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 회고록]
[박중훈 스토리 21] 마흔 살 배우에게 ’퇴물’이라니…
2009-11-20
글 : 박중훈 (영화배우)
정리 : 주성철
다섯 번째 형사 연기 <강적>과 최고의 파트너 안성기 선배와의 <라디오 스타> 에피소드

<천군>을 끝내고 조민호 감독의 <강적>을 하게 됐다. 형사 역할만 어느덧 다섯 번째였다. <투캅스>(1993)에서는 강직한 형사, <투캅스2>에서는 비리형사, <아메리칸 드래곤>에서는 인터폴(국제형사),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는 깡패 같은 형사, <강적>에서는 삶에 찌든 형사를 연기하게 된 거다 <강적>에서는 형사 그 자체보다 개인적 사연이 많은 밑바닥 삶을 사는 가장의 이야기에 매료됐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강적> 역시 흥행에 또 실패했다. 그래도 흐뭇했던 건 감정이 들어가는 장면에서 내 얼굴에 깊은 주름이 보여서다. 난 배우에게 주름은 ‘훈장’ 같다는 생각을 늘 한다. 로버트 드 니로, 숀 코너리, 클린트 이스트우드, 모두 아름다운 주름을 가졌다.

가장 멋지다고 보는 한국 중견 여배우는?

이런 주름의 매력은 비단 남자배우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몇해 전 영화 <맨츄리안 캔디데이트> 뉴욕 시사회가 끝나고 조너선 드미 감독, 메릴 스트립과 저녁을 함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의 주름은 정말 섹시했다. 그리고 지난해 역시 조너선 드미 감독의 주선으로 시고니 위버와 뉴욕에서 저녁을 함께했는데 그녀 역시 매혹적인 주름의 얼굴을 가졌다. 두 배우 모두 우리 나이로 환갑이 넘었지만 성실한 자기 관리로 에너지 넘치는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멋져지는 여배우가 많이 있다. 그중 이미숙 선배님의 자기 관리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배우는 팽팽한 피부 경연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실제 나이를 인정하고 자신감있게 자기를 가꿔나간다면, 관객은 함께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배우에게 진심어린 사랑을 보낼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지만 여배우를 오랜 시간 가장 가깝게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드는 생각은 간혹 여배우들이 팽팽한 외모에 대한 강박을 지나치게 가진 것은 아닌가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꽃피고 신록이 우거진 봄여름의 산도 멋지지만 단풍이 물든 가을산도, 흰눈이 내려앉은 겨울산도 역시 아름다운 것이다.

작품의 결과가 계속 안 좋아서 난감해 있을 때 눈에 들어온 작품이 바로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였다. 이준익 감독과는 <황산벌>로 함께한 기억이 좋았던데다 무엇보다 다시 안성기 형과 만난다는 느낌이 듬직했다. 그런데 사실 애초 시놉시스에는 가수만 있고 매니저는 없었다. 퇴물가수와 라디오 여자PD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계속 회의를 하다가 내가 ‘매니저의 비중을 키워서 나와 성기 형이 오랜만에 호흡을 맞추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고, 제작자 정승혜를 포함한 모두가 동의했다. <라디오 스타> 하면 난 아직도 제작자 정승혜 생각이 많이 난다. 절친한 친구였고 누구보다도 나를 배우로 인정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젊은 나이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 친구의 존재는 아직도 고스란히 내 마음에 남아 있다. 특히 <비와 당신>을 들을 때면 그 친구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선배와 난 변하는 사람이 참 싫다”

안성기 선배와 처음 만난 게 1986년이었고 <칠수와 만수>(1988)로 함께 첫 영화를 한 뒤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이어 <라디오 스타>까지 22년 동안 총 네편의 영화를 했다. 종종 했던 얘기지만 20년 넘게 선후배로 지내오면서 나에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큰형 이상의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동시에 베스트 프렌드이기도 하다. 또 인간적으로는 존경하는 인격자다. 사실 그렇게 각별하게 지내온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TV시대가 열렸다. 컬러TV가 보편화되면서 충무로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거기에다 검열과 외화 쿼터까지 더해 한국영화계는 거의 참혹하다 싶을 정도의 암흑기였다. 실력있는 연기자들은 방송국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배우들도 겹치기 출연을 반복했다. 요즘은 배우가 한 작품 끝내고 다음 작품 하고 그러는 게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그때만 해도 배우를 만나면 “요즘 몇 작품 해?”라고 묻는 게 일상적인 인사였다. 그런 게 너무나 당연시되던 시기에 안 선배와 나는 겹치기 출연을 하지 않았고 늘 충무로에 있었다. 그런 척박한 시대를 관통하면서 안 선배와 나 사이에는 어떤 연민이랄까 묘한 암묵적인 동병상련이 있다.

동질감을 느끼는 데는 이런 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감성쪽이 발달한 대신 이성쪽이 약한 경우가 있다. 그런 식으로 균형이 맞지 않다보니 비교적 책임의식이 결여돼 있기도 하다.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취소하고, 자기가 한 말에 대해 무책임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안성기 선배는 그런 면을 굉장히 싫어하고 나 또한 정말 싫다. 그리고 둘 다 변하는 사람을 참 싫어한다는 점이다. 충무로 영화계는 돈을 벌었다 망하고, 모두가 찾는 흥행감독이 됐다가 몰락하고, 인기가 많았다가 사라지고 하는 등 처해진 상황이 자주 바뀐다. 그래도 한결같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변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그러다보니 안 선배나 나나 변한 사람 싫어하고 변치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 한결같은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는 점이 같은 것이다.

내 어머니가 해주신 얘기 중 늘 가슴에 새기는 말이 있다. “어린아이 너무 나무라지 마라. 내가 걸어왔던 길이다. 노인 너무 무시하지 마라. 내 갈 길이다”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안성기 선배는 나와 배우 색깔이 분명 다르지만 근본적인 지향점은 같다. 차종은 다르지만 가는 길이 같다고나 할까. 안 선배의 모습에서 늘 내 갈 길을 보고, 나 또한 지금 내가 걷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오직 진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

<라디오 스타>는 막상 개봉하고서 몇몇 언론의 언급에 어이없던 적이 있었다. 그 일례로 한 일간지에서는 극중 인물 최곤과 나를 비교하며 ‘영화배우로서 얼마 안 남은 그의 실제 모습과 겹친다’는 식으로 쓰기도 했다. 당시 난 20년 넘게 쉬지 않고 누구보다도 왕성히 영화를 찍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었으며 나이도 이제 막 마흔살밖엔 안된 사람이었는데, 영화 속 퇴물가수 최곤의 모습과 내가 겹친다는 식으로 얘길 하는 거다. 평소에는 한국영화계에 롱런하는 중견배우가 없다는 사명감어린 탄식성 글을 쓰다가 이럴 때는 굳이 영화와 연결시켜 퇴물배우라 말하는 기사에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임팩트있게 관심 끄는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격려해주지는 못할망정 사실관계를 왜곡하며 한줄 써대는 그들의 모습이 내게는 씁쓸하게 비쳐졌다. 인생이 만일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기차라면 나는 어제도 달렸고 오늘도 달리고 내일도 그럴 거다. 변함없이 나는 쭉 가고 있다. 다만 터널을 지날 때는 안 보일 뿐이다. 햇살 가득한 들판을 달리는 걸 보면 잘 나간다고 할 테지만 가끔은 비 오는 날씨를 만날 때도 있고 터널 속으로 들어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난 늘 성실하게 부산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라디오 스타>에서는 처음으로 일체의 메이크업도 없이 찍었다. 나름의 연기 플랜이 있었다면 이제 박중훈이라는 배우의 호흡이 대중에게 낱낱이 다 읽혔다는 데서 출발했다. A, B, C의 호흡이 있다면 이제 사람들은 내가 A로 들어갔을 때 B를 눈치채고 또 B로 넘어가면 C를 알아차린다. 말하자면 이제 나에게 연기는 성냥개비 탑 쌓는 것과 같다. 초반에 하나둘 쌓을 때는 막 올라가는데 일정 높이까지 가게 되면 무너지지 않게 딱 하나 올리기가 너무 힘들다. 그러니까 난 이제 관객에게 친숙함을 얻은 반면 그에 못지않게 신선함을 잃었다. 그럴 때 무엇으로 승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오직 진심으로 해야 한다는 거다. 가령 아직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은 젊은 배우들은 뭘 해도 관객이 그 마음을 읽을 수 없다. 그러니까 신비롭게 보이고 의미있게 느껴진다. 예전에 <박하사탕>(1999)의 설경구의 연기를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는데, 가령 시간이 지나 이미 친숙해진 지금의 설경구가 다시 그 역할을 한다면 그 감동이 그대로 느껴질지 의문이 든다. 그만큼 배우로서 관객과의 거리가 좁혀진 거다.

<라디오 스타>는 바로 그 진심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악적으로 보이는 내가 맨 마지막에 가서 “형이 그랬지? 저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며. 와서 좀 비춰주라. 형 돌아와” 하면서 우는 한 장면에 이 영화의 승부를 건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영화 속 잔재미 같은 것들은 성기 형 몫으로 돌렸다. 사람들은 나에게서 그런 것들을 기대했을 텐데 그 반대로 전략을 짠 거다. 직접 부른 영화 속 노래 <비와 당신>을 촬영기간 내내 차에서 틀어놓고 따라 부르고 연습하면서 인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실제로 강원도 영월에서 촬영 때 묵었던 숙소와 영화에 나오는 우리 둘의 여관방도 같은 곳이다. 외부와 차단된 상태로 영월에서 그렇게 지내다보니 그 감정에 더욱더 젖어들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처럼 정말 영화 속 순간을 살면서 연기한다는 기분을 <라디오 스타>로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개봉 뒤 관객이 내 진심을 알아줬을 때 난 마치 번지점프라도 한 듯 짜릿짜릿 가슴이 벅차 터져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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