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레드>(Deep Red)
다리오 아르젠토/이탈리아/1975/130분/다리오 아르젠토의 지알로 걸작선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다리오 아르젠토적인 영화는 무엇입니까? 답변은 다양할게다. <서스피리아>는 가장 대중적인 답변이 될 것이고 <수정깃털의 새>는 가장 마니아적인 답변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정답을 하나 내놓아야 한다면 역시 <딥 레드>일 수 밖에 없다. 심령술사 헬가는 심령학대회에서 살인마의 존재를 감지하자마자 살해당한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살인범을 목격한 마크는 기자 지안나와 함께 수사에 나선다. 그리고 살인마가 동요를 틀어놓고 살인을 저지른다는 사실로부터 결정적인 단서를 잡아나간다. 물론 아르젠토 영화에서 이야기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 감히 말하자면 다리오 아르젠토는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 이야기 직조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남자다. 무슨 상관 있으랴. 아르젠토의 영화에서 중요한 건 정신나간 색채와 미장센, 섹슈얼한 죄의식으로 점철된 살인의 미학이다. 고블린의 음악과 함께 벌어지는 <딥 레드>의 살인 장면들은 화면을 멈추고 감상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는 <수정 깃털의 새> <슬립리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 <딥 레드>와 함께 아르젠토의 신작인 <지알로>도 상영된다. 아르젠토 역시 내한한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팬이라면 영화제 기간중 부산에 오지않는 걸 일생일대의 실수로 여겨야 할 지도 모른다. 그는 다시 오지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