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키득거리며 훔쳐보는 선한 대통령
2009-10-27
글 : 김용언
사진 : 이혜정
장진 감독은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나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꿈을 경유하며 현실을 이야기하려 한다. 인터넷과 신문을 통해 접하는 짜증스러운 세력 싸움 대신 국가와 국민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할 때 대통령 개인의 행복도 따라온다는 소박한 믿음으로 충만하다. 장진 감독을 만나 <굿모닝 프레지던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굿 프레지던트.’ 제목의 자막이 뜨는 첫 순간은 이러하다. 그리고 재빠르게 ‘굿’과 ‘프레지던트’ 사이에 ‘모닝’이 들어간다. 어찌 보면 타이틀 디자인만으로도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전체 얼개를 단숨에 눈치챌 수 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다정한 웃음을 선사하는 멋진 대통령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감독은 “사실 이건 꿈이잖아. 이런 대통령 없다는 거 우리 모두 다 알잖아”라고 슬쩍 눙치면서, 대신 대통령들에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며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여유를 찾아보자는 권유를 덧붙이는 셈이다.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으며 장진 감독이 오랜만에 허허실실 코미디 장르로 귀환한 작품인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선한 의도로 가득하다.

인간 혹은 직업인으로서의 대통령

15년 동안 세명의 대통령이 이런저런 인연으로 스쳐지나가며 ‘나라가 행복해지는 길, 대통령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을 고민한다. 로또 당첨, 짝사랑, 동해 인근의 일촉즉발 위기, 이혼, 부동산 게이트 등은 숨가쁘게 이들의 결단을 촉구한다. <굿모닝 프레지던트>에는 그런 세명의 이야기가 ‘임기 전, 청와대 입성, 퇴임 뒤’라는 대통령의 3단계에 맞추어 펼쳐진다(그리고 그 3단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장동건이 연기하는 차지욱이기도 하다).

이 세명이 울고 웃는 인간적인 파노라마가 흘러가며, 결국 우리는 또다시 각자의 레퍼런스를 떠올리게 된다. 그때 그 대통령들,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과 더불어, 문재인 전 비서실장, 한명숙 전 국무총리,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 등까지 스멀스멀 떠올라 스크린에 겹쳐 보인다. 심지어 당 이름도 새한국당, 통일민주당, 사회진보당이다. 이쯤 되면 현재진행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장진 감독은 어디까지나 ‘특정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한국의 대통령들이 너무 많은 드라마를 찍으셔서,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느 시기의 누군가’와 연관이 될 수밖에 없다. (웃음) 하지만 난 이 영화로 정치적인 논쟁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믿고 싶었다. 내가 사는 이 시대가 얼마나 좋은 시대인데 이런 걱정을 하고 있나,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싶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많은 이들에게 무척 힘든 시절이었다. 우리는 많은 사랑을 받았던 두명의 대통령을 먼저 떠나보냈으며(한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또 한명은 노환을 이겨내지 못했다), 한명의 현직 대통령을 두고 격렬한 분노와 찬성의 극단을 경험했다. 대통령, 이라는 세 글자만 들어도 이제는 ‘아이고 또 무슨 일이’ 하면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을 지경이다. 그런데도 장진 감독은 이 소재를 꺼내들었다. 대체 왜, 어떤 이유로?

장진 감독은 처음엔 “대기업 총수를 주인공으로 하면 촉각을 곤두세울 사람이 몇명 있지만,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다고 하면 신경쓸 사람이 한명밖에 없으니까”라고 농담처럼 툭 던졌다. 그러다가 곧 “글쎄, 너무 오래된 아이템이라… 사실 김정호 대통령(이순재)과 차지욱 대통령 이야기는 몇년 묵은 아이템이라서, 출신성분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세 번째 한경자(고두심) 이야기만 이번에 새로 썼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기억나는 하나의 이미지는 있다. 천호대교 개통 당시, 꼬마 장진은 보도에 서서 지나가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손을 흔들었다. “요만한 틈새로, 대통령 손만 보이더라고. 그리고 몇달 지나 10·26이 터졌다. 손을 흔들던 그 사람이 총 맞아 죽었다니까 어린 마음에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또래보다 조금 더 심각하게 대통령이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잠깐. 방금 ‘대통령이라는 직업’이라고 했다. “최규하 대통령을 묘사하는 어떤 글에서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공무원으로 끝났다’라는 문장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직업이지, 직업… 그리고 직업마다 각자의 윤리와 강령이 있는데, 대통령은 그게 남다르게 도덕적이고 애국적인 무언가가 필요한 직업인 셈이다.” 다시 말해 어렵게 비비 꼴 것 없다. 장진 감독은 “특별한 잘못 없으면 명예퇴직 없이, 5년 임기를 꽉꽉 채우고 물러날 수 있는 그런 직업” 세계에 관한 영화를 만든 것이다.

이 영화에는 세명의 대통령을 관통하는 공통 질문이 있다. 나의 행복과 그들의 행복 중에서 경중을 가늠할 수 있을까? 사적으로는 고통일 수 있는 상황이 공적인 행복으로 승화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일까? 영화 말미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느 순간엔 단 한명만을 위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혹은 “한명의 대통령이 전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하듯, 모든 국민은 대통령이 행복하길 바란다. 우리 국민들은 생각보다 착하고 좋은 국민들이다”. 흔히 개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공적인 가치 추구)가 하나로 합치되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러나 장진 감독은 그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대통령이 우주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불과 1년 전엔 당신 옆에 같이 있던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 사람도 인간이니까, 그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라는 직업의 윤리상 그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초심, 나라를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그 초심을 지킬 때 그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모든 상상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할리우드영화 속 대통령을 보아왔다. 때로는 로맨틱한 연인이고 때로는 액션 영웅이고 때로는 비열하고 상처 많은 인간의 모습을. 영화뿐이겠는가. 대통령의 사생활을 가혹하리만치 생방송으로 낱낱이 파헤치는 해외 언론을 통해서도 수많은 대통령을 접했다. 빌 클린턴에서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니콜라 사르코지, 블라디미르 푸틴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한국에 국한된다면 조금 정치적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소재를 다루다보니 장진 감독의 상상력이 혹시 해외로 뻗어나간 건 아닐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밤 9시만 되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야 했다. 시청각교육을 아주 단단히 받은 셈이다. (웃음) 그 이상의 자료는 솔직히 필요없었다. 미술쪽이야 프로덕션 디자이너들이 알아서 잘 만들어주셨고, 연출쪽으로 자료가 부족해서 다른 걸 참조할 만큼 고생한 건 절대 없다. 내가 아는 정보만 해도 너무 방대하단 말이다! (웃음)”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대통령의 낯선 일상을 조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할리우드의 해피엔딩 판타지라든지 인터넷 뉴스의 단골 메인인 해외 정치계를 참조한 게 아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모든 상상은 시작되었다.

그 상상력을 영상화하기 위해 많은 장치들이 동원되었다. 우선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통령 역을 하기 위해 ‘모두가 최고라고 동의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이순재, 장동건, 고두심이라는 세명의 배우들은 기존에 보지 못했던 표정들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그러면서도 그들이 대통령이라고 믿을 수 있게끔 하는 핍진성을 믿음직스럽게 담보한다. 특히 장진 감독은, 배우 본인도 조금 걱정스러워했던 코미디 연기를 놀랍도록 맛깔나게 연기한 장동건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가 할 줄 아는 것이 되게 많은데, 지금까지 몇몇 메뉴만 시킨 거다. 게다가 그 메뉴가 너무 맛있다 보니 자꾸 그것만 시킨 거지”라고 칭찬할 정도로, 장동건은 힘을 빼고 약간은 허허실실하게 때로는 적절한 카리스마의 힘을 발휘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 대통령의 골치아픈 속내를 멋지게 연기했다.

장진 감독

장진 감독은 촬영 전의 에피소드를 즐겁게 회상했다. 처음 리딩을 준비할 당시, 장동건이 긴장한 탓인지 ‘너무 몸에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감독은 이 스타 배우에게 대담한 제안을 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연습실 빌려서 일대일로 단독 리딩을 하자고. “쉽지 않은 제안을 선뜻 받아들여줘서 정말 고마웠다. 결과적으로 장동건이 그렇게 릴렉스하고 유니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게 정말 좋다.” <킬러들의 수다> 전까지는 엄숙하고 선 굵은 연기로만 기억되던 신현준에게서 유쾌한 웃음을 끌어낼 때의 짜릿함처럼, 장진 감독은 장동건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즐거운 낯섦’을 기뻐했다.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의 사람들’도 흥미롭다. 각 당의 의원들뿐 아니라 참모진, 조리사, 주치의, 경호실장 등을 짧지만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부분들은 거의 대통령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부분 극적으로 희화화한 다음 장진 감독이 짓궂게 키득거리는 부분이 더 많긴 하지만, 대통령 못지않게 인간적인 면모와 픽 하고 바람빼는 유머코드가 풍성하게 배어들어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도드라지는 인물은 아무래도 매 3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조리장이다. 대통령이 참모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슬며시 흘릴 수 있으려면 “아주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화법으로, 국민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그런 인물”이 필요했고, 결국 각 대통령의 입맛과 스타일에 맞게 음식을 준비하는 조리장에게 책임이 주어졌다. “모든 해답은 국민의 소리에 있다는 가장 원론적인 진리를 말하고 싶었달까. 주변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했다. 대통령이 무슨 문제만 생기면 조리장을 찾으니 너무 싱거운 해결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 너무 전지전능해 보이지 않느냐라고. 대신 연기 톤을 되게 무식하게, 정교하지 않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풍자보다는 우화쪽에 가깝다. 혹은 우화보다는 동화에 가깝다. 민주주의와 개인의 행복이라는 절대적인 가치에 대한 믿음과 저 멀리 정치판과 이곳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가깝게 연결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그래서 영화 전체도 자주 ‘흔들린다’. “핸드헬드까지는 아니고, 카메라 록을 푼 상태로 호흡하는 것에 따라 자연스럽게 흔들리게 간 것”이라 묘사되는 그 화면은, 청와대라는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벌어지는 희로애락을 우리가/국민이 키득거리며 훔쳐볼 수 있는 느낌을 준다. 관망하고 조망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 속에 들어가고 그들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그런 효과를 주는 화면이다.

장진의 첫 전체 관람가 영화

그렇게 장진 감독은 철저하게 ‘대중영화’라는 것을 숨기지 않은 채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되게 넓은 연령층’을 넘나들 수 있는 보편성을 담보하기를 희망했다. “등급 심사 받을 때 15세 관람가로 넣었는데 전체 관람가가 나와버렸다. 좋은 것 같으면서도 왠지 쪽팔리는 듯한 기분이…. (웃음) 한번도 전체 관람가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영화가 뭐 하나 날카로운 게 없어서 그런 걸까?”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그는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팍팍한 현실에서 다시 한번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 가장 이상적인 코미디가 되기를 희망했다. 이제는 관객이 그 희망에 화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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