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spot] 반전에 목숨 걸기 싫다
2009-08-20
글 : 김도훈
<퍼펙트 겟어웨이>의 데이빗 토히

<퍼펙트 겟어웨이>는 데이비드 토히 감독의 오랜만의 신작이다. 토히는 <도망자> <워터월드> <지 아이 제인>의 시나리오작가로 시작해 연출작 <어라이벌> <에일리언 2020>으로 SF팬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문제는 <에일리언 2020>의 속편 <리딕: 헬리온 최후의 빛>이었다. 엄청난 예산을 투여한 이 작품은 데이비드 린치의 <듄>에 테스토스테론을 과다투여한 듯 기묘한 매력으로 넘치는 정통 스페이스 오페라였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퍼펙트 겟어웨이>는 파산한 은하계를 떠나 하와이에 착륙한 토히의 날씬하고 쿨한 스릴러다. 데이비드 토히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역시 직접 썼다.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칼랄라우 트레일을 하이킹한 적이 있다. 코스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하이커들의 배경 이야기를 혼자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중 좀 지저분한 외모의 두 하이커를 연쇄살인마라고 상상하는 순간 갑자기 시나리오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신의 첫 번째 비SF영화다. 그토록 사랑하는 장르를 버리고 순수한 스릴러를 연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뭔가.
=사실 따지자면 <빌로우>도 SF가 아니라 심리스릴러였다. 어쨌든 스릴러를 연출하고 싶었던 이유는 <리딕…>을 연출한 뒤의 반동(과잉반응)이 아니었나 싶다. 특수효과를 최소화하고 소규모의 심플한 프로덕션을 진행해보고 싶었다. 촬영 기간도 짧게 하고 배우와 더 가깝게 소통하고 싶었던 것도 그 이유에서다.

-캐스팅이 좋다. 특히 이 영화는 밀라 요보비치, 스티브 잔, 티모시 올리펀드 같은 배우들의 스테레오타입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 점을 의도하고 캐스팅했나.
=물론이다. 우선 티모시 올리펀트가 가진 악당의 이미지는 우리 영화에 큰 도움이 됐다. 스티브 잔은 상처받은 작가로서의 내 자아가 완벽히 반영된 인물이다(세상의 모든 시나리오작가들은 이 업계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게 마련이다). 밀라 요보비치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보여온 강한 여성의 이미지에 반하는 역할을 연기하는데, 자신도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사실 그녀가 이 영화에 출연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배경은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이지만 다른 여러 장소에서 촬영했다고 들었다. 대체 왜? 한 장소에서 찍는 게 경비가 덜 들지 않는가.
=실제로 촬영은 푸에르토리코와 자메이카, 카우아이 등지에서 진행됐다.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카우아이는 촬영을 진행할 때 소요된 경비의 15%를 리베이트로 돌려주는 반면에 푸에르토리코에서는 40%를 돌려준다. 요즘 미국에서 흔히들 하는 말로 ‘비용 대비 효과의 극대화’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반전이 드러나고 마지막 대결이 펼쳐지기 직전, 당신은 플래시백 시퀀스를 통해 영화가 시작하기 전 주인공들의 행적을 관객에게 낱낱이 보여준다. 스릴러에서 이런 식의 플래시백 시퀀스가 길게 쓰이는 걸 본 적이 별로 없다.
=영화가 끝날 때 반전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반전 하나에 목숨을 거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러닝타임 1시간이 지났을 무렵에 관객이 숨겨진 모든 사실을 알도록 했다. 플래시백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첫 번째는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놓쳤던 부분을 알려준다. 앞서 보여주지 않았던 대화의 일부분이 관객에게 드러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때까지 관객이 가장 의심하던 캐릭터인 닉과 지나에게 주인공의 지위를 부여해준다.

-나는 <리딕…>도 아주 즐겁게 봤다. 애초에 트릴로지로 만들려던 작품 아닌가. 다음 작품은 어떻게 되어가나.
=빈 디젤과 나에겐 리딕 시리즈의 다음 작품을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확고하고 창의적인 생각이 있다. 일단 미국에서 R등급을 받을 정도의 화끈한 영화여야 하고, 얼마가 될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투자를 끌어올 것이다. 이 영화는 스튜디오 영화가 아닌 독립영화가 될 테니까.

-마지막으로 1988년에 당신은 <에이리언3>의 시나리오를 썼다가 거절당했다. 어떤 이야기였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다른 시나리오로 만든 데이비드 핀처 영화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거든.
=온라인 어디에선가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 나한테도 카피본은 없다. 설명하자면 지구의 궤도를 도는 우주 감옥이 배경이고, 웰른 유타니 컴퍼니가 에일리언을 유인할 미끼로 쓰기 위해 죄수들을 데리고 실험을 한다는 내용이다. 대충 그랬던 것 같은데….

사진제공 (주)영화사 이슈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