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디그 바르막 감독의 <아편 전쟁>은 유머러스한 영화다. 미군 2명이 아프가니스탄의 한 마을에 불시착해 마을사람들과 함께 지내야한다. 서로에게 조심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소소한 일상을 통해 친해지기도 한다. 그런 풍경들을 감독은 유머러스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이 코믹한 표현 안에는 아프가니스탄 사회에 대한 시선과 생각이 진중하게, 또 묵직하게 담겨져 있다. 14일 오후 세디그 바르막 감독을 만나기 전, 영화 수입사 관계자들로부터 “아직 한국에는 판권이 안 팔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처럼 재미있는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볼 권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편전쟁>의 한국 개봉을 촉구한다.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두 가지 사연이 있다. 하나는 칸다하르 지역에 있는 친구가 해준 이야기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로 가야 하는 미 공군 병사 2명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기 싫어서 일부러 아프가니스탄의 한 마을에 불시착하게 된 사연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충격적이면서 강력했다. 또 다른 하나는 북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이들이 전쟁으로 피난 갔다 돌아오자 집이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마을 근처의 버려진 러시아 탱크에 들어가서 살았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를 잃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이 두 이야기를 ‘아편을 재배하는 한 마을’이라는 한 공간에 불러들였다. 아프가니스탄은 ‘아편’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아편 재배가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다레잔 오미르바예프 등 수많은 거장들을 배출한 모스크바국립영화학교에서 영화를 배웠다.
=처음부터 영화감독을 직업으로 삼고자 한 건 아니었다. 5살 때였다. 우연히 극장 천막의 구멍에서 나오는 빛을 보고 ‘무엇일까’ 해서 들여다봤더니 영사기가 있더라. 그걸 보고 영사기사가 되려고 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영화관 근처를 돌아다니며 극장 티켓도 줍고, 영사기의 렌즈와 빛, 그리고 거울을 이용해 이미지를 왜곡해보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극장 티켓도 팔았다. 그때 영화란 이미지뿐만 아니라 대사와 음악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에게 달려가 음향기기를 사달라고 졸랐더니, 사비를 털어 사주시면서 ‘더 이상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지 마라’고 말씀하셨다.(웃음) 그리고 15살에 아프가니스탄 영화학교의 라티프 아흐마드 교장님의 도움으로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고 있었던 소련의 모스크바국립영화학교로 유학을 갔다.
-러시아에서의 생활이 궁금하다.
=영화가 생활이었다. 학교에서는 지금은 거장이 된 감독들로부터 수업을 받았고, 수업이 끝나면 극장에 가서 하루에 3편씩 챙겨봤다. 러시아어를 배우면서 러시아문학도 열심히 탐독했다. 특히, 안톤 체호프, 톨스토이 등 고전문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런 것들이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자양분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와 영화를 찍었는데, 탈레반 정권에 의해 모두 상영 금지되었다.
=당시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 사진, 회화, 문학 등 모든 예술이 탈레반에 의해 탄압받았다. 개인적으로 그 시절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영화 만들기는 당연히 불가능해서 북아프가니스탄으로 가 해방 전선에 참여했다. 그것도 사정이 안 좋아지자 파키스탄으로 갔고, 그곳에서 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매일 다른 직업을 전전했다. 2년 후,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와서 첫 장편 <오사마>를 제작했다. <오사마>는 내 망명 생활의 산물인 셈이다.
-<아편전쟁>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비전문배우라고 들었다. 그게 사실이라고 안 믿길 정도로 자연스럽다.
=지인들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캐스팅했다. 캐스팅 과정 중, 스콜피온 역을 맡은 소년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길을 가던 중 세차를 하고 있던 그 소년을 우연히 발견했다. 아이지만 에너지가 강렬했고,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바로 그게 내가 찾던 스콜피온이다. 극중 스콜피온이 욕을 많이 하기에, 아이에게 다가가 욕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길거리를 떠나갈 정도의 큰소리로 나에게 욕을 퍼부었다.(웃음) 당장 캐스팅했지.
-영화는 탈레반 이후의 아프가니스탄을 고민하는 것 같더라.
=맞다. 이 영화는 비극의 연속이다. 계속 암울하니까 나중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그런 면에서 ‘비극적인 희극’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는 탈레반 정권 시절의 민중들의 삶이다. 탈레반은 오로지 ‘아편’만을 위해, 그들의 이익만을 위해 전쟁을 벌였다. 그 진실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