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한국 고전, 녹물 벗고 새 생명 얻다
2009-10-12
글 :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한국영화 회고전 상영작 <분례기>와 <검은 머리>는 어떻게 발굴·복원되었나

한국영상자료원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조직인지 이젠 꽤 알려져 있다고 자신하지만, 한편으로 필자는 ‘필름 아카이브(Film Archive)’의 중요성에 대한 국내의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지 않나 생각할 때가 많다. 혹시나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다는 가정 하에 영상자료원에 대한 소개로 시작할까 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수집, 보존, 연구하고 또 전시, 상영, 발간하는 기관이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각 영화제의 회고전 부문에서 영상자료원의 활동반경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번 1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 회고전 섹션에서 선보이는 발굴작 <분례기>(1971)와 디지털 복원작 <검은 머리>(1964)는 바로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영상자료원의 역할과 기대치 그리고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일 것이다.

위장 수출 논란 거친 뒤 힘들게 되찾은 <분례기>

<분례기>

유현목 감독의 1970년대 문예영화 <분례기>는 2007년 홍콩필름아카이브로부터 16mm 프린트를 수집, 영상자료원 자체 기술로 35mm 프린트로 복원한 작품이다. <안개>(1967) 등 작품 선정에 신중했던 윤정희가 주연을 맡았고 그해 대종상을 휩쓴 영화였지만 정작 실체가 없어 잊혀져갔던 작품이다. 필자가 처음 <분례기>와 마주친 것은 2006년 홍콩필름아카이브의 데이터베이스 목록을 통해서다. 당시 국내에 보존되어 있지 않은 한국 고전영화들의 ‘거취’를 해외 필름아카이브를 통해 조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이효인 전 원장이 지휘한 영상자료원의 성과로 중국전영자료관을 통해 <미몽>(1936) 등 일제강점기 조선영화 8편을 발굴한 일이 높이 평가받지만, 사실 당시 수집조사 작업은 러시아, 대만, 홍콩 등 전방위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필자는 한국·홍콩 합작영화와 동남아시아 수출영화를 찾기 위해 홍콩필름아카이브의 데이터베이스 검색에 몰두했다. 검색 기능이 한국영상자료원의 KMDb만큼은 강력하지 못해 심증이 가는 감독과 배우의 이름 그리고 영화 제목을 일일이 한자로 입력해보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홍콩필름아카이브 DB 목록에서 찾아낸 것이 30편정도 되었고, 2006년 12월 일주일간 홍콩필름아카이브를 방문해 하루에 5편 이상의 영화를 감상하는 강행군 끝에 1965년작 <여간첩 에리샤>(최경옥)부터 1972년작 <남과 북의 당신>(박호태)까지 30여 편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홍콩필름아카이브는 수출한 한국영화라는 기록이 있으면 디지베타 복사본을 받는 조건으로 반환할 것이고, 한·홍 합작영화라면 홍콩 측 저작권자의 승인을 받는 조건으로 복사를 허락하겠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이를 밝혀내는 작업이 만만치 않은 대목인 것이다. 이 영화들이 ‘진짜’ 합작영화인지, ‘위장’ 합작영화인지 혹은 ‘진짜’ 수출영화인지 ‘위장’ 수출영화인지 그 진위를 가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에서 합작영화나 수출영화에 외화 수입쿼터를 부여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외화는 제작자들에게 큰돈이 되었기 때문에, 위장편법이 다반사였고 원판 네가티브 필름에 사운드 필름까지 통째로 보내버리기 일수였다. 문화를 지킨다는 인식이 없었던 그런 슬픈 시대가 있었다.

결국 수출영화는 8편의 16mm 작품부터 반환받았는데 거기에 포함된 것이 바로 <청춘극장>(강대진, 1967), <여랑>(김묵, 1971) 그리고 <분례기>였다. 또한 합작영화 중에서는 저작권자의 신원을 확보한 <손오공>(1962, 김수용) <조용한 이별>(1967, 정창화) 등 네 편을 35mm 프린트로 복사해서 수집했다. 지금도 영상자료원의 수집팀은 남은 합작영화를 모두 수집해오기 위해 홍콩을 오가며 홍콩 측 저작권자의 신원을 수배 중이다.

수집한 <분례기>의 프린트는 중국어와 영어 자막이 붙박이로 달려 있고, 중국어 대사와 음악이 녹음되어 있다. <배나무산의 치정꽃(梨山痴情花)>이라는 중국어 번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또 다른 버전의 <분례기>인 것이다. 외화쿼터를 획득하기 위해 수출한 한국영화가 중국어 자막과 사운드가 입혀져 ‘화어권’에 유통되었던 1970년 전후의 동아시아 영화시장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주제로 남는다.

복원 기술의 진화, <검은 머리>

<검은머리>

이만희의 필모그래피 중 빼놓을 수 없는 느와르 영화 <검은 머리>는 ‘드디어’ 복원을 시도한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그간 한국의 영화학자들이 꼭 복원해야할 작품의 1순위로 손꼽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남인영 교수가 “영상자료 복원의 문화적 의미”(<영상문화정보> 26호)라는 글에서 복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검은 머리>를 언급한 것이 2002년 일이니 벌써 7년의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한국영상자료원은 세계 어느 아카이브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복원 기술을 갖추게 된다.

한국 고전영화의 디지털 복원이 첫 발을 내디딘 것은 2006년 일이다. 아날로그 복원에 주력했던 영상자료원은 HFR로부터 상업영화의 최신 기술을 도입, 디지털 복원을 시도하는데 첫 번째 프로젝트 대상작이 바로 2005년 대만영상자료원에서 발굴한 <열녀문>(1962, 신상옥)이었다. <열녀문>의 디지털 복원판은 2007년 60회 칸영화제 클래식 부문에서 상영되었고, 이어 2008년 <하녀>(1960, 김기영), 2009년 <연산군>(신상옥)으로 “칸 영화제 3년 개근”을 해냈다. 조선희 전임 원장과 영상자료원이 이뤄낸 중요한 성과 중 하나다.

<검은머리>는 영상자료원의 여섯 번째 복원작이자 ‘부산 디지털복원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이다. 부산영상위원회와 부산국제영화제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의 공동 사업으로 진행했다. 부산영상위원회가 사업 책임을, 부산국제영화제가 현금 지원을, 영상자료원이 원본 필름의 아날로그 복원 작업과 디지털 스캔 및 품질 관리를 맡았고, 디지털 복원 파트는 부산영상후반작업시설인 (주)에이지웍스(AZ Works)가 해냈다.

<검은머리>의 디지털 복원이 의미 있는 것은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간 영상자료원의 디지털 복원은 필름의 먼지(dust), 스크래치(scratch)를 지우고 깜빡거림(flicker), 미세한 진동(stabilization), 색감변화(grain) 등을 잡는 것에서 출발해 <하녀>에 이르러서는 붙박이 자막을 지워내는 것까지 성공한 바 있다. <검은 머리>의 첫 번째 롤은 8분여 동안이나 마치 실험영화처럼 검은 물결의 커튼이 펼쳐지길 반복한다. ‘주기적인 막면 이탈 현상’ 즉 철 캔의 녹물이 필름 옆면으로 침투한 것을 지우는 작업이다. 영상자료원 보존기술센터의 설명에 의하면 아쉽지만 부산영화제에서는 일정상 1차 복원판(약 40%의 작업 결과본)으로 상영하고 이 작업을 바탕으로 추후 2차 작업을 검토한다고 한다.

지난 7년간 영상자료원은 한 단계 도약했고 특히 수집과 복원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였다. 신임 이병훈 원장이 수집과 복원 분야에 힘쓰겠다고 밝힌 바 있듯이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분례기>와 <검은 머리>만큼이나 중요한 고전들이 발굴되고 복원되어 여러분들께 선보일 것이다. 한국의 영상문화가 한층 더 두터워졌음을 이번 한국영화회고전 섹션을 통해 꼭 확인하시길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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