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몸이 힘들어야 ‘진짜’가 나오더라
2009-10-14
글 : 강병진
<게어선>의 사부 감독

사부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숨이 찬다. 판단보다 행동이 앞서는 인물들이 목적지도 모른 채 일단 뛰고 구르는 모습은 그의 영화를 채우는 진풍경이다. 신작 <게어선>은 뜀박질에서 더 나아가 아예 죽음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려는 청춘의 이야기다. 망망대해의 어선에서 죽도록 일만 하던 선원들은 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차라리 다시 태어나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자는 의도다. 비장한 결의로 시도한 집단자살은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정말 다시 살게 되어 행동의 필요성을 깨달은 선원들은 쿠데타를 계획한다. 사부 감독은 <게어선>을 통해 “젊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은 원하는 것들을 너무 손쉽게 얻는다. 얻지 못했을 때는 남을 탓한다. 무작정 절망하기 전에 무엇을 해봤는지 깨달아야 할 것 같다.”

<게어선>의 원작은 1920년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걸작인 고바야시 다키지의 동명 소설이다. 1953년에는 <전함 포템킨>의 영향을 고스란히 수용한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게어선> 또한 <전함 포템킨>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다. 특히 배를 탈출한 선원들이 우연히 러시아 어선을 만나 희망을 찾는 부분은 우회적인 오마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는 <전함 포템킨>을 모른다. “일본에서도 다들 <전함 포템킨>을 이야기하더라. 그건 책인가, 영화인가? 그렇게 비슷한 점이 많나?” 영화학을 전공하거나 연출부 생활을 한 적도 없이, 오로지 열정으로 영화를 만들어 온 사부에게는 영화의 역사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에너지를 분출할 곳을 찾아 헤매는 그의 영화 속 청춘들과 비슷한 태도다. “어떤 절망에서든 열정만 있으면 희망도 있다. 희망이 있는 곳에는 유머도 있다. 내 영화 속 청춘들이 온갖 고난에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그가 항상 배우들을 숨차게 만드는 것도 같은 이유다. “뛰고 구르는 연기는 연기를 뛰어넘는다. 몸이 힘들면 ‘진짜’가 나오게 마련이니까.”(웃음) 현재 진행 중인 다음 프로젝트는 총 4개. 당분간 그는 일본과 해외를 오가며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할 예정이다. 사부 감독 또한 ‘진짜’를 찾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중이다.

사진 박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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