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액세서리]
[그 액세서리] “레이밴레이밴레이밴이야”
2009-09-10
글 : 강지영 (GQ KOREA 패션디렉터)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와 <티파니에서 아침을>도 이렇게까진 안 했다. 제이크와 엘우드 형제가 블랙 슈트에 페도라까지 쓰고 연방 선글라스를 추어올릴 때도, 홀리가 그 유명한 택시장면에서 얼굴을 반이나 가린 크고 네모난 선글라스를 선보일 때도, 그게 레이밴 웨이퍼러의 가장 강렬한 순간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인퍼머스>가 개봉한 이후로 ‘레이밴 영화’는 바뀌었다. 오죽하면 이 영화를 소개하는 친구의 말이 “80년대 스타일, 죽여줘. 게다가 레이밴레이밴레이밴이야”였을까.

장례식에 모인 네명의 남자가 야외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울 때 넷 중 셋은 레이밴을 쓰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해변의 선베드에 누워 있을 때도 각자 고른 칵테일은 달라도 부자의 선글라스는 같다. 아버지는 갈색 레이밴, 아들은 검정 레이밴. 영화의 도입부, 록스타 브라이언이 술에 취한 채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 있을 때도 레이밴. 꽃무늬 셔츠와 줄무늬 슈트를 입은 살찐 미키 루크가 애들을 유괴할 때도 또 레이밴. 창문이 여섯개인 리무진 안에서 몰트 위스키를 마시는 남자도 다시 레이밴.

레이밴이라고 하면 ‘에비에이터’도 있고 ‘카라반’도 있건만 <인퍼머스>의 레이밴은 몽땅 다 ‘레이밴 웨이퍼러’다. 1952년에 만들어진 록 스피릿이 담긴 선글라스. 영화는 작정한 듯 이 선글라스를 시종일관 들이민다. 그런데 그 덕분에 영화가 달라 보인다. 마약과 폭력, 무절제한 섹스와 믿을 수 없는 관계가 1시간 반 남짓한 러닝타임 내내 울렁거리지만 그래도 이미지 하나만큼은 끝내준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니까. “왜 저러고들 사나. 돈도 많은데” 같은 불평은 영화의 ‘스타일’ 앞에서 ‘엣지있게’ 무너진다.

레이밴 웨어퍼러 말고도 이 영화에서 기억해야 할 것 두 가지가 또있다. 잊기 어려운 두 사람. 미키 루크도 빌리 밥 손튼도, 킴 베이싱어도 위노나 라이더도 아닌, 브래드 랜프로와 루 테일러 푸치. 루 테일러 푸치는 <썸서커>의 슬픈 소년이고 브래드 렌프로는 <굿바이 마이 프렌드>의 아름다운 소년이다. 두 남자는 이 영화에서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브래드 렌프로에게는 <인퍼머스>가 유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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