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미자] 옌볜을 미화하지 않으려 했다
2009-10-09
글 : 정재혁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푸른 강은 흘러라> 감독 강미자

“푸르름은 랑만이야. 푸르름은 광대무변이지. 그것은 숙원의 약속이고. 그것은 옥 같은 고백이야.” 생소한 울림에 귀를 쫑긋 세웠다. 옌볜 두 소년, 소녀의 대화다. 자고 있던 감각을 깨우듯 살며시 진동하는 이 울림은 호기심도 불러일으킨다. 이젠 그저 화면을 응시할 뿐이다. 크레용으로 그린 푸른 산과 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강미자 감독의 영화 <푸른 강은 흘러라>의 도입부다. 훈춘에 사는 조선족을 그린 이 영화는 다양한 굴곡을 지나 힘차게 뻗어가는 생명력을 담는다. 영화엔 주인공 철이와 숙이, 학교의 자영 선생과 왕 선생, 철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등장하지만 강미자 감독의 관심은 이들을 움직이는 원초적인 생명에 있는 것 같다. 단순하지만 강한 동력이 영화를 관통해 흐른다. 한국영화에서 쉽게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미자 감독에게 만남을 청했다.

-영화의 시작점부터 묻고 싶다.
=시나리오는 이지상 감독님이 썼다. 아는 후배 한명이 중국에서 영화작업을 하겠다며 그쪽에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지상 감독님이 중국의 옌볜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봐야 한다고 해서 직접 모시고 갔다. 이지상 감독님이 옌볜에서 10일 넘게 계셨고 거기서 옌볜 문학이나 옌볜에 관한 책들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쓰셨다. 사람도 만나고. 단편 두편과 중편 한편의 모티브를 가져와 시나리오로 쓴 거다.

-그럼 원작이 있었던 건가.
=있다. 옌볜 문학 중에 고등학교 교사 두분이 쓴 글이다. 그걸 가지고 이지상 감독님이 한편의 시나리오로 완성했고. 나는 우연히 그 시나리오를 읽었다. 근데 너무 좋더라. 편집일 하면서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있어서 언젠가는 영화 만들겠지 했는데 그냥 무의식적으로 이 시나리오 읽고 내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영화 내가 좀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웃음) 근데 이지상 감독님이 그러라고 하시더라. 그러고도 꽤 오래 잊어버리고 있었다. 제작비가 없으니까. 그러다 이지상 감독님이 2007년 11월에 영진위 HD 제작지원에 내시겠다고 해서 포트폴리오 드렸고. 그리고 제작지원을 받게 됐다고 연락을 받았다. 처음엔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길거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야! 진짜 이걸 만들어야 하는 건가.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좋았던 건가.
=제작지원 결정이 되고 그걸 생각해봤다. 그 시나리오가 아주 단순하다. 그냥 사람들이 보이는 시나리오였던 것 같다. 10대, 20대, 30대 살아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무슨 힘으로 살아가나. 그게 시나리오에 있었던 것 같다.

-이지상 감독님과는 <십우도> 시리즈 작업하면서 알게 된 건가.
=(웃음) 내가 그분 영화 편집도 좀 했다. 아…. 이거는 어떻게 말해야 하나. (웃음) 아, 사실은 그분하고 나하고는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사귀어온 사이고. (웃음) 그래서 시나리오 모니터링 삼아 읽어봤던 거다. 나는 편집일도 공부도 늦게 시작해서. 단편 하나 만들고 나니까 다 빚이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영화일 계속은 못하겠다고 해서 편집을 직업으로 한 거고. 그런데 이지상 감독님이 내가 영화일 하고 싶다고 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셨던 것 같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게 내 인생의 선물이구나. (웃음)

-촬영 전 옌볜에선 어떤 준비 작업을 거친 건가.
=일단 시나리오는 소설에서 출발한 거다. 이지상 감독님이랑 처음 옌볜에 가서 학생들 만나고 같이 시나리오 놓고 이야기했다. 그 소설이 2002년 작품이라 지금의 옌볜과 다른 부분도 있을 수 있으니까. 또 지금의 일부 모습일 수도 있을 거다. 그렇게 옌볜을 왔다갔다하면서 각색을 했다. 근데 해놓고 보니까 이게 이전에 봤던 <푸른 강은 흘러라>와 너무 달라지더라. 그래서 그냥 그건 접고 처음 내가 시나리오에서 느꼈던 것, 나를 좋게 만들었던 것, 거기에만 집중을 했다.

-교실 내 조선족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고, 그러다 사상 논쟁으로 번지기도 하고. 또 PC방에 즐겨가고.
=대사의 아주 조금, 영화 도입부 내레이션이나 철이와 숙이가 복도에서 싸우는 대사는 원작에 있는 거다. 나머지는 옌볜 학생들과 시나리오 모니터링하면서 어투 수정하고 설정을 갖고 썼다. 실제로 학생들이 PC방에 가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일단 PC방이 굉장히 많고 거기도 밤새 영업을 한다. 오후 수업 끝나면 자습 전에 밥을 먹는데 아예 아이들은 PC방에 가서 라면을 먹곤 한다. 또 제일 좋아하는 게 한국 드라마 보는 거고. 이들의 모습을 미화하지 않으려고 했다.

-옌볜에 처음 가서 받은 인상은 어땠나.
=일단 내가 중국말을 못하지만 나가서 돌아다니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간판에 한국말이 많고. 조선족도 많다. 어떤 분들은 친절하지만 또 어떤 분들은 한국에 대해 거리감을 갖고, 심적으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실제로 학생들 만나보면, 한국에서 뭐 오디션 같은 거 시켜준다고 바람 넣어놓고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우리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진짜 찍는 거 맞냐고 물어보고. 그러다 우리가 계속 가서 이야기하니까 마음을 열었달까. 옌볜예술대학 학생들이 우리 영화에도 많이 출연하는데 정말 도움 많이 받았다.

-철이 역할의 남철도 옌볜쪽 학생이라고 들었다.
=옌볜예술대학 4학년 학생이다. 철이는 우리로 치면 과대표 같은 역할이다. 처음 만났을 때 굉장히 반듯하다고 할까, 아니 그보다는 그 친구가 한 말이 내 마음에 남았다. 내가 편집을 가르치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하니까 자기네도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선생님이 와서 가르쳐준다고. 보통은 도와주겠다고 하면 도와달라고 하잖나. 그 친구의 자존감이라고 할까. 그냥 내가 가르치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 말이 남더라. (웃음) 그래도 처음엔 그 친구를 캐스팅할 마음이 없었다. 또 철이의 가장 큰 즐거움이 보디빌딩이다. 몸이 역삼각형이었다. 그러다 어떻게 해서 철이 역할을 다시 급하게 캐스팅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내가 철이를 이야기했는데 다 반대했다. 몸이 그러니까. 그래서 내가 메일로 혹시 할 마음이 있으면 다음에 옌볜 들어갈 때까지 준비해볼 수 있겠냐. 단 지금 몸상태로는 안된다. 살을 빼야 한다. (웃음) 그랬더니 하겠다고. 실제로 10kg를 뺐다.

-언어도 힘들었겠다.
=처음 캐스팅하면서 누가 옌볜 학생이고 한국 학생인지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옌볜에 가서 대학 선생님들이나 원작자 선생님들 만나서 들어보니 TV나 영화에 나오는 옌볜말이 실제 옌볜말이 아니라더라. 매우 서운해한다. 또 옌볜말도 나이에 따라 다르고, 사투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있고. 현장에서는 다 같이 그냥 옌볜말로 대화했던 것 같다.

-실제 모두 옌볜에 가서 찍은 건가.
=한국 장면을 전주에서 나흘 찍은 거 제외하면 다 중국이다. 만화방 장면은 옌볜이고 다른 건 거기서 한 시간 더 들어가면 있는 훈춘에서 찍었다. 사실 중국에 들어가 영화를 찍으려면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계속 기다려도 그게 나오질 않았다. 또 그때가 중국 베이징올림픽 때라 너무 예민해하더라. 어떡하지 하고 있던 중에 양춘식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옌볜에서 글쓰며 활동하는 고등학교 선생님인데 훈춘시에 말씀을 해주셔서 훈춘시가 도와줬다. (웃음) 그런데 또 한번은 공안에 걸려서. (김)예리가 빗속에서 춤을 추는 장면인데 걸려서 테이프도 다 넘겨주고. 그때는 정말 촬영 접는 줄 알았다. 공안이 호텔 밖을 지키고 있었고. 결국 양춘식 선생님이 가서 설득했고. 가능한 한 빨리 찍고 나가라, 도심에선 찍으면 안된다, 뭐 이래서 어떻게든 찍긴 했다. 그래도 다행히 김우형 촬영감독님이 어려운 거 다 찍어주고 가셔서. (웃음)

-백두산 장면은 어떻게 한 건가.
=백두산은 공식적으로 촬영이 안된다. 근데 그 장면을 찍지 않으면 도저히 못 나오겠더라. 완전히 진이 빠진 상태였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기운 내서 한번만 더 가보자고. 배우 두명이랑 선례라는 친구랑 간 거다. 나중엔 이 PD(이지상 감독)님이 촬영하셨는데 길가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안에서 보고 계시다 ‘빨리 올라와!’ 그러면 가서 찍고. (웃음) 근데 가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산의 이끼며, 시간이 준 테라고 해야 하나. 너무 좋았다. 또 그리고 천지에 올라갔는데 햇볕이 너무 좋아서. 정말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었는 물의 색이더라.

-영화가 시간 순으로 흘러가다 유독 철이의 어머니인 수연 에피소드만 역순으로 편집됐더라.
=시나리오상에선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에 가서 상황을 보니 우리가 해야 하는 걸 다 하지 못할 상황이더라. 돌리에서 크레인까지 다 된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돌리도 한번 깔아보니 꿀렁꿀렁해서 쓸 수도 없고. 그래서 크레인 다 접고 시나리오를 정리했다. 우선적으로 찍어야 하는 것과 꼭 필요한 것들. 결과적으로 20여개의 신을 촬영 전에 삭제했다. 그런 단계에서 영화의 틀거리 자체가 바뀌었고. 한국 장면의 구성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지금의 영화 구성을 참 좋아한다. 영화의 힘을 줬다고 생각하고. 그냥 영화 완성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너무 고맙고. 제작지원받은 것부터 영화가 자기 생명력을 갖고 왔다고 해야 하나. (웃음) 연출부는 아직까지 못 찍은 것 때문에 아쉬워하는데 나는 그래도 핵심적으로 내가 시나리오에서 좋아했던 감정은 어느 정도 표현됐다고 본다.

-그래도 아쉬움은 있겠다.
=아쉬움은 있다. 백미를 찍지 못해서. 다른 건 그냥 더 있으면 좋은 장면들이지만. 수연이 두만강에서 물놀이하는 장면을 못 찍은 건 정말 아쉽다. 그게 있어야 수연이 어떤 여잔지, 물의 아름다움이랄지, 생명의 아름다움을 좀더 드러낼 수 있었을 텐데.

-영화가 갑작스런 비극으로 끝난다. 굳이 수연을 죽게 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
=시나리오 이야기하면서 수연이 다친 상태로라도 훈춘에 돌아와 해피엔딩으로 끝내자는 의견이 있었다. 시나리오 읽으면선 사람들이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했고. 근데 난 그것과 좀 달랐다. 그리고 수연의 에피소드는 실제로 벌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속반에 쫓기다 죽는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되는 거 아닌가. 하나의 이야기 차원에서 그걸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 가장 큰 슬픔이 없다면 이 희망은 그저 동화 속의 힘일 뿐인 거다. 비극이지만 우리 일상에 있는 거 아닌가. 수연 같은 비극은 아니더라도 힘든 슬픔이 있다. 그냥 부딪히면서 살 수밖에 없는 거다. 그걸 저 친구들이 어떤 힘으로 버텨갈 수 있나, 시나리오에서 그걸 봤기 때문에 죽음을 피해갈 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영화에서 옌볜을 벗어난 인물들은 다친다. 한국이란 짐을 지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한국 혹은 외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세계가 돼버린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흐르라는 응원의 메시지는 다소 허무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돌아갈 순 없는 길이라 생각한다. 돌아갈 순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이 영화는 그 나아가려 하는 힘이 무엇인가에 대한 거였다. 수연이 한국에 왔다 다시 돌아간다? 이미 돌아갔다 하더라도 그건 되돌아간 건 아닐 거라고 본다. 강도 변하지 않나. 그래서 영화 보고 순수 이야기하고 결국 돌아가자는 이야기냐고 하는 분도 계신데. 돌아갈 수 있으면 비극으로 끝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첫 연출을 해본 소감은 어떤가.
=조감독이 항상 한 말이 좌청룡 우백호라고. 한쪽에 김우형 촬영감독님 있고 또 한쪽에 한철희 동시녹음 기사님 있는데 못 찍고 가는 부분이 있다니 한이 맺힌다고 했다. (웃음) 그런데 난 그분들이 있어서 그나마 이만큼 완성했다고 본다. 사실 편집을 하다가 영화를 만드니까 당황스러운 게 있었다. 한국에서 콘티 작업을 하는데 내가 마스터숏은 어디서, 다음 컷은 어떤 사이즈로,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더라. 예전엔 정말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영화, 나의 영화적 감성을 따랐는데. 이런 게 아니잖아, 미자야.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막상 중국에 가서는 당황했다. 아무한테 말을 못했지만. (웃음) 영화 만드는 거 다 다르겠지만. 나는 참 좋았다. 너무 고생했고 찍지 못한 것도 있지만. <푸른 강은 흘러라>, 내가 이 영화를 참 좋아한다. (웃음) 내가 뭘 못했는지 아니까. 영화 만들기. 참 인생의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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