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삶과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 <사랑의 기억>
2009-10-13
글 : 주성철

<사랑의 기억> Memory of Love
왕 차오 | 중국 | 2009년 | 90분 | 아시아영화의 창

영화는 잔잔한 호수로 몸을 내던지는 한 여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것 같은,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기억>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이전 작업들로부터 변화를 모색하고자 하는 중국 6세대 감독 왕 차오의 의지이기도 하다. 자신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장편 데뷔작 <안양의 고아>(2001)로 중국 지하전영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던 그가 담담한 멜로 장르에 다다른 것이다. 왕 차오는 베이징영화학교를 졸업하고 첸 카이거의 조감독으로 경력을 쌓고,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했던 인물이다.

의사 리는 교통사고로 실려 온 어느 커플의 수술을 맡게 된다. 그런데 그 부상자가 바로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이것저것 따져 묻고 싶지만 아내는 사고로 인해 부분기억상실증으로 3년 전의 시간으로 가 있는 상태다. 말하자면 함께 부상을 당한 현재의 연인은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자신도 아니라 바로 3년 전 사귀었던 다른 남자(물론 현재는 남남이나 다름없는)에게 마음이 가 있다. 그녀에게 처음 보는 얼굴인 의사 리는 그저 담당 의사일 뿐이다. 리는 어떻게 아내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까.

영화는 여러모로 왕 차오의 전작들과 궤를 달리 한다. <안양의 고야>가 하층민의 삶을 사실주의적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면, <낮과 밤>(2003)은 정식으로 중국 정부의 허가를 얻어 만들긴 했으나 한 탄광촌을 무대로 한 이야기였다. 그에 반해 <사랑의 기억>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일선물로 외제승용차를 선물하는’ 부르주아 계층의 이야기다. 작가로서의 새로운 탐색인지, 타협인지 섣불리 단정하긴 힘들지만 어쨌건 영화가 삶과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기억은 어떻게 이성을 좌우할 수 있을까,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의 현재와 과거는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을까, 영화는 꽤 의미심장한 질문들을 던져준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