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김새론] 엄마, 나 꼭 이거 입어야 해?
2009-10-30
글 : 김용언
사진 : 이혜정
<여행자>의 김새론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를 보고 한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9살 소녀 진희를 연기하는 김새론은 경이로운 감정의 진폭을 넘나든다. 이 놀라움은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에서 안나 파퀸을 처음 보았을 때와 비견할 만하다. 삶의 상처를 세세히 이해하기엔 버겁지만, 진희/김새론은 그 핵심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녀의 분노와 슬픔과 수줍음과 설렘은 삶이 진행되는 방향과 일치한다. 김새론은 <여행자>에서 진희를 살고, 진희 역시 김새론의 삶을 산다.

“진희가 슬프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어요. 아빠가 자기를 데리러 올 거라고 끝까지 믿으니까요.” 어린이 프로에는 자주 출연했지만 연기는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흙을 파고 들어가 눕는 장면’을 찍을 때 현장에서 대기하던 심리치료사에게 “힘들지 않아요. 감독님이 저를 이 역할에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해 주변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했다. “그 장면을 한 네댓번 찍었는데, 겁은 안 났고요. 울다가 흙을 덮으니까 흙이 눈에 자꾸 들어가서 고생을 조금 했어요.” 답답한 게 싫어서 비맞는 장면에서도 체온을 보호하는 특수옷을 벗어버렸고, 담장 위에 올라가는 장면에서도 와이어를 거부했다고 했다. 오히려 1975년의 아이답게 촌스런 옷과 헤어스타일을 해야 하는 게 고민이었다. “의상을 처음 맞출 땐 꾹 참았는데 집에 와서 엄마한테 나 이거 꼭 입어야 해? 하고 물어봤어요. (일동 웃음)”

우니 르콩트 감독은 영화의 전체 내용을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고, 당일 대본만을 매일 건넸다.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나오면 감독님에게 물어봤고요, 미리 이렇게 해봐야지 하고 조금씩 생각했던 게 제 맘대로 안돼 그냥 자유롭게 했어요.” 방학 기간 내내 놀러가지 못하고 영화를 찍어서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어린이 프로가 아니라 영화에 나오니까 상승한 거 같아서” 뿌듯했다. 게다가 칸국제영화제에도 참석하지 않았는가! “나 같은 애가 그런 큰 영화제에 가서 되게 기분 좋았고, 거기서 상 탔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에 상도 타고 싶어요.” 초등학생 때 조금 더 연기를 하다가 중간에 공부를 하고, “고아성 언니만큼 컸을 때 또 연기하고 싶다”는 이 소녀의 꿈에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하루빨리 그녀를 또 다른 스크린으로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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