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spot] “우리를 움직인 건 엘튼 존”
2009-11-26
글 : 장미
사진 : 오계옥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제작자 존 핀

영국인에 대한 선입견을 날려버리듯 친절하고, 제스처가 크고, 호탕하게 웃는다. 과연, 광산촌을 배경으로 한 이 위험천만한 뮤지컬을 밀어붙인 사람답다. 제작자 존 핀은 스티븐 달드리와 단편 <에이트>를 계기로 만나 <빌리 엘리어트>를 함께 만들었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마저 전세계적으로 흥행시킨 인물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인기로 저예산영화 제작을 위해 워킹 타이틀에서 설립한 자회사 WT2를 성공가도에 올려놓은 그는 이후 마커스 애덤스의 호러스릴러 <롱 타임 데드>와 역시 마크 에반스의 범죄스릴러 <마이 리틀 아이>를 제작했다. 11월10일 아시아에서 첫 공연인 한국어 <빌리 엘리어트>를 점검하고, 오디션에 참석하고, 한국의 빌리들을 만나기 위해 내한한 존 핀을 국내 제작사 매지스텔라 사무실에서 만났다.

-비영어권에서 첫 번째 공연인데, 고민이 많으리라 짐작된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행히 한국쪽 파트너와 훌륭한 협력관계를 이루고 있다. 사실 영국에서도 이 공연을 시작할 때 부담요소가 상당히 많았다. 사투리나 정치색, 배경이 탄광촌이라든지 심지어 노래에 욕이 나온다는 것까지. (웃음) 그러나 기본적으로 작품의 진정성을 믿었기에 크게 우려하지는 않았다.

-워킹 타이틀에서 제작한 첫 번째 뮤지컬인 걸로 안다. 뮤지컬화를 결심한 계기는 뭔가.
=영화의 성공과 결부해서 생각한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움직인 건 엘튼 존이었다. 칸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엘튼 존이 이 뮤지컬의 음악을 작업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처음엔 우리 모두 최악의 아이디어라면서 비웃었다. 과연 누가 보러 올지. 혹은 탭을 추는 광부들은 상상만 해도 우스꽝스러웠다. 어떤 면에서 탄광촌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뮤지컬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웃음) 어쨌든 엘튼은 정말로 곡을 써보고 싶어 했고, 이후 2주간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그동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워크숍 기간 내내 울고 웃었으니까. 진정 내 심장을 움직이는 감동을 느꼈다.

-프로덕션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뭐였나.
=아이들. 역시 아이들을 찾는 일이다. 탭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발레도 잘하는, 게다가 세 시간짜리 공연을 이끌 만한 성인 배우를 찾는 것도 고역인데, 아이들을 찾는 건. 게다가 그들에게서 내면 연기를 끌어내기란 정말로 어려운 숙제다.

-스티븐 달드리가 원작의 감독이자 연극 연출가 출신이기에 당연히 적격이었겠지만, 그럼에도 혹시 다른 연출가를 염두에 둔 적은 없나.
=스티븐 달드리와 각본가 리 홀, 안무가 피터 달링과는 정말 오랫동안 한팀으로 일했다. 이상한 가족 구성원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들과 이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다.

-<마이 리틀 아이> 이후엔 영화제작이 뜸했다. 뮤지컬 제작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나.
=조금씩 다시 영화제작쪽으로 돌아가려 한다. 내년 6월 웨일스에서 영화를 만들 거다. 5년 전 마크 에반스가 개발한 시나리오다. 영국에 폭염이 들이닥쳤던 1976년이 배경이다. 16살 소년들이 등장하는데, 청소년기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다루는 영화랄까. 좀 독특한 이야기다. 음악도 많이 들어갈 거다. 2년 전 캐서린 제타 존스가 교사로 캐스팅됐는데, 계속 다른 일들이 생기는 바람에 하차했다.

-스티븐 달드리와 작업할 예정이었던 <에베레스트>는 잠정적으로 제작 중단된 상태인가.
=빌리가 너무 커져버렸다. 거대한 야수 같은 프로젝트다. 그 영화를 준비하면서 산 정상의 풍경을 관찰하라고 카메라팀을 에베레스트에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스티븐과 나는 한달간 베이스캠프에서 같이 생활한 적도 있다. 당시 스티븐과 에베레스트를 오르는데, 누가 그러더라고. 산에 오르는 건 당신이 삶에 접근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그땐 그게 난센스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론 맞는 말이더라. 스티븐과 많이 싸우면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됐으니까. 어쨌든 이야기는 굉장히 훌륭하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는.
=음, 아마도 <할머니의 노래>(Grandma's Song)일 거다. 빌리 할머니를 보면 우리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녀는 자주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돈을 슬쩍 하곤 했다더라. 복서였던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면 그랬다던데. (웃음) 그 광경을 떠올리면 항상 웃음이 난다. 1940∼50년대에 성장한 이들이야말로 철의 여인들이다.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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