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간의 애틋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애자>의 감독이 인터뷰 장소에 등장했다. 예상외로 덩치 큰 사내다. 그렇다면 과묵한 사내? 아닌 것 같다. 말을 붙여보니 적은 말수가 아니다. 수다의 ‘일초식’을 아는 자다. <애자>에서 딸과 어머니 사이를 이어주던 말과 감정의 공방전을 다룬 사람답다. 충무로에서 스탭으로 오래 일하면서 배운 화기애애 공력이 몸에 배어 있어 그렇다고 한다. 도제시스템에서 오랜 시간 동료들과 나눈 애정이 힘이 되어 자애로운 인물들을 만들었고 그 인물들에 자기의 일부분을 투사했다. <애자>의 감독 정기훈과 수다를 떨었다.
-평소에도 담소를 즐기나.
=담소보다는 방정맞다고 해야 할 거다. 내가 막내 스탭들하고 노는 걸 보면서 (최)강희가 그러더라. “감독이 왜 그렇게 체통이 없느냐”고. 격식이 없는 거다. 오두방정인가? 충무로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몸에 밴 습관이다. 스탭들과의 융화를 중요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얻게 된 거다.
-충무로에서 오래 일했다는 말은 들었다.
=대학 졸업하고 23살에 충무로에 들어왔다. 김유진 감독님 밑에서 오래 일했다. <금홍아 금홍아>부터 <약속> <와일드카드> <신기전>까지. <신기전>은 시나리오까지 했다. 내 나이대의 어지간한 감독들은 전부 입봉했으니 경력에 비하면 좀 늦은 편인데 그동안은 글쓰면서 먹고살았다. 각색 작업을 주로 했고, 그게 주로 엎어졌다. (웃음) 뮤직비디오 시나리오를 많이 썼다. 그게 좀 짭짤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 형식의 뮤직비디오 중 3분의 1은 아마 내가 썼다고 봐야 할 거다.
-김유진 감독과는 유독 각별하다고.
=한 10년을 한집에서 살았다. 집이 굉장히 넓으니까. 감독님은 안채, 나는 행랑채. 감독님이 <약속>을 찍고 끝날 때쯤 “내 집으로 들어와라” 하시더라. 아, 이제 진짜 머슴이 되는구나 싶더군. (웃음) 아버지 보는 시간보다 감독님 뵙는 시간이 더 많다. 감독님 밑에 있는 사람 중에 그동안 잘 풀린 사람이 없어서 감독님이 늘 속상해 하셨는데 이번에는 어쨌든 효도했다는 생각이다. 바깥에는 괜찮은 영화 만들었다고 말씀해주시지만, 저녁에는 6시간씩 술먹으면서 많이 혼내신다. (웃음) 시나리오가 아깝다, 이런 건 내가 하면 더 잘하는데 하시면서. 원래는 내가 비주얼에 관심이 많았는데, 감독님하고 같이 살면서 사람들하고 부대끼고 그 속에서 드라마를 끌어내는 것을 많이 배웠다. 사람 사는 걸 봐야 사람 이야기를 한다며 지하철이나 버스를 일부러 타고 다니신다. 방송쪽에 얼굴 내미시는 것도 싫어하시는데, “야 너 쪽 팔리면 아무것도 못해. 너 임권택 감독님이 얼마나 불행한지 알아?”라고 농담도 하신다.
-<애자> 같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었나.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허진호 감독님 영화도 무척 좋아하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리모컨 두고 싸우는 장면 있지 않나. 실은 <애자>에서 텔레비전 보면서 엄마와 딸이 싸우는 장면을 찍을 때 그걸 생각했다. 앞으로도 내 영화는 그런 이야기쪽으로 가지 않겠나 싶다. 그런 게 영화계에서 한 부분 있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애자>가 신파나 통속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나로서는 일상을 다룬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일상을 다루는 방법적인 면에서 관객의 눈물을 뽑기 위해 작위적인가 아닌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작위적이지 않으면서 눈물 흘리게 하는 방법이 있을 거다. <애자>에서 그런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보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가 전면에 있다.
=처음에는 그보다 다 큰 처녀의 성장 이야기로 생각하며 시작했다. 원래 성장 이야기가 청소년기, 유아기를 많이 다루지 않나. 나는 다 컸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내가 아직도 배울 것이 많구나’ 느끼게 되는 그런 인물을 다루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가족, 그리고 엄마와 딸의 관계 안에서. 서브플롯이 처음에는 다 균등했다. 일도, 가족도 이야기상 같은 몫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투자자를 생각했을 때 감동이 더 필요하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더 늘어났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많이 바뀌었겠다.
=하지만 성장드라마라는 건 편집 때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성공드라마와 성장드라마는 다르지 않겠나. 주인공인 애자가 여유를 좀 가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중에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갖게 될 작은 여유 말이다. 즐거움의 상징인 휘파람을 불 수 있을 만한 정도의 여유, 그 정도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영화에서 애자를 소설가로 당선시키는 걸로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감독이 되기를 꿈꾸었던 것과 비교하면서.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애자>에서는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여유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누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유 기집애 여유가 있어 보이네’ 하는 정도만 반응하면 될 것 같다. 영화 속 일들은 우리가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극복할 건가 묻고 싶었고, 이런 게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가족이란 참 미스터리한 관계이긴 하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전쟁통에서만 가능하다라는 말이 있지 않나. <애자>에서 딸은 애물단지고 엄마는 철천지원수다. 그 둘 사이에 사건이 들어오지 않으면 아마 둘은 평생 싸우면서 지냈을 것이다. 내 경험을 비춰봐도 가족이란 안식처이며 회귀 본능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나도 아버지에게는 핍박받고(웃음) 어머니는 아버지가 낸 생채기를 어루만져주셨다. 그런 부분이 <애자>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엄마와 딸이라는 부분이 조금 뻔하기는 하지만, 뻔하기 때문에 자칫 잊고 사는 건 아닐까. 자기를 돌아보고 부모님을 돌아보는 영화로 비쳐지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이 부모에게 전화 한통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 일을 하는데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던 모양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애자와 나의 감독의 길이 비슷하다. 자식이 불확실한 직장에 매달리고 있는 걸 보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나도 정말 내가 감독을 할지는 장담 못했으니까. <애자>에서도 엄마는 딸에게 시집이나 가라 하지만 딸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밀고 나간 거다. 나와 부모님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
-김영애와 최강희가 닮아 보이기는 한다.
=서로 안 닮은 듯 닮은 사람들이다. 먼저 최강희가 캐스팅됐다. 김영애씨도 그전부터 계속 생각은 했었다. 두 사람이 미용실에 앉아 사진을 한컷 찍은 게 있는데 한 화면에 나란히 두 사람이 담긴 걸 보니까 정말 신기하게 닮았더라. 따로따로 보면 안 닮았지만, 둘이 한 프레임 안에서 웃고 있으니 그렇더라. 그걸 보니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더라. 한 프레임에 저 두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되겠구나, 라고.
-결혼했나.
=아니, 아직. 미혼이다. 이 점 꼭 크게 써달라. (웃음) 그런데 남자로서 매력이 없는 건가? 내가 좋아한 여자는 많은데 나를 좋아해준 여자가 별로 없었다.
-기혼자였다면 이번 영화의 이야기는 좀 달라졌을까.
=연애는 해왔으니까 꼭 그렇지는 않을 거다. 모든 여자들이 엄마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취재를 많이 했다. 그런 엄마와 딸들에 대한 취재가 없었더라면 나도 내 영화 보고 “저 영화 왜 이렇게 신파냐” 그랬을 거다. 하지만 취재하면서 그들 모녀 관계의 독특함이 발견되더라. 그게 여자 관객에게는 특히 많이 와닿는가 보더라. 나는 관객이 엄마와 딸의 반응으로 갈릴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반응으로 갈리더라. 기자들이 리뷰를 쓴 걸 봐도 그렇다. 남자 기자들은 높은 점수를 안 주는데 여자 기자들은 좋은 리뷰를 써주더라. 인터넷에 뜨는 별점을 봐도 그렇다.
-취재를 통해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하나.
=역시 김유진 감독님 밑에 있으면서 배운 거다. 인터뷰와 취재가 중요하다는 거. 상상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만 갖고서는 형태적인 접근밖에 안된다는 걸 배웠다. 그걸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인터뷰와 취재라고 생각한다. <와일드카드>도 김 감독님이 이만희 작가님하고 둘이 썼다고 했지만, 취재는 내가 다한 거다. 석달 동안 날 경찰서에 처박아놓고 “사소한 거라도 다 적어와” 그러시더라. (웃음) 그때 취재했던 게 영화의 연기, 대사 등에 하나하나 녹아들어가는 걸 보고 확신했다. 형사들이 자기 아이들 키를 잴 때 왜 세로로 안 재고 가로로 재냐고 할 때 애들 잘 때만 보니까 그렇다는 대사. 그것도 취재 중에 들은 거다. 사실 한 가지 말하자면 형사들에게는 일반인에게 공개 안되는 그들만이 읽는 잡지가 있다. 밀봉되어 있다. 3개월 동안 함께 있었으니 그걸 보여줄 만도 한데 끝내 안 보여주더라. 그래서 어쩌겠나, 슬쩍했지. (웃음) 1년치 열 몇권 정도 되는 것 중에서 이거다 하는 사건을 발견하고 큰 맥락을 잡은 거다. <공공의 적>에 나오는 대사던가? “강력계 형사는 좀 먹어도 돼” 그런 말 있지 않나. 강력계 형사들이 안 좋은 이미지도 많이 있지만, 정말 쥐꼬리만큼 받으면서 성실하게 일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애자>에서 그런 취재 중 일화는 무엇이 있나.
=어머니가 “김치 가져가 이 년아~”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우리 어머니는 내게 김치를 택배로 보내주지만 누나한테는 그렇게 말하더라. 딸과 엄마는 싸울 때 절대 서로 얼굴을 보면서 싸우지 않는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감정을 소모한다. 내가 모르고 있던 거다. 가령 영화에서처럼 텔레비전 보며 감정적으로 싸운다. 인터뷰나 취재에서 알게 된 거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을 엄마와 딸이 마지막 여행 가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엄마와 엄마 친구 그리고 애자가 마루에 앉아서 대화 나누는 장면이라고 본다. 그 안에는 웃음도 있고 모든 게 있다. 그들은 평행선을 달린다. 평행선을 달리는 것 때문에 자주 싸우기도 하고.
-전주 출신인데 영화의 배경은 부산이다.
=실제 모델이 있는데 그분이 부산 출신이다. 그리고 영화적으로는 엄마와 딸의 물리적인 거리가 필요했다. 내가 잡은 캐릭터상 전라도 엄마는 안 어울리는 것 같았다. 우리 어머니만 봐도 아는데, 전라도 어머니는 잔정이 많고 화는 속으로 삭인다. 경상도 어머니는 정은 속으로 꽉꽉 감춰놓고 겉으로는 툭툭 윽박지른다. 그쪽이 더 어울린다고 봤다. 사투리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본다. 그게 도드라지면 오히려 안된다고 봤다. 사투리가 좋은 테이크와 감정이 좋은 테이크가 있으면 무조건 감정이 좋은 걸로 선택했다.
-실제 모델은 어떻게 알게 됐나.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알게 됐다. 그 친구의 글을 몇개 보는데, 이런 캐릭터로 영화를 만들면 재미있겠다 싶더라. 나이도 꽉 찬 친구인데 써놓은 글을 보면 아직도 철이 안 들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웃음) 이 여자의 주변 생활을 그려보자 했다. 이 영화의 원안자로 크레딧에 오른다. 몇 장면은 실제 일어난 일 그대로 썼다. 채팅하는 장면은 그 친구가 엄마와 하던 내용을 내가 직접 갖다 쓴 거다.
-영화 보고 부모님 반응이 어떤가.
=아버지가 시사회 때 명함을 하나 만들어 오셨다. 거기에 참 민망하게도 “전주가 낳은 영화감독” 어쩌고 이렇게 써놓으셨더라. (웃음) 학력부터 시작해서 이력을 주욱 적어놓은 명함이었다. 정을 속으로 감추고 그걸 표현 안 하시는 분인데… 참… 전주가 낳은 영화감독이라니. 예전이었다면 창피하게 왜 이런 걸 만들어서 들고 다니느냐 했을 거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당신께서 한때 극심한 반대를 했다는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표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로 37년 만에 효도를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