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cine scope] 감히 누가 누굴 용서하는가
2009-11-10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글 : 정재혁
김형준 감독의 <용서는 없다> 촬영현장

“밥 먹고 합시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스탭들이 밥차로 향했다. 같이 식판을 받아 데이블에 앉았는데 유독 류승범만 수저를 들지 않는다. “아까 빵을 먹어서요.” 물컵을 앞에 두고 앉은 모습이 왠지 조심스럽다. 몇개의 작은 역할들을 제외하면 2007년 <라듸오 데이즈> 이후 2년 만의 영화. 그는 이번 영화에서 토막살인 용의자 이성호를 맡았다. 과거의 상처를 힘겹게 끌고 사는 무거운 인물이다. 다소 긴 시간을 털고 일어난 그에게 어떤 결심이라도 있었던 걸까. 아픔과 복수와 동정과 비극이 뒤엉킨 시나리오. 확실히 밥이 잘 넘어가는 영화는 아니다.

촬영은 두 남자의 대결로 시작됐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이성호(류승범)와 강민호(설경구)는 서로 다른 이해로 거래를 한다. 강민호의 딸을 유괴한 채 자신을 석방하라는 용의자 이성호와 과거의 오점을 숨긴 채 딸의 목숨을 돌려달라는 부검의 강민호. 열을 밖으로 터뜨리는 설경구와 세상을 냉소하듯 안으로 읊조리는 류승범의 대조되는 부딪침도 보기 좋게 그려진다. 설경구는 “아주 확실한 친구예요. 준비도 굉장히 철저하고. 제가 쏙쏙 뺏어 먹어야죠”라고 농담하더니 촬영이 시작되자 셔츠가 젖을 정도로 열중이다. 설경구 특유의 터질 듯한 대사톤도 여전하고.

류승범은 여전히 불안 속에 있다. 테이크와 테이크 사이 외진 복도 의자에 앉아 이성호의 내면을 훑듯 침잠된 모습을 보니 그가 <용서는 없다>에서 발견한 과제를 알 것도 같다. “내가 왜 이러는 거 같아요?” 하나의 대사를 몇 가지 톤으로 뱉어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카메라 앞에 선다. 그리고 다시 붙는 두 남자. 팽배한 긴장감, 페이지를 넘기는 긴 대사, 격하게 변하는 동선 때문에 테이크는 늘어나고 배우들은 인물에 점점 지쳐간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닐 수 있다”는 김형준 감독의 말처럼 인생이란 용서나 화해 따위로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드라마가 아닌가. 저녁때가 됐을 무렵 촬영장을 뜨며 문득 생각했다. ‘밥 먹고 할 수 있을까.’ <용서는 없다>는 지독한 영화다. 12월31일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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