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역사> Mundane History
아노차 수위차콘퐁 | 타이 | 2009년 | 82분 | 뉴 커런츠
올해 영화제를 찾은 동남아시아 영화의 경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야기를 미시사적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개인을 통해 정치, 역사, 사회 등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타이의 신인 여성감독 아노차 수위차콘퐁의 <우주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침대 신세를 지게 되는 아케. 그런 그를 위해 아케의 아버지는 남자 간호사 ‘펀’을 고용한다. 펀은 아케를 정성껏 돌보지만, 육체를 잃은 상심에 아케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둘의 관계에 주목하자. 극진한 간호에 아케는 자신을 조금씩 내보이기 시작한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는 꿈부터 “몇해 전 암으로 죽은” 엄마, 그리고 “엄격한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까지 말이다. 그를 통해 펀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던 아케 집안의 균열을 조금씩 알아간다. 그러면서 자신이 보아왔던 원래의 세계가 재편된다. 아케 역시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서 과거를 되돌아본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락없는 간병인과 환자 사이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감독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펀과 아케의 가족사로 확장된 이야기를 그는 인간 존재론적 사유에까지 확장한다. 아케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자신을 마주하는, 자기 반성적인 장면을 통해서 말이다. 하반신 마비로 자신의 세계가 변한 이상 아케는 과거에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그렇게 한 단계 알을 깨뜨리며 성장하는 존재다. 영화는 로테르담영화제 후버트발스 펀드와 부산국제영화제 ACF의 지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