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할리우드를 포박한 무술신동 <리쎌 웨폰4>의 이연걸
2001-12-05
글 : 위정훈

<리쎌 웨폰4> 홍보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 뻔했던 이연걸을 구원한 건 네티즌 팬들이었다. 멜 깁슨과 대니 글로버로만 도배가 된 사이트를 본 네티즌들은 ‘액션영화 사이트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이연걸의 모습도 없이 액션영화 사이트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 제작사 워너는 뜻밖의 반응에 놀라 홍보 전략을 대폭 수정했고, 광고에 이연걸을 나란히 내세웠다. 당시 이연걸을 따라붙은 카피는 “그가 악당이다”.

악당으로 등장한 것도 모자라 꼬챙이에 꿰여 죽는 <리쎌 웨폰4>의 이연걸은 중국의 영웅 ‘황비홍’을 사랑했던 팬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러나 악당이 됐어도 그에겐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다음은, 얼마 전 비행기 사고로 요절한 흑인 힙합 가수 알리야와 공연한 <로미오 머스트 다이>에서 흑인 갱두목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중국계 범죄조직의 아들. 영화는, 주연이라지만 이연걸 무술의 진가가 발휘되기엔 모자랐고 “무술이 매끈하지 못하고 끊어진다”는 팬들의 불만을 샀다. 그러나 3년 뒤 영웅은 귀환한다. 뤽 베송과 손잡고 만든 <키스 오브 드래곤>은 이연걸을 위한, 이연걸에 의한 무술영화다. 이연걸은 마약왕을 체포하기 위해 프랑스에 왔다가 누명을 쓰게 된 중국 최고의 경찰 류가 되어 <황비홍> 시리즈, <동방불패> <흑협> 등에서 익히 보여준 특유의 품격있는 무술액션을 아낌없이 펼쳐보였다. 이연걸은 영웅 황비홍의 이미지가 가장 강렬하지만, 영웅적인 경찰로도 많이 등장해 경찰의 이미지를 높였으며, 덕분에 중국 정부의 절대적인 호의와 신임을 받고 있기도 하다.

무술의 신동, 또는 무술의 신이라는 별명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연걸이 중국의 전국 무술대회 최연소 종합우승 기록을 세운 것이 11살 때. 소년이 16살 되던 해, 영화는 그를 <소림사>(1979)로 불러들였다. 성룡의 코믹액션과 주윤발의 총알발레가 휩쓰는 동안 잠시 잊혀지는 듯했지만, 1991년 서극 감독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실존영웅 황비홍 역에 이연걸을 캐스팅했다. 결과적으로 서극의 선택은 탁월했고, 옳았다. <황비홍>에서 발레처럼 우아하고 탱고처럼 절도있는 ‘정통’ 무술, 긴 대나무 사다리를 이리저리 뛰어넘으며 적과 대결하는 이연걸의 액션은 보는 이들을 사로잡았다. <키스 오브 드래곤>에도 홍콩영화의 전매특허인 와이어액션 대신 정통 무술이 가득하다. 이 황색 영웅의 환영식을 소홀히 치르는 실수를 범한 할리우드는 이제, 그에게서 제2의 이소룡의 가능성을 본다. <키스 오브 드래곤>은 사실 이소룡의 <정무문>에서 몇몇 대목을 빌려오기도 했다(이연걸의 리메이크 <정무문>이 아니라). 이연걸은 그러나 이연걸이다. 전통권과 우슈에 통달한 그의 강점은 우아함과 절제미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것.

1초에 6∼8번 주먹을 뻗는 번개 같은 손놀림을 입성 직후의 할리우드는 감당하지 못했다. 동작이 너무 빨라 찍을 수 없으니 동작을 천천히 해달라고 촬영감독이 주문했을 정도. 그들은 이제 “우슈는 무술이자 예술”이라는 이연걸의 설법을 이해했을까. “영웅이란 나의 캐릭터일 뿐 나 자신의 모습은 아니다. 난 단지 무술가라는 직업을 가졌을 뿐”이라고 말하는, 여전히 천진한 그 미소의 근원을. 어쨌든 관객은 여전히 영웅 이연걸을 원한다. <키스 오브 드래곤> 이후 제임스 웡의 <더 원>에서 신이 되고 싶었던 악당으로 출연한 그는 ‘영웅’을 기다리고 있는 장이모의 <영웅>에 합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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