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동안 스쿠터를 타고 다녔다. 하늘색 혼다 투데이. 홍대 앞 스쿠터 가게에서 받아서 난생처음으로 일산까지 타고 왔다. 스쿠터를 처음 타면서 제일 곤란했던 건 바로 헬멧이었다. 그건 보자마자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지능형 헬멧이었다. “네 머리는 남들보다 크니?” 헬멧이 물었다. 나는 “아니야, 그렇게 크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도저히 내 머리통은 그 헬멧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망설이자, 가게의 점원은 “충분히 넣을 수 있습니다”라고 내게 말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나는 시키는 대로 턱 끈을 양손으로 잡아당기며 머리를 헬멧에 밀어넣었는데… 그게 들어가더라. 그 순간부터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 내 머리는 정말 남들보다 크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결국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나온 내 머리통을 보고는 완전히 좌절하고 말았다).
지구 멸망 때 죽으면 행복하지 뭐~
그 스쿠터를 타고 서울 시내를 뻔질나게 쏘다녔다. 제일 좋았던 길은 충정로에서 서소문을 거쳐서 시청으로 가는 저녁 길이었다. 두번의 고가도로로 연결되는 길인데, 고가도로 위를 달리노라면 마치 빌딩과 빌딩 사이를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동안, 서울 시내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촛불시위로 밤이 환했고, 물대포로 길바닥이 젖었다. 웃는 사람도 봤고 우는 사람도 봤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쓰러져 잠든 사람도 있었다. 언제였을까, 아마도 6월10일이었던 것 같은데 서소문 고가에서 고가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한참 내려다봤다. 그 행렬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고가 아래로 지나갔다. 그런 시절들이 지나갔다. 스쿠터를 타고 서소문 고가를 지나가며 보던, 나를 스쳐가는 불 밝힌 빌딩들처럼.
그렇게 스쿠터 위에 앉아서 나는 모든 것들이 지나가는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좋은 일들도, 나쁜 일들도 지나간다. 좋은 시절은 조금 천천히, 그리고 나쁜 시절은 조금 더 빨리 지나가면 참 좋겠지만, 모든 시절들은 공히 같은 속도로,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느낌상 좋은 시절쪽이 좀더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원래 인생이 뭐, 그 따위’라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38년하고도 몇달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모두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라면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는 거야.” 스쿠터 위의 명상은 대개 그런 식의 결론을 낳았다. “지나간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러자 헬멧은 말한다. “그러니까 네 머리가 남들보다 크다는 거야. 머리 크기를 줄이고 몸 크기를 늘려보는 게 좋겠어. 이제 국가에서 건강을 관리해주는 생애전환기도 맞이했으니까 말이야.” 헬멧을 쓰고 있으면 머리 크기는 두배에 이르는 것처럼 보인다. 뇌가 아니라 뇌를 둘러싼 것들이 생각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요컨대 헬멧을 쓰고 스쿠터 위에 앉아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파주>를 보러 갔더니 <2012>의 예고편을 보여주더라. 로스앤젤레스일까, 샌프란시스코일까? 지진 같은 게 일어나더니 도시가 완전히 박살나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예매하라고 하던데, 예고편을 보고 있노라니까 뭐랄까, 행복한 마음까지 들더라. 내가 죽는 순간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고 나와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그동안 함께 살 수 있어서 참 행복했었다고, 또 당신들을 무척 사랑했으며, 함께 웃고 떠들었던 시간들이 참 즐거웠다고 말할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멀쩡하게 살아서 술도 마시고 놀러다닐 게 불을 보듯 뻔한데도 나만 죽을 운명이라면 내가 당장 그 영화표를 예매하겠지만, 예고편 보니까 다들 죽던데 뭐가 겁이 날까. 아주 행복하지.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도대체 우리가 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걸까?
올해의 마지막 장면을 보았다
정작 무서운 영화는 <파주>더라. 영화를 본 사람이 내 소설과 비슷하다고 해서 ‘음, 명작영화로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나니 머리가 복잡하고 기분이 착잡해지더라니. 어쩐지. 그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은 물대포를 피해서 서 있는 철거대책위원장 김중식(형부)에게 최은모(처제)가 “왜 이런 일을 하세요?”라고 질문할 때였다. 그 물음에 김중식은 씁쓸한, 말하자면 생애전환기의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엔 멋져 보여서 시작했는데, 그 다음에는 갚을 게 많아서였고, 지금은 그냥 할 일이 자꾸 생기는 것 같네.” 이처럼 무서운 대사가 어디 있는가? 멋져 보여서 시작할 때 그는 선배 부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갚을 게 많아서 그 일을 계속할 때 그는 아내가 죽는 걸 지켜봐야만 했고, 그냥 할 일이 자꾸 생길 때는 처제에게 “한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지구의 종말까지는 내가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종말은 이렇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선의로 시작되든, 악의로 시작되든 뭔가를 하면 할수록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인간이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될 때. 이 지경에 이르면 거기에는 선의도 악의도 없는 것이다. 마흔이 가까워지니까 나 역시 선의도 악의도 없어지더라. 네 진심을 알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받는 상처가 너무 크다. 그래서 “걍, 넌 아무것도 하지마”라고 말하면, 그게 바로 한 인간의 종말이다. ‘죽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예매하라’는 카피는 아무래도 <2012>보다는 <파주>에 어울리는 것 같다. 적어도 생애전환기에 접어든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순간의 안개는 <파주>의 모든 서사를 바꿔버린다. 결국 지나가고 나면 그 진실은 남은 흔적으로 따져볼 수밖에 없다. 때로 우린 상처로 지난 일들을 다시 경험한다. 마지막 순간에 인류가 다 같이 멸망한다면, 나는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혼자 외롭게 죽는다면, 난 ‘이게 다 뭐였냐?’고 악을 쓸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은모는 헬멧을 쓰고 스쿠터 뒷좌석에 앉아 카메라를 한참 바라본다. (남은 두달, 볼 것도 없이) 올해의 마지막 장면으로 꼽는다. 지능형 헬멧의 도움을 받으면 그 모든 일들의 의미를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겠지만, 그럴 리가. 가면 갈수록 선의와 악의, 행복과 불행이 서로 뒤섞이고 삶의 서사도 안개 속처럼 흐릿해진다. 우리의 머리가 남들보다 크든 크지 않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