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림수가 뻔하긴 했지만 그래도 먹혔다. 요거트 CF에 출연한 유승호가 “누나, 아∼”라며 함박웃음을 짓자 대한민국 여자들의 다리에서 힘이 쏙 빠졌다. 93년생.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유승호는 특별한 별 아래 태어난 소년이다. 단정한 이마, 짙은 눈썹까지 꼬마일 적의 미태를 고스란히 유지해서만은 아니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 모두가 그 성장의 목격자요, 일종의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집으로…>로 강렬하게 각인된 아역배우가 네모난 가상세계 속에서 쑥쑥 크고 자라 성인 직전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그 지난한 세월을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응시한. 드라마 <태왕사신기>와 <왕과 나>, 영화 <마음이…> <서울이 보이냐> 등 웬만한 성인배우보다 연기 경력이 복잡한 그가 이름을 올린 작품들만 어느덧 열 손가락이 넘는다. 그리고 지금 175cm에 이른 그는 곧 180cm 고지를 찍길 바라고 있다.
<4교시 추리영역>은 또래 이성에게 반해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는 유승호의 표정을 최초로 전시하는 영화다. 뮤직비디오에서나 경험했던 키스신도 두 차례나 나온다. 연기는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야지만 할 수 있다”고, “라세 린느나 뮤즈의 곡같이 비 오는 날 들으면 좋을 우울한 노래를 좋아한다”고, 앞으로의 일은 “솔직히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니냐”고 말하던 이 어른스러운 소년은 딱 한번 거세게(?) 반대 의사를 밝혔다. “뽀뽀예요, 뽀뽀요. 그걸 왜 키스신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전에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진짜로, 진심으로. 되게 떨렸어요.” 미소년 스타의 얼굴이 순식간에 인기나 열광의 불꽃에 조금도 그을리지 않은 수더분한 고등학교 1학년생의 그것으로 어색하게 물들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통일신라의 재목으로 살아갈 프로배우의 자아와 달리 솔직하려 애썼음에도 수줍고도 짧았던 그의 대답들이 그랬듯이.
-<4교시 추리영역>은 스릴러나 추리물에 가까운 영화더라고요. 이런 장르에는 처음 출연하는 셈인데, 어땠어요.
=우리나라에서 거의 안 했던 걸로 알거든요. 처음 시도하는 것이니 영광이었다고 할까요.
-시나리오 읽고 무슨 생각을 했나요.
=재미있었어요. 진행도 빠르고. 긴박감도 있고.
-정훈이라는 인물은 전국 1등이고 잘생긴데다 싸움까지 잘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인 팔방미인 캐릭터예요.
=너무 비현실적이죠. 저도 좀 맘에 안 들어요. (웃음) 사람이 완벽할 순 없거든요.
-학교 계단이며 도서관을 줄곧 뛰어다니는 신들이 많던데,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신은 뭐였어요.
=다정이라는 친구가 교실로 들어와서 저와 시체가 같이 있는 모습을 목격하는 신이 있을 거예요. 정말 오래 찍었어요. 이틀 정도. 신 연결도 어려웠고요. 도서관에서 사투 벌일 때도, 햇볕이 들어오는 장소가 아니니까, 밤 새워서 이틀 정도 찍었거든요.
-가장 NG가 많이 났던 장면도 도서관 신인가요.
=교실에서 태규라는 친구와 승강이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게 우리 영화에 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맨 처음 찍은 신이었어요. 감독님과도 처음이고 서로 잘 안 맞다보니 NG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어떤 점이 안 맞았는데요.
=감독님의 생각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야겠죠.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이해를 못해서. (옆에 있던 영화사 직원이 “감독님이 바뀌고 처음 찍은 신”이라고 다시 설명하자) 맞아요, 그게 그 장면이었어요.
-극중 파트너가 김소은에서 강소라로, 감독 역시 신동엽에서 이상용으로 바뀌었는데 그것 때문에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생각이 많았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렸고. 감독님과 소라 누나, 저, 셋 사이의 호흡도 잘 맞아야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는 어땠어요. 학교가 배경이라 또래배우들이 많은 편이었잖아요.
=형들이 다 학생이라서 잘 맞더라고요. 생각도 그렇고, 정신연령도 그렇고. (웃음)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아서 대기실로 배정받은 교실에서 같이 생활해야 했거든요. 학교에서 교실을 많이 안 내주더라고요. (웃음) 분장실에 하루 출연자들 다 같이 앉아서 도시락 먹고 이야기하고.
-혹시 어떤 시나리오가 주로 들어오나요.
=저는 작품 결정할 때 그렇게 하지 않고요. 엄마랑 매니저 형이 먼저 보고 나서 괜찮다 싶으면 넘겨주시고. 웬만하면 먼저 잘라주는 편이에요.
-의사 결정할 때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인가봐요.
=아뇨, 아예 권한이 없어요. 구분을 잘 못하거든요. 이게 나한테 맞겠다, 안 맞겠다. 괜히 의견 주고받다가 충돌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솔직히 매니저 형이랑 엄마 말이 틀린 게 없거든요. 되도록이면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죠.
-예컨대 <밴티지 포인트> 같은 액션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어른들한테 이런 영화는 고려해달라고 제안한 적은 없나요.
=약간 사이코 같은 역할? (웃음) <추격자>에서 하정우 선배님의 연기를 보고, 저 역할 매력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런 유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잘 모르겠지만 뭔가 묘한 게 있더라고요. 모든 남자배우들이 부러워하는 역할이에요.
-공포나 추리, 스릴러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편인가봐요.
=공포쪽을 좀더 좋아하죠. 겁이 많아서 혼자서는 못 보지만요. 최근엔 <아파트>를 봤어요. 제가 성격이 좀 이상한가봐요. (웃음) 피 튀기는 영화를 좋아해요. 잔인한 것들도 그렇고.
-드라마 <선덕여왕>에 김춘추 역으로 캐스팅됐는데, 언제부터 나와요.
=글쎄, 저도 잘 모르겠어요. (웃음) 극중 어머니인 박예진 선배님이 돌아가시면 등장할 거예요.
-김춘추는 어떤 인물인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대본이 안 나와서.
-전혀 안 찍었나요.
=대본조차 안 나와서. 시간이 거의 없어서 다음주 분량을 이번주에 찍는 상황이래요.
-<불멸의 이순신> <왕과 나> <태왕사신기>까지 거쳤으니 사극이 네 번째네요. 사극 연기는 어때요.
=처음에는 되게 힘들었어요. 톤이나 억양이나 대사도 많이 다르고. 하다보니 익숙해졌지만, 마지막 사극으로 <태왕사신기>을 찍었는데, 그것도 한 지가 꽤 됐거든요. 아, 이거 잘할 수 있을까. 긴장이 많이 되고. 대본이 없으니 연습도 못하고 괴로워요.
-승마도 해야 하나요. 준비는 좀 했어요.
=아무래도 문무에 뛰어난 인물이니까. 말타기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겠죠. 화랑 역할로 나오는 분들이랑 사전에 연습은 좀 했어요. <태왕사신기> 때 제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장면이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면서 서서히 성인 역으로 바뀌는 신이었거든요. 그땐 말을 전혀 탈 줄 몰랐는데, 갑자기 말 한필을 주시면서 네 마음대로 한번 타보라고.
-좋아하는 과목이 체육이라던데요.
=그 대답하고 나서 매니저 형한테 혼났어요. (웃음) 말 그대로 몸으로 때우는 거 아니냐. 딱히 좋아하는 과목은 없지만, 굳이 꼽자면 국사. 이해를 하지 않아도 외워서 시험 보면 그래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요.
-암기에 강한가봐요. 대본이 길 텐데, 무리없이 외우는 걸 봐도.
=요즘엔 그렇더라고요. 딱히 외우지 않아도 몇번 보다가 다음날 그 신을 촬영하면요, 딱 한번만 보면 다 기억이 나요. 신기하더라고요. 예전에는 되게 힘들었어요. 대본 한줄 읽고 외우고 한줄 읽고 외우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냥 한번 읽으면 딱딱 기억이 나더라고요.
-목소리는 변하는 중인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게 제 목소리인지 계속 바뀔지. 지금 제 목소리가 참 마음에 안 드네요. 높이 안 올라가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변화가 오기 시작하더니 쇳소리가 많이 나더라고요.
-애니메이션 <잎싹,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목소리 연기도 맡았잖아요.
=그게 많이 어렵더라고요. 연기는 표정이나 행동이나 대사, 세 가지를 동원하는 거거든요. 이건 순전히 목소리로만 하는 거라서 평소보다 크게 하고 오버해야지 만화 이미지에 맞는데, 도저히 그게 안 나오는 거예요.
-가끔씩 예전에 찍은 영화들을 보기도 하나요.
=아뇨, 전혀 안 봐요. 생각이 안 나기도 하지만, 그때 좀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많더라고요. 쑥스러워서 웬만하면 안 보려고.
-예를 들어 어떤 영화요.
=<집으로…>가 대표적이죠. 그땐 엄마가 시켜서 한 거거든요. (웃음) 저는 아직도 <집으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 정도로 제가 찍은 작품을 안 보려고 해요. 어제도 시사회장에서 갑자기 영화를 볼지 몰랐거든요. 인사를 하고 앉으라더니 <4교시 추리영역>을 틀어주는 거예요.
-처음 영화를 찍었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그땐 말하자면, 부모님에 의해서 연기를 한 거였고요. 요즘은 연기가 너무 즐겁고 재미있거든요. 예전보다 연기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됐어요.
-어떤 순간 자신이 직업 연기자라고 느끼나요.
=연기하는 매 순간. 다른 사람들과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구나. 보람도 느끼고.
-작품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편인가요.
=아뇨, 거의 안 해요. 그땐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다른 연기자들하고 말을 못 섞었어요. 거의 혼자 지내고 그래서. 지금도 친한 연예인이 없어요.
-그럼 제일 친한 사람은 혹시 매니저 형.
=그렇죠. 엄마, 매니저 형, 코디 누나. (웃음)
-곧 대학 진학을 할 텐데, 어떤 공부를 더하고 싶어요.
=아직 딱히 생각 안 해봤는데요. 그냥 연극영화과 말고 딴 델 가보고 싶어요. 나이를 더 먹을 때까지 연기를 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연기를 그만 한다든가 그럴 때 남은 인생을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 다른 걸 해보고 싶어요.
-연기자가 최종적인 꿈이 아닌가요.
=최종 꿈이긴 한데, 그것도 저를 찾아주는 분들이 계실 때까지의 이야기고요.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요, 이건 다른 분들이 저를 찾아주어야 하는 거기 때문에, 그걸 계속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언젠가는 다른 것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혹시 사람들이 자신이 커가는 모습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자기 삶에 비밀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요.
=아니에요. 다른 분들이 모르는 게 많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유승호는 완벽하고,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도 평범하게 TV 보고 밖에 안 나갈 때 안 씻기도 하고.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웃음)
-그럼 배우 생활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이라면 뭘까요.
=또래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저는 외국을 나간다든지 그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했으니까. 반면 저는 일반 아이들이 겪는 평범한 것들을 못하고 있어요. 한편으로 불행하다고 해야 할까요. 어떨 때는 내가 연기를 왜 할까, 연기를 안 했으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죠.
-연기를 안 했으면 어땠을까요.
=그냥 평범한 아이겠죠. 잘하는 것도 없고.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커서 회사에 들어가고.
-뜬금없는 질문이긴 한데, 초능력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투명인간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싶던데요. 항상 주목받는 편이잖아요.
=투명인간도 좋지만, (웃음) 마음이 악한가봐요, 순간이동요. <점퍼>라는 영화를 보고, 나에게도 언젠가 저런 초능력이 오겠구나, 그런 걸 느꼈어요. 어렸을 때라서요. 저 같으면요, 금고 가서 돈 다 털 거예요. (웃음) 솔직하게 진심으로 말하는 거예요. 그 장면 영화에도 나와요. 금고에서 돈을 퍼 담더라고요.
-한편으로 과도기적인 시기잖아요. 아역만 줄곧 하다가 이젠 성인 연기도 해야 하는데,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제일 큰 고민은, 다들 아실 거예요, 아역의 선을 넘어갈 때 많이 망가진다고들 하는데, 저도 완전히 제외될 순 없으니까. 과연 나는 어떻게 될까. 열심히 잘하고 있지만 관객이나 시청자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