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조직의 2인자가 살해됐다. 핑크 바이올렛 립스틱이 묻은 유리잔, 벨벳 단추, 귀걸이 한쪽이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다. 강력반 형사 성열(차승원)은 그것이 아내 지연(송윤아)의 흔적임을 알아차리고 동료 최 형사 몰래 현장의 증거를 지운다.
지난 2월10일 용인의 한 세트장에서 진행된 윤재구 감독의 <시크릿> 촬영현장. “슛 들어갑니다.” 겨울의 끄트머리를 지겹게 붙잡던 찬바람도, 현장에 모인 스탭들도 모두 숨을 죽인다. 흘러내리지 않도록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에 검은색 슈트를 말끔히 차려입은 차승원은 사건 현장을 휘휘 둘러보다가 이내 미세하게 표정을 바꿔 복잡한 성열의 심경을 표현한다. 차승원의 표현대로라면 “무방비 상태에서 어퍼컷을 맞은” 한 남자의 모습이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나라도 증거를 감추지 않았을까. 난 아까 (귀걸이) 먹으려고 했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시크릿>은 형사의 아내가 살인 용의자라는, 즉 형사는 자신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증거를 은폐하고, 조직폭력배 두목은 범인을 잡으러 나선다는 ‘역설적 상황’에서 출발한다. 흥미로운 설정 속에 놓인 인물들은 전혀 흥미롭지 않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시험하거나 혹은 시험받는다. <세븐데이즈>의 시나리오작가로 이름을 먼저 알린 윤재구 감독은 이것을 “후(Who)보다는 와이(Why)가 중요한 영화”라는 말로 정리한다. 아직은 시나리오 작업보다 연출이 더 어렵다고 하지만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내는 작업이 마냥 버거운 건 아닌 듯하다. “조명도 촬영도 전문가인데다가 약속한 대로 딱 찍는다”는 차승원의 말을 믿어본다면 올 겨울 꽤 그럴싸한 스릴러영화 한편이 탄생하지 않을까. 윤재구 감독, 차승원·송윤아 주연의 <시크릿>은 12월3일 그 비밀을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