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김낙형] “아니, 날 어떻게 보고…”
2009-11-20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낙타는 말했다>의 김낙형

제대로 낚이지 않고서야 대학로를 터전으로 배우로 십년, 연출만 십년이 넘은 김낙형이 영화 주연을 맡을 일은 없어 보였다. 물론 기억을 꽤 거슬러 올라가 보면야 조재현이 출연한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 몇 장면 출연한 적도 있다. 그래봐야 그건 마침 현장에 놀라갔는데 홍기선 감독이 ‘배우 안 왔나 보다. 네가 해라’ 해서 얼결에 투입된 경우다. 그런데 조장규 감독의 영화 <낙타는 말했다>는 한참 달랐다. 단편영화에 김낙형 자신이 운영하는 극단 ‘76단’ 배우들의 연줄을 놔주면서 인연을 맺은 조 감독은 좀체 이번 역할은 ‘형 아니면 안된다’며 떼를 썼다.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주영광’, 이 인물이 가관이다. 막 감옥에서 출소해 과부와 재혼하고 재개발이 예정된 땅을 사서 희망을 걸어보지만, 되는 일 하나 없는 남자. 인생 안 풀리다 보니 자연히 입에 욕을 달고 살고, 남 싫다는 짓은 죽어라 해댄다. 굳이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혼자 격정에 쌓여서 흥분하는 인물, 그런 순수 난봉꾼이 주영광이었다. “아니, 나를 어떻게 봤기에 이런 역할을 하라고 하나 싶더라고요. (웃음)”

역할을 떠나 연기 자체가 무리지 싶었다.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한 것도 까마득한데,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더 못할 일이었다. 그래도 “연습도 하지 말고 그냥 나와도 돼요”라는 감독 말을 의지 삼아 덜컥 주연에 도전했다. 연출자 직업병 탓인지 연기만 한 게 아니라 아예 팔 걷어붙이고 시나리오 재고 때부터 감독과 머리 맞대고 극본 쓰고, 현장 답사까지 참여했다. “연출할 때 배우들이 못하면 이해가 안됐는데, 막상 내가 카메라 앞에 서니 쉽지 않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쫄면’ 그거야말로 ‘이 동네 출신’으로서 못할 짓이었다. 이른바 용기가 필요했다. 구정물 도랑에 빠지는 투혼도 아끼지 않고 주영광에게 바치기를 한달여, 카메라 문법에 통달할 때쯤 촬영도 끝났다. “좀 할 만하니까 끝나데요. 작은 역 정도는 또 해보고 싶어요.” 선뜻 영화 출연을 다짐하지만, 12월부터 열리는 ‘연극열전3’의 개막작 <에쿠우스> 협력연출로 바쁜 그는 어느 모로 보나 프로페셔널한 연출자다. 문제는 연기자로서 그의 재능이 단박에 누구라도 알아챌 만큼 탁월하다는 점. 예기치 않은 그의 인생 2막이 예고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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