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만으로 이 남자의 국적을 짐작해보라. 거뭇한 피부와 곱슬거리는 머리칼, 어두운 눈동자, 길고 시원한 움직임에서 풍겨오는 은근한 불가사의라니. 얼핏 프랑스인이라는 의혹을 받기 십상일 테고 그게 사실이지만, 토머 시슬리는 원래 “이스라엘 여권의 소유자”였다. 독일 베를린에서 출생해 9살 무렵부터 프랑스에서 거주한 그의 아이덴티티는 그러나 미묘하게 인상적인 외모를 초월하는 구석이 있다. 리투아니아 태생의 아버지는 아랍계요, 예멘 태생의 어머니는 유대계로, 아랍인과 유대인들 사이의 해묵은 원한은 그의 말대로 “지구상 모든 갈등의 상징”이 아닌가 말이다. 존재 자체가 아이러니인 시슬리는 덕분에 “프랑스어”와 “완벽한 히브리어”, “세련된 독일어”, “완벽한 미국 영어” 등 4개 국어의 달인으로 성장했다. 브라질과 홍콩 등지를 호기롭게 넘나드는 <라르고 윈치>의 주인공, 영어와 프랑스어, 크로아티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윈치그룹의 후계자이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네르고 윈치의 양아들 라르고 윈치 역에 맞춘 듯 들어맞는 운명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룹의 황태자로 미디어를 도배하기 전, 이름도 생소한 이 남자는 어떤 인생 역정을 거쳤을까. 토머 시슬리의 과거는 고아였다 거부의 양자로 입적한 라르고의 그것 못지않게 드라마틱한데, 그러니까 놀랍게도 그는 한때 촉망받는 코미디언이었다고 한다. 캐나다의 저명한 코미디영화제 ‘그저 웃음을 위해’(Just For Laughs)에서 ‘뜻밖의 인재상’(Prix de la Revelation)을 수상한, 프랑스에서 보기 드문 스탠드업코미디언. 자신의 뿌리와도 깊숙이 연관된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소재로 정치적이고 지적인 코멘트를 쏟아내는 시슬리를 두고 한 언론은 이렇게 찬양하기도 했다. “이 인간 백과사전은 원어로 전세계의 희극적 유산을 연구하길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그 때문이 아닐까. 영화 버전의 원작이자 유럽과 북미에서 명성이 높은 동명 그래픽노블의 라르고는 제임스 본드 저리 가라 할 마초 카사노바지만 극중 액션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몸소 시연했다는 토머 시슬리의 라르고는 오히려 위트있는 지성남쪽에 가까워 보인다. 미소를 보낼 때 볼에 드러나는 은근한 보조개만큼은 여성들의 마음을 상당히 뒤흔들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