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focus] ‘사후지원제’ 도입이 능사일까
2009-11-17
글 : 이영진
효율과 성과 강조한 영화발전기금 지원사업 개편방안 뜯어보니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면 지원은 의미없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0년 영화발전기금 지원사업 개편방안을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얼마 전 조직개편을 단행해 덩치를 줄인 영진위는 11월12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한 업무보고에서 선택과 집중, 간접지원, 사후지원 등 3가지 원칙에 따라 기획개발지원 강화, 대출지급보증계정 출자, 공공온라인유통망 구축 등을 비롯한 핵심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진흥위원회 개혁방안 보고’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업무보고는 조희문 새 위원장 체제의 영진위가 향후 지원사업에 대한 계획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자리. 조 위원장 취임 뒤 곧바로 국정감사가 이어지면서 업무계획 발표 기회가 없었다.

선택과 집중… 32개 사업 15개로 축소

이번 업무보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지원사업의 내용보다 추진방식이다. 콘텐츠 발굴을 위한 기획개발 지원 강화, 중형 투자조합 결성으로 자본 조달 구조 다양화, 불법복제 근절을 통한 부가시장 활성화 등은 강한섭 전 위원장 체제에서 논의됐거나, 더 거슬러 3기 영진위 때부터 설계된 것들이다. 12일 영진위는 기존 지원사업의 문제점으로 ‘소액다건, 백화점식 사업구조로 성과 부족’, ‘직접지원에 따른 영화업계, 단체의 공공 의존도 심화’, ‘사전지원 방식으로 인한 수혜자의 책임감 저하’를 들었다. 쓰는 돈은 많은데 결과가 신통치 않고, 매번 지원해주다 보니 영화계 자생력이 떨어졌으며, 미리 돈을 주니 관리가 안되고 급기야 모럴 헤저드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속되게 표현하면, 지금까지 영진위는 “돈 뿌리고 욕 먹었다”는 것이다.

돈 뿌리고 박수받기 위한 영진위의 첫 번째 원칙은 선택과 집중. 영진위는 일단 현재 진행하고 있는 32개 사업을 2010년에 15개 사업으로 줄일 계획이다. 효율성을 기준으로 유사한 사업을 한데 묶는다는 전략이다. 일례로 독립, 예술,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은 ‘제작지원사업’으로 통합한다. 반면 극장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요가 많지 않은 상영관 시설비 융자사업 등은 폐지한다. 영진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기존 지원사업이 현 위기 상황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면서 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전과 달리 간접지원, 사후지원의 비중도 크게 높아진다. 기존의 지원사업 방식이 “사업공고, 심사, 지원금 지급은 물론 사후관리까지 해결하는 원스톱 서비스 형태”였다면 간접지원의 경우 이원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전과 같이 결정 단계까지는 영진위가 책임지되, 이후 관리 업무는 영진위가 선정한 위탁업체가 맡는 형태다. 영진위는 한국영화 시나리오마켓 사업, 글로벌 기획역량강화 워크숍 사업 등을 비롯해 온라인비즈니스센터 설립 등 2010년 신규 사업에도 이를 적용할 생각이다. 영진위쪽은 “사업평가에서도 이같은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라면서 “영진위가 지원만 하고 관리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일각의 지적을 받아들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사후지원제도 또한 올해까지 한건도 없었지만, 내년에는 기획개발, 독립·예술영화 지원, 해외 진출 등 5개 사업에 적용할 예정이다.

공모 통한 경쟁입찰, 성과는 미지수

구체적인 세부안까지 이번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진위의 이번 발표가 논란을 촉발할 지점도 분명 있다.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폐지되는 ‘공공상영관네트워크 사업’이 대표적이다. 지역 단위의 독립영화 상영회 및 공공 라이브러리 사업 등을 지원했던 공공상영관네트워크 사업의 폐지는 2기 때부터 강조했던 영진위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에서 상당히 퇴보한 조치다. 한 독립영화 관계자는 “강한섭 전 위원장 시절부터 내년에는 이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는 언질을 들었다”면서도 “다양성영화 전용관 및 개봉지원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영진위쪽 해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독립, 예술, 마스터영화제작지원 사업을 기존 한국영화제작지원 사업으로 통합하고, 다양성, 국제공동제작, 기획개발에이전시 사업 등을 중형투자조합 사업에 포함하는 방안 또한 구체안이 어떻게 마련되느냐에 따라 영화계의 반응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한 영진위 관계자는 “해당 사업을 하나로 통합한다고 해서 기존에 각 부문에 지원해왔던 금액이 크게 감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정 비율 이상을 지원하는 쿼터제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반론도 만만찮다. 한 제작자는 “굳이 그럴 거면 명칭을 통합하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그렇다면 포장만 새로 해서 내놓은 정책 아니냐”고 비판한다. 그는 또한 “공정성보다 공평성에 신경쓰려 한다”는 정초신 부위원장의 발언이 “지원사업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보다 영화계 단체의 안배만 강조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덧붙였다.

간접지원 방식 역시 “모럴 헤저드의 위험을 막고 지원사업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지만, 굳이 공모를 통한 경쟁입찰로 관리 사업자를 선정한다고 해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과거 영진위에 몸담았던 영화인은 “영진위와 정부는 그동안 돈과 인력의 효율적 사용을 주장해왔다”면서 “그렇다면 새 위탁업체를 선정하는 수고보다 현재 영진위 직원이 좀더 적극적으로 지원사업에 결합하도록 하는 것이 더 맞지 않나”고 반문했다. 해당 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감안하면 외부 업체의 전문가보다 영진위 직원이 직접 관리 업무를 맡는 것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신조인 “현장 중심” 정책에 더 부합한다는 뜻이다.

‘스탭 인건비 쿼터제’ 등은 참신

이번 영진위의 발표 중 가장 아쉬운 건 사후지원제의 부분 도입이다. 사후지원제도의 경우 과거 영화진흥공사 시절에 주로 썼던 지원방식이다. 사후지원제는 사전제작 보다 지원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고,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 또한 높다. 매년 영진위의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 후보 선정에 따른 논란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사후지원제와 함께 “영진위 지원금의 25% 이상은 배우 및 감독급 스탭의 개런티를 제외한 인건비에 쓰도록 한” 스탭 인건비 쿼터제 도입이나 “투명한 자금 집행을 위해” 클린 카드제를 전면 실시한다는 방안 등은 물론 참신하다. 다만 제작 활성화에 기여할 것 같진 않다. 결국엔 해외영화제 수상작이냐, 아니냐 등의 일률적 잣대를 도입할 수밖에 없을 텐데 구태여 과거의 지원방식을 부활시킨 이유가 궁금하다.

위원장 교체 이후 두달 만에 뭔가 대단한 청사진을 내놓을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다. 강한섭 전 위원장 시절 영진위가 겪었던 외풍과 내홍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남은 시간 또한 많지 않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조희문 새 위원장의 임기는 2년이 채 남지 않았고, 위원의 임기는 내년 6월이다. 영진위 내부를 다독이고, 영화계를 자극하려면, 현장의 영화인과 머리를 맞대는 일부터 다시 해야 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영진위가 방향을 잃고 허우적댔던 건 영화계의 비난보다 무관심이었다. 연말까지 영진위는 스스로 말한 것처럼 ‘한국영화 발전의 동반자’로 거듭날 수 있는 카드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사진제공 영화진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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