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외신기자클럽] 소피의 중국매뉴얼
2009-10-07
글 : 데릭 엘리 (<버라이어티> 수석국제평론가)

얼마나 많은 한국 관객이 <소피의 연애매뉴얼>의 가치와 맥락을 제대로 알고 이 영화를 보았을까? 대부분 CJ가 공동 제작하고 소지섭과 장쯔이가 나오는 로맨틱코미디영화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12만명의 관객 동원과 10억원에 못 미치는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뒀다. TV드라마를 넘어서는 소지섭의 인기를 생각하면 더욱 실망스러운 결과다.

그렇지만 중국에서의 사정은 다르다. 한국보다 한주 일찍 개봉해 아직까지 10위 안에 머무르며 1억위안(175억원)의 경이적 기록을 깨면서 대형 히트영화가 될 전망이다. TV드라마를 통한 소지섭의 인기는 중국에서도 대단하다. 올해 상하이영화제에서 <영화는 영화다>가 상영됐을 때 수많은 팬들이 보여준 히스테리적 반응이 그 증거다. 그러나 <소피의 연애매뉴얼>이 중국에서 인기있는 이유는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장쯔이가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 여배우 판빙빙과 처음으로 짝을 이루어 출연하기 때문이다.

판빙빙은 누구인가? 중국어권 영화계 바깥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지난 7년간 2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중국에서 가장 바쁜 여배우 중 한명이다. 스물여덟살인 그녀는 올해만 해도 여섯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신주쿠 사건> <소피의 연애매뉴얼> <맥전>과 <보디가드와 암살자들>. 인기 TV드라마 <황제의 딸>에 린신루, 자오웨이와 함께 출연한 2002년 이래 계속 영화에 출연해온 그녀는 중국의 주요 영화배우 중 한명이다. 인기에서는 벌써, 부산영화제 폐막작 <바람의 소리>에 출연한, ‘또 다른 빙빙’이라 불리는 리빙빙을 따라잡았다.

<소피의 연애매뉴얼>의 한국판 포스터에서는 판빙빙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중국에서 이 영화는 그녀와 장쯔이 사이의 ‘대결’로 다루고 있다. 장쯔이의 인기는 최근 중국에서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영화에서 그들은 사랑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다. 영화 사업적인 면에서 판빙빙은 고전적인 영화배우의 매력을 지닌 스타로, 국내보다 국제적인 인기가 더 높고 소녀적인 매력을 내세우는 장쯔이에 정면 도전하는 스타로 여겨진다.

<소피의 연애매뉴얼>은 중국 영화계에서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 본토판 칙플릿(여성영화)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감독인 에바 진은 미국 플로리다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으며 이 영화에 대해 “스타일은 유럽적이고 이야기 방식은 미국적, 전체적으로는 국제적”이라 말한 바 있다. 스타일을 보면 <아멜리에> <섹스 앤 더 시티>, 로맨스 만화(에바 진은 네권의 만화를 출판했으며 그중 <특별 연애 핸드북>을 영화화하고자 한다) 등 다양한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과 달리 중국은 10대나 20대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로맨틱코미디가 아직 완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다. 주신이 출연한 <사랑에 빠진 바오버>가 2004년에 그 트렌드를 시작하고 위난이 출연한 <기인결정아애니>와 다른 도시 코미디물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소피의 연애매뉴얼>은 이 장르를 한 차원 발전시켰다. 굉장히 잘 다듬어진 모양새를 갖춘 이 영화는 중국영화라기보다는 한국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한국 관객에게는 성에 차지 않겠으나 나로서는 감독이 진(김)씨 성을 가진 것이며, 중국 북동부의 하얼빈에서 태어난 점으로 미루어볼 때 한두 방울쯤 한국인의 피가 섞인 것은 아닐까 궁금할 따름이다.

번역=이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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