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얘들은 자고로 모기, 거머리 등과 동일한 식생활을 영위하는 애들이다만, 그 민폐의 규모에 비해 얘들의 나쁜 놈으로서의 위상은 거의 확립되지 않아왔던 바, 그 가장 큰 원인은 ‘이 세상엔 착한 놈도, 나쁜 놈도 아닌, 오로지 꽃미남, 꽃미녀만 존재할 뿐’이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에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트와일라잇> <뉴문>은 이러한 세계관을 그대로 계승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폭발시키는 바, 이는 ‘맛 좋고 영양 많은 간식과 사랑에 빠진 어느 독특한 청소년 흡혈귀의 식욕억제 및 간식수호 체험담’으로 요약할 수 있는 당 영화를 코미디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뉴문>에서는, 흡혈귀들보다 이들의 여류간식 ‘벨라’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져, 필자의 주목을 끌기에 이른다.
얘는 영화의 초반부, 주위의 넘치는 식욕에 여자친구가 희생될 것을 염려한 남자친구 ‘에드워드’에게 ‘사랑하기에 그대 떠나리’를 당하고 만다. 이에, 실연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그녀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제이콥’을 찾아가 그에게 의지하며 기댄다. 바로 이 대목에서부터 이제껏 억제되어왔던 벨라의 나쁜 놈性이 유감없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흡사 방탄조끼와도 같은 갑바를 핵심 승부처로 내세운 이 제이콥이라는 청년은, 벨라가 경미한 찰과상을 입자 걸치고 있던 티셔츠를 훌러덩 벗어 피를 닦아주더니, 결국에는 칠부바지 외에는 별다른 의상도 걸치지 않은 채 벨라의 집 앞마당을 뛰어다니는 등 매우 구수하면서도 순박한 대시를 펼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벨라는 어깨에 기대고, 품에 안고, 품에 안기고, 심지어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등 제이콥에게 연애의 가능성을 물씬물씬 암시한다.
그러나 매번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녀는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오랜 친구잖아’ 등등의 대사를 날리며 사랑의 먹튀로 일관하고 있는 바, 이는 물론 제이콥이, 떠나간 남자친구 에드워드에 대한 금단현상 해소책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신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 타인을 말려 죽이는 벨라의 민폐는 거의 흡혈귀를 능가하는데, 특히 대시하는 제이콥을 밀쳐내며 그녀가 날린 대사는, 가히 필자의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야.”
이 장면이야말로 단연 이 영화의 백미에 손꼽혀 마땅하다. 왜냐. 이 대사를 통해 벨라는 자신이 벌이는 사랑의 먹튀의 폐해에 대해 매우 잘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십분 활용하여 ‘미안하긴 한데, 내가 원래 좀 그래’ 대사를 톡 까놓고 날려주는 그녀의 대담함은, 웬만한 정통 나쁜 놈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기억하라.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알면서도 결코 멈추지 않는 추진력.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 나쁜 놈들이라면 누구나 좇아 마땅한 道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