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액세서리]
[그 액세서리] 사기꾼 생활백서; 메모
2009-11-12
글 : 강지영 (GQ KOREA 패션디렉터)

사짜, 타짜, 협잡꾼, 야바위꾼들의 우상이자 사기꾼계의 전설인 블룸 형제는 이미 아동기에 일타쌍피의 ‘15단계 콤보 계략’으로 혁혁한 사기 역사를 열었다. 형인 스티븐(마크 러팔로)이 열살, 동생 블룸(에이드리언 브로디)이 일곱살 때 일이다. 형제는 사기친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산처럼 쌓아놓고 채 녹기도 전에 질려서 그만 먹는, 고아 처지에는 상상도 못할 소원을 이룬다. 결국 형제는 사기의 참맛을 알고 즐기고 남들에게도 권하는 환상의 사기 복식조로 성장한다.

곧 이들에게는 두명의 여자 동지가 생긴다. 뱅뱅(린코 기쿠치)은 목 뒤에 ‘쓸모없는 건 모두 터뜨려라’라는 문신을 새긴 일본 여자로 마론인형과 볼펜을 이용한 폭파가 특기이고 아는 영어 단어는 단 세 가지뿐이어서 형제와는 주로 눈짓으로 의사를 교환한다. 페넬로페(레이첼 바이스)는 높은 성에 사는 4차원 은둔녀인데 너무 외로운 나머지 바이올린, 아코디언, 하프, 외발 자전거와 저글링, 심지어는 탁구까지 모두 독학으로 마스터하는 세월을 보내다가 모종의 이유로 사기팀에 합류한다.

영화는 이들 네명이 프라하와 몬테네그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오가며 벌이는 각종 사기행각을 뒤쫓는다. 감독인 라이언 존슨은 주인공 각각의 캐릭터를 위해 디테일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밝혔는데 뱅뱅을 위해서는 빨간 비닐 모자와 노란 머리, 방사능 연구소에서나 유용할 괴이한 선글라스를 준비하고 페넬로페에게는 남성용 볼러를 씌우고 울 망토, 표범무늬 코트를 입혔다. 심약한 성격의 블룸은 넥타이 대신 실크 스카프를 종종 매고 밝은색 슈트를 좋아하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그리고 사기팀의 리더인 스티븐을 위해서는 쌍안경과 몰스킨 노트를 준비했다.

<블룸형제 사기단>

스티븐은 평소 모든 것을 기록하고 계획하는 빈틈없는 성격이어서 그의 말을 듣다보면 어찌나 그게 다 맞는 말인지, 에스키모마저도 그가 파는 얼음을 샀다는 전설이 ‘사기필드’에서는 교교하게 전해 내려온다. 남들이 덜렁 종이 한장에 이거 저거 썼다가 잃어버리고 불에 태워먹고 하는 동안, 스티븐은 밴드가 달린 검정 가죽 커버의 몰스킨 노트에 그림도 그리고 일기도 쓰고 계략도 정리한다. 그가 쓰는 건 라지 사이즈의 드로잉 노트로 연한 베이지색의 빳빳한 종이와 페이지 끝이 둥글게 처리된 세부 덕분에 그게 몰스킨임을 곧 눈치챌 수 있다. 평소 스티븐의 좌우명이 ‘쓰여지지 않은 삶이란 없다’란 걸 기억할 때, 몰스킨 노트보다 더 그를 잘 설명할 있는 소품은 없다. 그야말로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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