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 회고록]
[박중훈 스토리 22] 나는 이제 반환점을 돌았네 - 마지막회
2009-12-11
글 : 박중훈 (영화배우)
정리 : 주성철
<해운대>의 성공과 차기작 <내 깡패 같은 애인>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인사
<해운대>

영화배우로서 그동안 감사히도 꽤 많은 연기상을 받았는데 가장 기뻤던 건 신인상이었다. 정말이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들떴던 기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신인상에 버금가게 좋았던 게 2006년 청룡영화상에서 <라디오 스타>로 안성기 선배와 공동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다. 그동안 연재하면서 상 얘기를 아꼈던 게 바로 지금의 감동을 위해서였다. (웃음) 그날 성기 형과 정말 코가 비뚤어지도록 기분 좋게 술을 마신 기억이 난다. 그리고 스테디셀러가 된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도 나에게 상이라면 상이다. ‘가창료’라는 게 작사, 작곡료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지만 요즘도 비 오는 날이면 가창료가 제법 들어온다. 당시 영화 개봉하면서 한창 노래가 뜰 때는 한달에 200만~300만원가량이 몇달간 들어왔다. 그러다 요즘엔 한달에 7만원 혹은 12만원선에서 들어오는데 비가 오는 날이 많으면 20만원 정도 들어오고 장마철에는 30만원쯤 들어온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은 빗방울이 돈방울처럼 보여 왠지 기분이 좋다. (웃음)

“조역·단역 가리지 않겠다”는 선언을 지키다

<라디오 스타>를 끝내고는 꽤 긴 시간 장고에 들어갔다. 이제 나도 마흔살이 넘었고 뭔가 또 다른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좀더 신중해졌다고나 할까. 물론 신중하다는 것이 까다롭다는 말과 같은 뜻은 아니다. 좀더 폭넓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됐다고 하자. 당시 청룡영화상 시상식 때 수상소감으로 “이제는 조연, 단역 가리지 않고 잘해보겠다”고 일종의 ‘선언’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들어온 역할이 <해운대>에서 쓰나미를 예고하는 해양지질학자 ‘김휘’ 박사였다. 어떻게 보면 청룡영화상에서 말한 이후 첫 번째 조연 역할인 셈이다. 물론 처음부터 흔쾌히 출연 결정을 했다. 윤제균 감독과는 2007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를 함께하기로 했다가 무산된 경험이 있다. 윤제균 감독이 대표로 있는 JK필름에서 제작하고 감독은 다른 사람이 맡아서 하는 시스템으로 몇달 동안 계속 만났다. 영화는 비록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때 이후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참 명민하고 생각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해운대> 제의를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나를 배우로서 인정하고 각별한 애정을 주는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언젠가 꼭 다시 좋은 작품으로 만나게 될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해운대>로 그 만남이 이뤄진 거다.

일단 시나리오가 재미있었고, 조연이라 해도 주역 같은 조연이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평소 출연료보다 덜 받고 겸허한 마음으로 작품에 들어갔다. 예전 같으면 크랭크인을 한 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쉬는 날 없이 쭉 찍는 게 당연한 것이었는데(웃음), <해운대>는 드문드문 찍게 됐다. 하지만 촬영장에 갈 때마다 숙련된 스탭들의 호흡과 윤제균 감독의 침착한 현장 연출로 촬영장은 늘 여유있고 편안했다. 뭐랄까, 그 전반적인 기운이 참 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설경구, 하지원을 비롯한 배우와 모든 스탭이 정말 행복하게 영화를 만들어갔다. 서로를 좋아하다보니 회식도 많았다. 촬영 횟수보다 회식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웃음)

연기력 논란, 나중에 다시 평가받을 것

<해운대>에서의 내 연기에 대한 얘기가 좀 있었던 것을 안다. 그동안 임팩트가 강한 역할만을 맡아서인지 내가 쓰나미를 막지 못한다는 게 무기력하게 비친 모양이었다. 재난영화의 영웅 같은 모습을 원했던 걸까. 그리고 대사 처리에 대한 얘기도 있었는데 김휘 박사로서 감정 처리보다 정보를 줘야 하는 기능적 대사의 특수성이 있었다. 아무래도 나에게서 기대했던 생동감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내가 맡은 박사 역할에 젖어서 진심으로 연기했고 그 역할의 기능을 충실히 표현해냈다고 생각한다. 연기나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 당시 냉정하기보다 좀 휩쓸려다니는 경향도 있는데 <해운대>에서 내 역할과 연기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이 흐른 뒤에 정확한 평가가 나올 것으로 믿는다. “내가 니 아빠다” 하는 대사는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패러디됐다고 하는데(웃음), 개인적으로는 <해운대>가 <황산벌> 이후 <라디오 스타>까지 해서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의미있는 흥행을 거둔 작품이라 각별한 애정이 있다. 그리고 아내(엄정화)에게서 “지진이랑 결혼하지 그랬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일에 몰두하는 박사의 모습은 지난 24년간 연기에 몰두해온 나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솔직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방으로 촬영을 떠나고 밤샘 촬영을 하다보면 가족에게 소홀해질 때가 있지 않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촬영할 때였나? 집을 나서는데 큰아이가 “아빠, 우리 집에 또 놀러오세요”라고 인사를 하기에 뜨끔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해운대>는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의 용기와 윤제균 감독의 뚝심이 만들어낸 영화다. 후배감독이지만 볼 때마다 대단하고 믿음직스럽단 생각이 들고 나로서도 이런 영화에 참여하게 된 게 참으로 기쁘다. 그리고 이제는 영화 흥행이 되니까 예전보다 기쁨의 강도는 깊어지는데 흥분은 좀 덜하게 돼 마음이 더 흡족했다.

이젠 내겐, 그리고 우리 팀 모두가 ‘<해운대> 이후’를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때 윤제균 감독을 포함해 스탭들이 모여 회식 자리를 가졌는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2009년 여름은 끝났다. 곧 겨울을 맞이한다. 우리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2009년을 이제 과거로 돌리자. 더이상 <해운대>에 대해 얘기하지 말자.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나이 든 사람은 과거를 얘기하고 젊은 사람은 미래를 얘기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미래를 얘기하자”고 다짐을 제의하며 건배를 했다. 내가 40대 중반 2009년에 혼신을 다한 영화가 바로 <해운대>고 이게 또 먼 훗날 과거가 되어 다시 회고할 날이 올지 모르겠다. 그날을 기약하면서 아쉽지만 <해운대>에 대한 얘기는 끝맺어야 할 것 같다.

빼고, 자르고, 태우고, 기르고…

현재 촬영 중인 작품은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 같은 애인>이다. 지방대를 나와 아직 취직하지 못한 20대 여자가 어렵게 살면서 삼류 루저 깡패와 반지하 원룸의 이웃으로 만나 서로 연민을 느끼는, ‘휴먼액션멜로’쯤 되는 영화다. 여주인공이 정유미이고 내가 바로 깡패 같은 애인이다. 역할 때문에 머리를 짧게 하고 수염은 기르고 얼굴도 태우고 체중 감량도 많이 했다. 이번 영화 하면서 빼고, 자르고, 태우고, 기르고, 그렇게 네 가지 외향 변화가 있다. (웃음) <해운대>의 박사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모처럼 살아 있는 싱싱한 캐릭터여서 나로서도 욕심이 많이 나고 잘 맞는 것 같다. 정유미와는 나이 차가 상당히 나는데도 꽤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서 기분이 좋고, 옆에서 지켜보니 감성이 풍부하고 또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배우다. 에너지 넘치는 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서 지금 최선을 다해 영화를 찍고 있다. (웃음) 12월 중반쯤 영화 촬영이 끝나면 곧이어 강수연과 함께 임권택 감독님의 <달빛 길어올리기>에 들어간다. 한지(韓紙)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인데 한국영화계의 거장인 존경하는 임권택 감독님의 101번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돼 정말 큰 영광이다.

사실 <씨네21>로부터 연재 제의를 받고 2주 정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는 좀 망설였다. 지금 내 나이에 비춰볼 때 뭔가를 ‘회고’한다는 것에 자격이 있는지 고민이 됐고, 젊은 배우로서 뭔가 계속 과거에 대해 얘기하고 끄집어낸다는 것도 조금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어렵사리 승낙했던 건 배우생활 24년이라는 게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고, 내 이야기가 반면교사가 되어 후배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사명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과거 어디서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조심스레 풀어놓았다. 하지만 개인적인 딜레마가 있었다고 한다면, 가감없이 솔직하게 얘기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그에 대해 좀 언짢을 수밖에 없는 동료 영화인이 있었다는 거다. 혹 그런 분들이 계셨다면 나의 본래 취지하에서 널리 양해를 부탁드리고 싶었다. 반면 그간 소원했던 여러 사람과도 이 지면을 통해 많이 화해를 한 것 같다. 그리고 다혈질이고 자기중심적이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독자들이 보내준 성원이나 다른 지인의 얘기를 통해 다시 한번 겸허함을 배운 것 같다. 그건 이 연재를 통해 얻은 나의 복이자 행운이다. 보잘것없는 나의 얘기에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줘서 <씨네21>에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본의 아니게 언짢았던 분들에게 양해를

인터뷰에서 누가 물은 적 있다. 영화란 당신에게 어떤 존재입니까?라고. 내겐 ‘종교’와 같은 것이라 대답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20살 때부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는 거다. 그동안 왜 나를 몰라줄까 하는 시기도 있었고 관객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사실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우리 관객에게 분에 넘치는 큰 사랑을 받아왔기에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나의 영화인생을 아직 끝나지 않은 마라톤 경기와 비교한다면 정말 근사하게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내가 좀 부진하더라도 기다려주고 격려해준다면 정말 큰 힘을 얻을 것 같다는 말씀을 염치없지만 드리고 싶다. 연재를 마치는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현재 나는 반환점을 돈 마라토너의 심정과 같다. 그러면서 결승점까지 힘차게 뛰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끝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고 오르막길이 나오건 내리막길로 접어들건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달리고 싶다. (웃음) 독자 여러분과의 소중한 대화를 통해 반환점을 힘차게 돌아섰음을 감사히 생각하면서 이 연재를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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