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친구 그의영화]
[나의 친구 그의 영화] 마음의 불구들이여, 이리로 오라
2009-12-03
글 : 김연수 (작가)
혈관 확장-통증 유발-발열의 과정으로 본 <어떤 방문>의 세 에피소드

얼마 전에 울진 죽변항에 다녀왔다. 밤새 날이 흐리고 눈이 내릴 것 같더니 아침이 되자, 수평선 약간 위쪽을 제외하고는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항구에 서서 마도로스처럼 바다를 바라보노라니, 밤새 조업한 고깃배가 하나둘 회항하고 있었다. 만선을 알리는 신호는 고깃배 10m 상단쯤에서 떠가는 구름처럼 무리지어 날아가는 갈매기들이었다. 마침내 고깃배가 들어오자, 어부와 갈매기와 경매사와 중간상인과 동네 개들이 한데 어우러져 삶의 건강한 풍경을 연출하더라. 그런 풍경에 비하자면, 지난 몇호에 걸쳐서 <씨네21> 지면을 달궜던 <파주>의 질문, 그러니까 “왜 이런 일을 하세요?”라는 말은 병자의 질문이 아닐까?

‘아마 잘 안될 거야’ 마음의 불구들

“왜 이런 일을 하세요?”를 그대로 질문한 사람에게 돌려주자면, “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세요?”가 될 것이다. 거기 부두에서 시선을 돌리니까 조너선 리빙스턴 시걸이랄까, 어부들이 바다로 던지는 피라미들을 받아먹으려고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정신없이 배 위를 날아다니는 걸 부두 지붕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갈매기가 세 마리. 아무리 봐도 다른 갈매기와 다를 바 없이 멀쩡한데도 먹을 것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말하자면 예술가 타입의 조류들이었다. 몸은 멀쩡해 보이는데, 그 갈매기들은 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걸까? 그 눈빛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심전심 염화미소 교외별전이다. 그 갈매기들, ‘아마 잘 안될 거야’라고 생각하니까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겠지. 역시나 마음의 불구들. 하지만 마음의 불구라고 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마음의 불구들은 노래를 부르고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잠깐! 여기서 마음의 불구 이야기를 하는데, 왜 혁 옵바의 미약한 반공정신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대학 국문과 재학 시절, 혁 옵바는 예쁘장한 여자 후배에게 자신의 감수성을 자랑하기 위해 시에 대해 떠들어댔다고 한다. 황지우가 어쩌고저쩌고, 장정일이 이러쿵저러쿵. 그렇지만 혁 옵바가 가장 사랑하던 시인은 <우리 정든 유곽에서>의 이성복. 해서 “이성복이라고 너도 잘 알지?”라고 혁 옵바가 말을 건네면, “당연하죠, 선배. 이성복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그녀가 다시 돌려주는, 그 맑고도 아름다운 프레시맨 시절의 명징한 대화가 오가게 됐다는 훈훈한 이야기. 그런데 거기서 이야기가 끝났으면 딱 좋았을 텐데, 그만 그녀가 조금 더 나아간 것이다. “공산당이 싫어요, 말이잖아요.” 아마 잘 안될 거야. 혁 옵바의 인생이라면 우선 그런 생각부터 드는데, 역시나. 경상도에서 이성복이라고 말하는데, 신문보도에 따르면 공산당을 무척 싫어했다던 그분을 먼저 떠올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아마 잘 안될 것이다.

예술이란 위대한 찌꺼기라네

마음의 불구들. 인생 행로의 낙오자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이 낙오자들을 건강한 삶으로 되돌리는 건 프로스타글린딘이라는 호르몬 물질이다. 내가 방금 서가에 있는 책을 꺼내서 3분 동안 연구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물질은 핏속으로 들어가 ① 혈관 확장 ② 통증 유발 ③ 발열이라는 세 가지 기능을 한다. 이 기능은 순서대로 <어떤 방문>의 세 단편영화, <코마>와 <첩첩산중>과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요컨대 이 세편의 영화는 모두 마음의 불구를 치료하는 과정, 즉 이성복이라고 말하면 이승복이라고 알아듣는 건강한 삶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따지고 보면, (예술가 타입인 우리 혁 옵바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시피) 모든 예술이라는 게 마음의 불구를 치료하는 과정에 남는, 하지만 위대한 찌꺼기 같은 것이니까.

① 혈관 확장: <코마>. 마음의 불구가 깊어질 대로 깊어지면 삶의 어느 순간에 이르러 약간 고양된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건 안색, 체온, 어지럼증, 빨라진 심장박동, 울렁거림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낙오자들은 정상인들보다 수다스러워진다. 타란티노의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과 혁 옵바가 여기에 해당한다. <코마>에서는 사당 앞에서 부르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정도 높은 톤의 노랫소리로 이 단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느닷없이 자기 입에서 괴상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거나 누군가를 뒤쫓아가서 결국 안고야 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기를. 이건 마음의 불구를 치료하기 위한 혈관 확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당연한 증상들이다. 어쨌든 모든 노래들은 이렇게 해서 부르게 된다.

② 통증 유발: <첩첩산중>.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찾아내는 서사가 필요하다. (결국 이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소설가 은희경 선배가 나오는 장면에서 정유미는 어제 모텔촌에서 선생님과 함께 있는 걸 봤다는 은 선배의 말에 적절한 변명을 창작하지 못한다. 서사로 통증을 완화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면, 영화의 끝부분에서 작열하는 문성근의 대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 대사를 듣노라면, 문성근이라고 왜 통증이 없겠느냐는, 매우 설득력있는 생각이 드니까. 하지만 문성근은 그 통증을 예술혼으로 불태운다고나 할까. 살아남기 위해 정말 열심히 서사를 만든다. 이렇게 해서 소설은 창작된다. 그러고 보면 문성근은 정말 훌륭한 문예창작과 교수인 셈이다.

③ 발열: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 마지막으로 정신이 몽롱해진다. 열이 나기 때문이다. 이건 신종플루도 아니고 상당히 오래된 플루다. ‘아마 잘 안될 거야’라고 생각하던 낙오자들이 뭔가 위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어릴 적 친구를 납치해서 몸값을 받아내는 일을 꾸민다. 각자 권총을 하나씩 꿰차고 가면을 얼굴에 쓴다. 그리곤 수풀을 헤치면서 걸어간다. 마음의 불구들이 빚어내는 그 열의에 탄복해서 과연 납치에 성공할 것인지 기대에 차서 바라보지만, 역시나 잘 안된다. 그리고 암전. 관객은 모두 “이게 뭐냐?”고 말할 테지만, 그렇게 해서 영화가 한편 만들어지는 것이다. 혹시 “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세요?”라고 처제가 묻는다면, <어떤 방문>을 보여주는 게 제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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