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must see] <크리스마스 캐롤> 더 환상적으로, 확 소름끼치게
2009-12-01
글 : 김도훈
테크놀로지와 영화예술의 경이로운 앙상블, 3D영화 <크리스마스 캐롤>

모두의 질문은 이거다. 로버트 저메키스가 드디어 언캐니 밸리를 극복할 것인가. 대답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 인간에 가깝지만 인간과 완벽하게 같지 않은 인공체에 사람들이 혐오감을 느낀다는 개념)는 <크리스마스 캐롤>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 물론 <크리스마스 캐롤>의 퍼포먼스 캡처 기술과 디지털 액터는 “부제를 <시체들의 밤>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CNN>)는 불평을 자아낸 <폴라 익스프레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마담 투소의 박물관에서 짐 캐리와 콜린 퍼스의 밀랍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촬영한 듯한 <크리스마스 캐롤>의 캐릭터들은 여전히 어딘가 꺼림칙하다. 눈동자는 흐리거나 지나치게 밝고, 근육의 움직임은 어쩔 도리 없이 조금 경직되어 있고, 몸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가볍다. 한마디로 유령 같다.

캐릭터가 유령처럼 보인다면 성공한 것

그런데 잠깐. <크리스마스 캐롤>의 디지털 캐릭터들이 어딘가 모르게 좀 유령처럼 보인다면 그게 정말 로버트 저메키스의 실수거나 퍼포먼스 캡처 기술의 한계인 것일까. 다시 한번 찰스 디킨스의 이야기를 되돌려보자.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구두쇠 에비니저 스크루지(짐 캐리)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충직한 직원 밥(게리 올드먼)과 조카 프레드(콜린 퍼스)에게 독설을 퍼부은 뒤 홀로 저택에 돌아가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한다. 잠자리에 든 스크루지 앞에 7년 전에 죽은 동업자 말리의 유령이 나타난다. 스크루지만한 노랑이로 살아온 탓에 영원히 구천을 떠도는 형벌을 받은 말리는 세명의 유령이 차례대로 찾아올 거라 일러준다. 말리가 말한 대로 세 유령이 찾아와 스크루지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자신의 비참한 미래를 보며 과거를 반성한 스크루지는 다음날 아침 개과천선한다.

우리 대부분은 <크리스마스 캐롤>을 아동용으로 각색된 동화책이나, 혹은 디즈니에서 제작한 몇몇 영화들을 통해 접했다(솔직히 누가 찰스 디킨스의 원전 그대로 이 이야기를 접했을까). 그런 각색물들이 가장 포커스를 맞춘 건 노랑이의 개과천선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정신이었다. 그러나 찰스 디킨스의 원작은 음험한 19세기말 가난에 찌든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을 배경으로 한 소름 끼치는 유령 괴담이다. 만약 언캐니 밸리의 아슬아슬한 한계선을 타고 비틀거리는 <크리스마스 캐롤>의 캐릭터들이 초점없는 유령처럼 보인다면 그건 오히려 로버트 저메키스의 선택이 딱 맞아떨어졌다는 소리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캐롤>에 이르러서 언캐니 밸리는 오히려 저메키스 영화의 묘한 매력 중 하나가 되어간다. 개봉시 많은 아이들을 극장에서 울렸던 <폴라 익스프레스>의 생명력 없는 캐릭터들이 오히려 새로운 팬들을 불러모으는 매력이 되어간다는 걸 생각해보라. 그들은 유령 같은 캐릭터들이 원작의 서글픈 정조를 더 북돋아준다고 이야기하는데, 충분히 인정할 만한 소리 아닌가.

‘런던 시내 초고속 질주’ 오프닝 압권

로버트 저메키스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읽었을 때 “찰스 디킨스가 마치 원작을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원작이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고 영화적이어서 최신 기술을 동원해 찰스 디킨스가 머릿속으로 그렸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유령의 등에 업혀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본다는 원작의 아이디어는 거추장스러운 쇠사슬을 걸친 훌륭한 영국 배우들만으로 훌륭하게 영화화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할리우드의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기술적인 마술이 필요한 이야기다. 저메키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새로운 버전이 나와야 할 적기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제껏 원작에 쓰여진 그대로를 표현할 영화적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찰스 디킨스는 영화가 탄생하기 훨씬 전에 이 작품을 썼지만 그의 상상력은 놀라울 정도로 영화적이다. 예전의 <크리스마스 캐롤> 영화에서 과거의 유령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천을 두른 여배우가 연기했다. 그러나 원작을 읽어보면 크리스마스 과거의 유령은 머리에서 섬광이 퍼져나온다. 이제야 우리는 디킨스가 집필한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퍼포먼스 캡처 외 <크리스마스 캐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술적 진보는 3D 입체효과다. 특히 카메라가 런던 시내를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눈을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카메라는 런던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첨탑을 피해 미친 듯이 날아다니다가 좁은 런던의 골목으로 활강한 뒤 온갖 오브제와 캐릭터들을 피해나간다. 물론 이같은 시퀀스는 3D 입체영화라면 무릇 한 장면씩 보유하고 있는 재주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캐롤>은 단순히 편광안경을 쓴 관객을 현기증나게 만드는 재주에서 더 나아간다. 카메라는 끝없이 움직이며 캐릭터와 배경의 포커스를 휙휙 조절해댄다. 덕분에 관객이 실제 느끼는 입체적인 공간감은 경이로울 정도다. 올해 앞다투어 개봉했던 다른 3D 입체영화들의 기술력은 <크리스마스 캐롤> 앞에선 어린애에 불과하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개봉하는 날까지 <크리스마스 캐롤>은 3D의 어떤 스탠더드가 될 게 틀림없다.

로버트 저메키스는 <폴라 익스프레스>와 <베오울프>에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통해 자신의 테크놀로지 실험이 매번 발전한다는 걸 명백하게 증명한다. 3D와 퍼포먼스 캡처 기술은 거의 완벽을 향해 달려간다. 저메키스는 “영화는 항상 예술과 기술의 복합체였다”고 말한다. “클로즈업도 특수효과다. 음향도 진기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이제 영화를 볼 때 음성이 어떻게 녹음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3D와 모션 캡처 기술도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지가 얼마나 생생한지, 어떻게 투영되는지에 대한 관심을 끊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질문해보자. 혹시 로버트 저메키스의 테크놀로지를 향한 편집증적인 집념이 어쩌면 영화감독으로서의 진정한 재능을 갉아먹은 건 아닐까.

이야기꾼의 재능 볼 수 없어 아쉬워

솔직히 조금 아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사실 저메키스는 <로맨싱 스톤>과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를 만들었던 1980년대에는 스필버그 사단의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 중 한명이었다. 1990년대 저메키스가 내놓은 <왓 라이즈 비니스>와 <콘택트> <포레스트 검프> 같은 작품들 역시 단단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빛을 발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로버트 저메키스는 퍼포먼스 캡처와 3D입체를 통한 ‘미래의 영화’라는 과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듯도 하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동화, 앵글로색슨의 서사시, 찰스 디킨스의 원작을 각색해 영화를 만들면서 저메키스는 테크놀로지 실험에 적합한 이야기의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둬놓는 듯한 인상이다. 그러니 세상의 누군가는 저메키스가 만든 세편의 영화를 두고 ‘저메키스의 테크놀로지 영문학 개론’이라고 불평하리라. 하지만 이 집념어린 감독이 꿈꾸는 테크놀로지와 영화예술의 아름다운 결혼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저메키스가 꿈꾸는 결혼 날짜가 점점 다가온다는 증거로 손색이 없다.

짐 캐리, 표정 연기가 오스카 수상감!

<크리스마스 캐롤>의 배우들

저메키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하는 건 이제 점점 부당한 일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크리스마스 캐롤>의 짐 캐리는 온몸에 센서를 달고 카메라 앞에서 온몸과 얼굴 근육을 움직이며 열연한 가치를 충분히 보상받을 필요가 있다. 짐 캐리는 퍼포먼스 캡처를 통해 스크루지의 어린 시절부터 노역까지를 모두 소화했고,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 역시 직접 목소리 연기를 해냈다(특히 처음 등장하는 과거의 유령은 스크루지 역할로는 도무지 발산하지 못하는 짐 캐리 코미디 본능이 집약된 캐릭터다).

조연을 맡은 배우들 역시 인상적이다. 스크루지의 갖은 구박을 감내하는 직원 밥 크라칫, 밥의 어린 아들 팀, 스크루지의 죽은 동업자 말리는 게리 올드먼이 연기한다. 스크루지의 과거 속에서 등장하는 직장 상사 페지위그 역은 밥 호스킨스가, 로빈 라이트 펜은 스크루지의 옛 약혼녀 벨과 스크루지의 죽은 여동생 팬을 맡았다. 다른 배우들이 본래의 모습과 다른 캐릭터로 등장하는 데 반해 콜린 퍼스는 자신과 쏙 빼닮은 얼굴 그대로 스크루지의 쾌활한 조카 프레드를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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