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더 느끼하게, 하나도 안 느끼하게
2009-10-10
<신이 맺어준 커플> 출연한 인도영화의 황제 샤룩 칸

어느 배우를 그 나라 영화계 최고의 배우라고 소개하는 것은 어쩐지 과장된 표현으로 들리기가 쉽다. 최고의 배우가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영화에 대해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샤룩 칸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옴 샨띠 옴>과 <빌루>에 이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샤룩 칸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대표적인 인도영화 동호회 인영사모(인도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는 인도영화의 대다수가 샤룩 칸의 출연작인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심지어 인영사모식 분류에 따르면 이른바 인도영화 3대 비극으로 <데브다스> <깔호나호> <딜세>를 꼽는데, 이 영화들이 비극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끝에 샤룩 칸이 죽기 때문’이다.

‘Shahrukh sells’의 기원은 물론 인도 현지다. 인도의 대표적인 영화잡지 <필름페어>(Filmfare)는 섹스어필하는 영화는 언제나 돈이 된다는 의미의 ‘Sex sells’라는 표현에 빗대서 ‘Shahrukh sells’라는 표현을 썼다. 단 몇 장면이라도 샤룩 칸이 출연하면 영화의 흥행 성적이 확 달라진다는 의미다.

샤룩 칸은 인도의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인 필름페어 어워즈에서 일곱 번의 최우수 연기자상을 포함, 총 열세 번을 수상한 중견배우다. 코믹, 액션, 멜로 등 폭넓은 장르를 소화할 수 있고, 춤 동작 하나하나에 영화의 스토리와 어울리는 감정 표현을 집어넣을 수 있으며, 반라의 몸에 굵은 물줄기를 쏟아 붓는 폭발적인 장면을 소화할 정도의 카리스마를 갖춘 배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감독, 제작자, 주연급 배우들까지 모두가 누구의 자식 아니면 누구의 조카일 정도로 영화산업 전체가 이미 카스트화 되어버린 인도영화계에서 아무 연고도 없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그야말로 신화와 같은 배우다.

그런데 무엇이 그를 그토록 사랑받게 만들었을까? 한국에서 인도영화는 단순히 뮤지컬 영화로 알려졌지만, 인도 현지에서 그 노래와 춤이 소비되는 방식은 우리의 음악채널에서 뮤직비디오가 소비되는 방식과 똑같다. 그래서 인도영화계에서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연기와 쇼 비즈니스 모두를 인도영화만의 독특한 균형점 위에서 적절히 소화해 내야 한다. 샤룩 칸의 강점은 여기에 있다. 인도 영화산업은 결코 작지 않다. 샤룩 칸보다 잘 생긴 배우가 없을 리 없고, 샤룩 칸보다 춤을 잘 추는 배우, 샤룩 칸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물론 있다. 그럼에도 최소 수십 명에서 많게는 백여 명까지 군무를 추는 장면에서 샤룩 칸만큼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

그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은 남다르다. 샤룩 칸을 처음 본 한국 사람들은 대개 ‘느끼하다’는 반응이지만, 표정이 딱 네 개밖에 없는데도 그 중 하나는 느끼한 표정인 다른 남자배우들 사이에서 그의 담백함은 늘 빛을 발한다. 그의 연기는 다정다감하고 진심이 담겨 있다. 더 강렬한 쪽은 이소룡이었지만 더 사랑받은 쪽은 성룡이듯이,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객들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온다. 정말로 바짝 다가온다.

샤룩 칸의 영화를 보지 않고 인도영화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야쉬 초프라 감독의 <신이 맺어준 커플>은 그런 샤룩 칸의 연기 폭을 보여주는 영화다. 평소에 보여주던 것보다 훨씬 더 느끼한 캐릭터와 기름을 완전히 뺀 깔끔한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두 가지를 한 몸에 담은 배우, 앞으로 10년 뒤에도 지금처럼 최고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성실한 슈퍼스타, 그가 바로 인도영화에 접근하는 첫 번째 키워드, 샤룩 칸이다.

배명훈 (<타워> 작가·발리우드영화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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