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보러 간 건 장동건이 ‘품절남’ 선언을 한 다음이었다. 왜 보러 갔을까? 품절 확인하러? 그랬는지 보는 내내 “장동건 저렇게 잘생겼었어?”“장동건 원래 저렇게 다리 길었어?”“ 장동건 옛날부터 저렇게 귀여웠어?” 봉창 두드리는 소리만 하다가 왔다.
그러다가 문득 오래전 <씨네21>의 다른 문패 칼럼에 썼던 글이 생각났다. 찌질해 보이던 이성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왕자님으로 변신하는 때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때는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고 혼자 있을 때는 게임이나 하며 평생을 보낼 거 같던 친구가 여자친구를, 그것도 어디 내놔도 손색없을, 광채나는 여자를 소개하는 순간이었다.
조금 비슷한 느낌인 것 같다. 물론 나는 장동건과 일면식도 없고- 오래전 인터뷰를 한번 한 적이 있지만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그를 열렬히 숭배한 적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동갑내기다. 이게 뭐 중요하냐고? 중요하다. 보통 스타를 사랑하는 팬심 중 또래 팬심은 드물다. 오빠이거나 요새는 동생도 포함이다. 자고로 팬심이라 함은 오빠를 외치다가 입에서 주르륵 침이 흐르거나 다른 경쟁자들과 아귀다툼을 하다가 넘어져 치마가 발라당 뒤집히는 일이 있어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열렬함이다. 그런데 또래 스타에게는, 그가 나를 바닷가 모래알 중 하나로 생각하더라도 나 혼자 그를 향한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카페 같은 데서 봐도 그를 향해 돌진하기는커녕 괜히 내 옷매무새를 신경쓰게 된다는 말이다. 같이 학교를 다니고 비슷한 사춘기를 겪으며 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꿈과 환상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잠재적 남친 카테고리에 그를 넣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10년 넘게 떨어온 수다를 엮으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열질 분량을 너끈히 넘기면서도 장동건에 관한 주제는 단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이러라고 내가 동건이를 16년 동안 지켜온 것이냐” 따위의 문자를 보내온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마흔을 바라보는 주제에 싱글 친구의 대여섯살 많은 남친도 아저씨 취급하던 우리는 모두 눈에 쌍심지 킨 시누이 입장이 되어 “한국의 브란젤리나 좋아하네, 걔네 둘이 열세살 차이나거덩”, “결혼은 언제 하고 애는 언제 낳을래”, “ 고소영 성격 장난 아닐 거 같은데 이 나이에 밀땅하면서 연애질하게 생겼냐고”, 거품을 물면서 탄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때는 그 역시 푸릇푸릇한 청년이었지만 이제는 어깨에 멘 기저귀 가방이나 투실한 허릿살이 더 어울리는 동창이나 이성친구들 사이에서 한두명 정도는 여전히 청년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기대가 있게 마련이고 장동건은 어느 모로 보나 그런 기대에 부합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도 이제 안녕을 선언했으니 이제 누굴 보면서 나의 세월들을 잠시라도 망각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