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외신기자클럽] <20세기 소년> 3부작의 정체
2009-09-09
글 : 스티븐 크레민 (스크린 인터내셔널 기자)

최근 들어 일본영화 최고의 야심작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장장 22권짜리 만화를 영화화한 <20세기 소년> 3부작이라 할 수 있다. 세편 모두 하이 컨셉 TV시리즈 감독으로 유명한 쓰쓰미 유키히코가 감독을 맡았다. 원작자 우라사와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이 시리즈의 예산은 6천만달러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첫편의 극장수익만 사천이백오십만달러에 이르렀다.

이 영화는 규모상으로 따지자면 <반지의 제왕> 3부작과 맞먹는다고 할 수 있다. 대개 영화들이 3부작으로 기획되긴 하지만 <20세기 소년>은 전체를 다 보려면 436분을 투자해야 한다. 거기다 일본의 영화 표 가격이 2만4천원임을 생각하면, 세편을 다 보기 위해서는 큰돈을 투자해야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영화는 관객의 보고 싶은 욕망을 돋우기 위해 다음 편의 예고편으로 끝을 맺는다.

1편에서, 주인공 켄지는 1999년 동창회에 가서, 항상 가면을 쓴 ‘친구’라 불리는 인물이 이끄는 컬트 집단이 가진 세계 종말 시나리오가 자신이 1969년 학교 친구들과 함께 그렸던 예언의 서와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켄지의 어릴 적 환상 속에서, 사악한 조직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샌프란스시코, 런던과 오사카를 치명적 바이러스로 공격하고, 도쿄에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거대 로봇을 풀어놓는다.

2015년을 배경으로 하는 두 번째 영화에서는 그 컬트 집단이 일본을 지배하고 가까스로 도망친 켄지는 테러리스트로 규정된다. 켄지의 조카인 칸나는 컬트 조직의 젊은이 훈련 캠프에 몰래 참가하여 ‘친구’의 정체를 밝히려 한다. 한편 ‘친구’는 정교한 암살 시도를 꾸며 스스로를 죽음에서 살아난 살아 있는 신으로 포장한다.

영화의 감독인 쓰쓰미와 원작자 우라사와는 각각 53살과와 49살로, 켄지와 그 친구들과 비슷한 연배에 속한다. 이들은 로큰롤 음악과 자유로운 사랑의 히피 문화 세례를 받고 자라난 세대다. 그들이 창조한 낭만화된 환상의 세계에서 경찰은 타락했거나 무능력하고, 역사 책은 거짓말투성이며, 만화가는 위험한 범죄자로 규정되고, 음악은 세계를 구원할 힘을 갖고 있다.

한국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해운대>의 예산을 합한 것의 2배에 이르는 예산에도, 이 3부작은 일본 감독들이 아직 세계 수준의 블록버스터영화를 만들 만한 기술적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도쿄를 파괴하는 거대 로봇은 영화학교 졸업 작품에나 나올 만한 수준이고, 두 번째 영화의 특수효과는 카펫에 불이 붙은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

일본에서 막 개봉된 세 번째 영화는 155분으로 지금까지 작품 중 가장 길다. 그러나 언론 시사회에서 영화 기자들은 전체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친구’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언론에 마지막 10분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전례가 또 있는지 모르겠으나 경험 많은 영화평론가들에 따르면 언론에 일부러 전체 영화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라 한다.

아마도 ‘친구’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의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를 만드는 데 실패한 탓에, 배급자들이 이를 두려워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일본 영화평론가들의 무능력함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 영화기자들은 다른 아시아 나라 기자들과 비교하자면 영화산업의 주된 마케팅 창구 같은 역할만 해왔다. <20세기 소년>은 재미있지만 위대한 영화가 되기 위한 강렬하고 예리한 무언가가 부족하다. 그리고 그 비난의 일부는 7시간이 넘는 전희에도 아무런 클라이맥스 없이 끝나는 영화를 수용하는 일본 영화평론가들에게도 돌려져야만 한다.

번역=이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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