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사부감독의 신작 <게어선>
2009-10-11
글 : 강병진

<게어선> (Kanikosen)
사부 | 일본 | 2009년 | 109분 | 아시아영화의 창

게 잡이 배의 선원들은 노예처럼 일한다. 쉬는 시간은 거의 없고, 밥은 배를 채우지 못하고, 잠도 모자르다. 누군가는 탈출을 꿈꾸다 죽고, 또 누군가는 게처럼 옆으로 걷는 이상증세를 보인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망망대해에 놓인 배안에서 이들이 선택한 건 자살이다. 죽음을 통해 새로 태어나서 더 나은 삶을 살자는 논리는 절망으로 가득한 이들에게 묘하게 설득적이다. 그러나 사는 게 힘든 처지에 죽음이 쉬울 리는 없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이들의 또 다른 선택은 반란이다.

<포스트맨 블루스> <홀드 업 다운>을 연출한 사부감독의 신작 <게어선>은 언뜻 자본주의 시대의 또 다른 전쟁을 묘사하는 듯 보인다. 게 잡이 사업의 책임자는 선원들에게 강조한다. “이건 전쟁이야. 너희들은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는 거야.” 하지만 당장 배고픈 선원들에게 국가적 대의가 와닿을 리 없다. 결국 선원들은 반란을 시도하고 이때부터 <게어선>은 21세기에 다시 만난 <전함 포템킨>이 된다. 그렇다고 <게어선>이 노동자의 가치를 부르짖는 선동적인 영화인 건 아니다. 감독의 스타일답게 개성 있는 유머와 과감한 미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원작은 1920년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고바야시 다키지의 동명작품이다. 1953년 이미 영화로 제작된 이 소설이 다시 영화화 된 데에는 경제적 위기에 처한 현재 일본의 상황이 반영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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