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야말로 진정한 4차원이다. 옴니버스영화 <뉴욕, 아이러브유>에서 브렛 래트너가 연출한 에피소드에는 기막힌 메소드 연기의 신봉자가 등장한다. 한 소년이 억세게도 운 나쁘게 졸업 파티 당일 여자친구와 이별하자 약국의 약사가 그에게 자신의 딸을 소개한다. 사진 속의 소녀는 귀엽다. 기고만장한 채로 약사의 집에 당도한 소년의 미소는 그러나 이내 자취를 감춘다. 소녀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소년의 실망에도 그녀는 휠체어를 흔들면서 춤까지 춘다. 그리고 상대의 의사 따윈 안중에도 없이 소년에게 공원 길로 집에 데려달라고 제안하는데, 그렇게 도착한 곳이 으슥한 공원의 벤치다. 나뭇가지에 벨트를 걸어 몸을 일으킨 소녀는 “내 팬티를 벗겨보라”고 권하고, 소년이 그토록 갈망하던, 보는 입장에선 지극히 골 때리는 밤이 깊어간다. 다음날 아침 센트럴파크에서 깨어난 소년은 화들짝 놀라 휠체어를 밀면서 약사의 집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런 그를 맞는 건 호통이 아니라 현기증마저 일으킬 반전이다.
<유주얼 서스펙트> 버금가는 깜찍한 사기극(?)의 주범은 올리비아 설비, 독특한 걸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소녀가 주인공인 <주노>에서 레아 역을 맡아 엘렌 페이지 못지않은 재능을 발산한 여배우다. 2008년 <베니티 페어>에서 ‘할리우드의 뉴웨이브’를 이끌 주역 중 하나로 언급된 이 당찬 신성은 한편으로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탄생한다’는 말을 이른 나이부터 실천한 드문 신념의 소유자다. 86년생 소녀치곤 이례적으로 뉴욕 아메리칸 글로브 시어터와 런던 로열연극아카데미에서 셰익스피어식 연기를 훈련받는가 하면, 커리어에 집중하고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극중 데이비드 듀코브니의 딸이자 아내로 출연한 일본영화 <비밀>의 리메이크작 <더 시크릿>을 제외하곤 그녀의 출연작 중 대부분은 국내에서 공개되지 않았으나 선댄스 관객상을 거머쥔 <더 웨크니스>나 안나 파킨·맷 데이먼 등과 협업한 <마가렛>의 개봉쯤엔 우리도 깨닫지 않을까. 연기의 열혈팬인 그녀의 분투가 서서히 열매를 맺는 중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