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닭은 잘 안 죽는다.
잔인한 이야기 같지만, 역시 죽여본 사람이 잘 죽인다. 20여년 전 “닭 좀 잡아보라”는 제안에 기겁을 한 적이 있다. 충청도의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선배의 집을 찾았을 때다. 손님을 대접하겠다며 마당에 있는 닭을 잡아 닭도리탕을 해먹자는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옆에서 좀 거들라는 거였다. 오, 노! 일행 중 다른 이들도 손사래를 쳤다. 소심하고 비겁한 나는 닭의 비명조차 듣기 싫어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 선배도 닭을 잡는 데엔 초보라 낑낑거리며 일을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마냥 손을 놓고만 있기는 미안해 ‘마무리 작업’을 도왔다. 깨끗하게 먹기 위해 남은 닭털을 손으로 일일이 뽑는 거였다. 그것조차 닭살 돋는 일이었다. 그날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 중엔 서투르게 닭을 잡다간 아주 곤란하고 당혹스런 상황을 맞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목이 떨어져나가고도 채 죽지 않고 푸드득 날아다녀 주변을 피칠갑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거였다. 생각만 해도 기분 더럽다.
닭이 아닌 사람이라면 어떠할까. 공무집행의 하나로서 사람의 숨을 끊어야 한다. 합법적으로 반드시 사람을 죽여야 한다. 여기에도 매뉴얼과 기술이 있다. 잘해야 한다. <집행자>에서 그 장면을 찬찬히 관찰했다. 손과 발을 단단히 묶고 머리에 용수를 씌운다. 천장에 매달린 밧줄로 목을 건다. 단추를 누르면 바닥이 열리면서 밑으로 떨어진다. 가끔 단추가 고장나기도 하는데, 이럴 때 발로 바닥을 쳐서라도 열어야 한다. 사람은 잠깐 파드닥거리다가 축 늘어진다. 방심하면 안된다. 죽은 줄 알고 시신을 수습하려다가 깜짝 놀라기도 한다. 한참 지났는데도 숨이 남아 있어서다. 마저 죽여야 한다. 이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찌하겠는가. 손으로 목을 더 졸라야 하는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사람을 억지로 죽여야 한다는 말인가.
<집행자>는 교도관들의 시선으로 사형제도를 바라보는 영화다. 최진호 감독은 법 집행 구조의 최말단에서 악역을 맡은 이들의 곤혹스러움을 통해 ‘과연 죽여야 하는지’ 묻는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틈틈이 물어본 결과로는 “응, 당연히 죽여야지”가 더 우세했다. 심지어 소설가 조정래 선생 같은 이들도 신문 칼럼을 통해 사형제 폐지에 조심스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꽤 많은 대중은 강호순이나 유영철 같은 흉악범에게 품는 복수심과 적개심이 충족되기를 원한다. 그래야 공평한 세상이라고, 사필귀정이라고 받아들인다. 관용은 무기력해 보인다. <집행자>가 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본다. 사형폐지 반대론자 MB가 사형집행을 못하도록 막는 일이다. 그보다 먼저,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이 많이 움직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