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 진영의 일대 각성을 촉구하였던 지난 1회에 대한 호응은 물론 아니겠으나, 최근 개봉영화에선 고품질의 나쁜 놈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어 필자를 흥분시키고 있다. 그중 외계인(alien)을 빙자하여 외국인(alien)에 대한 차별/착취/억압/폭력 등등을 논함으로써 SF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다른 곳도 아닌 <씨네21> 같은 유력지로부터 끌어낸 바 있는 <디스트릭트9>를, 우리는 거론치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디스트릭트9>에서 나쁜 놈이란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그 갯가재형 외계인? 아니면 걔들 격리이주 시키려다가 도리어 자신이 외계인이 돼버림으로써 본의 아니게 개과천선하고 마는 남우 주연? 물론 아니다. 얘들은 착한 놈 진영이잖아.
그렇다면 어딘지 이라크/아프가니스탄/관타나모에 있는 미군을 연상시키며, 외계인 및 남우 주연을 조지려다가 오히려 자신들이 조짐을 당하게 되는 무뇌충 특공대원들이 이 영화 최고의 나쁜 놈들인가. 물론 얘네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전혀 파악도 못한 상태에서 일단은 외계인을 조지고 보는데 목숨 걸고 있다는 점에서, 거의 터미네이터에 육박하는 걸출한 또라이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또라이성 하나만으로 수석 나쁜 놈의 권좌를 차지하기에는, <디스트릭트9>의 선수층은 너무도 두텁다.
이쯤에서 독자 여러분께서는 최후의 후보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 외계인들을 격리 수용하고 억류함으로써 걔네들이 가진 강력한 무기를 차지하려는 무기회사 ‘다국적 연합’(MNU) 말이다. 그 이름도 불길스런 얘들은 과거 <에이리언2>부터 최근 <아이언맨>까지 SF사상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나쁜 놈들로서, 뒷구멍에서 외계인·지구인 납치, 불법구금, 생체실험 및 살해, 살인교사, 사건은폐 및 날조 등의 갖가지 종합 야비 행각을 벌임으로써 우리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고 있다. 더구나 얘들은 반듯한 정장 차림과 점잖은 말투 등을 내세운 착한 놈 행세까지 유려하게 해줌으로써 특A급의 나쁜 놈性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디스트릭트9>에는 얘네들마저 굴복시킨 나쁜 놈이 있다. 그놈들은 다름 아닌, 각종 관련자 인터뷰부터 액션장면 헬기생중계까지 <디스트릭트9>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놈들, 즉 매스미디어이다. 얘네들은 무기회사의 거짓말을 광범위하게 유포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스스로 앞장서 그걸 뻥튀기 튀김으로써 무기회사의 뜻이 아무 장애없이 관철될 수 있는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있다. 더구나 이 나쁜 놈들에게 무방비로 노출·감염된 다수의 대중은,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장 무서운 가해자로 돌변한다는 점에서, 얘들의 사악성은 <디스트릭트9>의 수석 나쁜 놈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하겠다.
기억하라. 또라이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다수 대중의 맹목과 공포’라는 무기는, 심지어 외계인의 對지구인 전쟁을 자극할 정도의 범우주적 파워를 지닌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