VJ가 되고 싶어?>(Wanna Be a VJ)라는 리얼리티쇼에 출연했다가 배우 에이전시로부터 전화를 받고 연기를 시작했다. LA로 거처를 옮긴 그녀는 TV시리즈의 단역에 출연하다가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다. J. J. 에이브럼스가 제작하는 인기 드라마 <로스트>에서 배역을 따낸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은 기회였는지는 또 잘 모르겠다. 그녀는 <로스트>의 시즌3에 니키 페르난데즈라는 커플 도둑 역할로 출연했는데 역할 자체가 조금 난감했다(자세히 말할 순 없다. 알다시피 <로스트>는 모든 게 스포일러인 드라마다). 키일리 산체즈도 <로스트>의 역할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한 가지 실망스러웠던 점은, 팬들은 오리지널 멤버들 외에 다른 인간들도 섬에 살았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낀 것 같았다는 거죠. 팬들의 실망감이 확 느껴졌어요. 그들의 심정을 나도 이해는 해요.” 결국 그녀의 캐릭터는 산 채로 매장당하는 썩 괜찮은 방식으로 제거됐다.
데이비드 토히의 스릴러영화 <퍼펙트 겟어웨이>는 여러모로 그녀의 출세작인 <로스트>를 연상시킨다. 배경은 하와이고 대사와 장면 하나하나마다 스포일러가 지뢰밭인 영화다. 그래도 좀 설명하자면 그녀가 <퍼펙트 겟어웨이>에서 맡은 역할은 티모시 올리펀트의 연인 지나다. 남자친구가 잡아온 야생 멧돼지의 배를 마셰티로 주욱주욱 가르더니 “예전에 도살장에서 일한 적도 있어”라며 남부 사투리로 낄낄거리는 여자다. 그래서 그녀가 악당이냐고?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다.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키일리 산체즈는 당대의 여전사 밀라 요보비치와 정면으로 격돌해도 꿀리지 않는 여자다. 여전사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안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