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조니 뎁] 남성성을 끌어안은 로맨티스트
2009-08-24
글 : 문석
<퍼블릭 에너미>의 조니 뎁

조니 뎁이 <퍼블릭 에너미>의 주인공을 맡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조니 뎁이 맡아야 할 캐릭터는 1930년대 초반을 주름잡은 전설적인 갱 존 딜린저였기 때문이다. 1년 남짓한 동안 두번이나 탈옥을 했고 은행 수십 군데를 털었으며 경찰관을 비롯한 여러 명을 살해했고, 그 때문에 FBI로부터 ‘공공의 적 1호’라고 불렸던 존 딜린저는 매력적인 인물임에 틀림없지만, 왠지 조니 뎁과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도니 브래스코> 같은 영화에서 갱(으로 위장한 FBI 요원) 역할을 맡기도 했고,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 해적으로 등장했는데도 그는 ‘팀 버튼의 페르소나’로서의 느낌이 훨씬 강했으며 상처입기 쉬운 내면을 가진 반(反)마초 남성의 성향이 다분했다. 특히 ‘여기’가 아니라 ‘저기’를 응시하는 듯한 몽상가다운 눈빛은 냉혹한 갱을 연기하는 데 장애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퍼블릭 에너미>를 보고나서도 그런 선입견을 계속 갖기는 어렵다. 그는 완벽한 품새로 1930년대의 미국 중서부로 들어가 실감나게 희대의 악당 존 딜린저를 연기했다. <퍼블릭 에너미>에서 조니 뎁이 연기하는 딜린저는 바에서 먼저 나와 혼자 집으로 들어간 여인 빌리(마리온 코티아르)에게 “내 여자는 그러면 안돼. 안 그런다고 맹세해”라고 이야기하는 마초 남자이자 실수로 동료를 죽음으로 몬 갱 멤버를 달리는 차 안에서 차버리는 냉혈한이다. 앞머리를 위로 올리고 뒷머리를 짧게 자른 그가 쇳소리가 진동하는 톰슨 기관단총을 마구 갈기거나 격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노라면 “조니 뎁의 깊숙한 내면의 핵심에는 터프함이 자리한다”는 마이클 만 감독의 이야기를 수긍하게 된다.

물론, 조니 뎁은 조니 뎁이다. 그의 갱 연기는 전형성에서 비켜나 있다. <LA타임스> 영화평론가 케네스 튜란의 지적처럼 그의 연기는 할리우드 갱스터영화의 상징인 제임스 캐그니보다 장 피에르 멜빌로 대표되는 프랑스 갱스터영화의 주인공, 이를테면 <사무라이>의 알랭 들롱과 비슷하다. 열정과 분노를 있는 힘껏 뽑아내 광기로까지 발산시키는 캐그니의 ‘뜨거운 연기’와 달리 <퍼블릭 에너미>의 조니 뎁은 냉정한 눈빛과 냉소적인 표정이 두드러지는 ‘차가운 연기’를 선택한 듯 보인다. 거기에는 마이클 만 감독의 영향도 있을 터. 어쨌거나 <리틀 시저>의 에드워드 G. 로빈슨이나 <공공의 적>의 제임스 캐그니가 스스로 삼킨 뜨거운 불덩이 때문에 자폭하는 경우라면 조니 뎁의 딜린저는 시종 평정을 유지한 채 갱으로서의 삶을 꾸려간다. 그러한 딜린저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 그가 시카고 경찰서의 ‘존 딜린저 대책반’ 사무실을 들르는 장면이다(조니 뎁에 따르면 이건 실화다).

<퍼블릭 에너미> 속 딜린저의 모습은 그에 대한 조니 뎁의 해석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10살 무렵부터 존 딜린저에 매료됐다. “그는 공공의 적 1호로 꼽힌 인물이지만 생각해보면 그가 정말로 공공의 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는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은 뒤 딜린저와 관련된 수많은 책을 보면서 연구를 벌였다. 캐릭터를 육체로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조니 뎁에게 딜린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에 대한 상당한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니 뎁이 고충을 겪은 가장 큰 이유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딜린저를 담은 영상도 있고 사진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남아 있지 않다. 그가 말하는 방식과 그의 목소리를 어떻게 알아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목소리에 대한 힌트는 딜린저가 태어나 자란 인디아나 지역이 조니 뎁이 나고 자란 켄터키주 오언즈버러와 2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제공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이제 그의 목소리가 들리네’라고 생각했다. 그는 낮과 밤에 버스를 몰았던 내 할아버지였고, 주립교도소에서 세월을 보냈던 나의 양아버지였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양아버지는 조니 뎁에게 딜린저에 대한 많은 영감을 줬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어른이 되고서 아버지에게 어떤 대학을 나왔냐고 물었다. 그는 주립교도소라는 대학이라고 말했다.” 조니 뎁에겐 푼돈을 훔친 죄로 10년 가까운 세월을 교도소에서 지내면서 온갖 범죄에 관한 고급 교육을 받았던 딜린저의 삶이 양아버지의 그것과 겹쳐 보였던 것이다. 그가 “(촬영을 마친 뒤) 이별하기 가장 힘들었던 캐릭터는 <가위손>의 에드워드, <리버틴>의 로체스터, 그리고 존 딜린저”라고 이야기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딜린저는 내게 친척처럼 느껴진다. 그와 내 안에는 같은 피가 흐른다.”

조니 뎁의 딜린저가 그동안의 악당 캐릭터들과 가장 차이가 나는 지점은 낭만성일지도 모른다. <퍼블릭 에너미>의 존 딜린저는 사랑하는 여인 빌리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할 남자다. <히트>나 <마이애미 바이스> 등 마이클 만 영화의 남자들이 주로 상대편에 선 남성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을 표출해왔다면 이 영화의 딜린저는 한 여자를 통해서 자신을 완성시키려는 남자다. 때문에 그는 탈옥한 뒤 FBI가 자신을 추적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버젓이 빌리에게 전화를 걸고, 미행의 위험에도 빌리를 기어코 만나고 만다. 딜린저가 그토록 낭만적이었던 건 어쩌면 그가 “궁극의 실존주의자”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딜린저에겐 매일이 마지막 날이었다. 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라는 조니 뎁의 말은 영화에서 딜린저가 빌리에게 “어디에서 왔냐는 중요하지 않아. 어디로 가냐가 중요한 거지”라고 말하는 장면에 대한 해설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조니 뎁이 아니었다면 이 지극히 로맨틱한 갱이 스크린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났을까. 자신 앞에서 붙들리는 빌리를 바라보며 이글거리는 눈이나 “내가 좋아하는 건 야구, 영화, 좋은 옷, 빠른 차, 위스키, 그리고 당신”이라고 말하며 짓는 묘한 미소가 조니 뎁의 것이 아니었어도 강렬하게 느껴졌을까. 그의 꿈꾸는 듯한 눈동자가 아니었더라도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로 생각한 로맨틱한 갱이 설득력을 얻었을까. <퍼블릭 에너미>에 대한 여성 관객의 반응이 더 뜨거운 이유 또한 이와 무관치 않을 것. 그러니 모든 남성들이 조니 뎁을 ‘공공의 적’으로 여긴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사진제공 UPI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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