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액세서리]
[그 액세서리] ‘성냥갑’은 절대 잊을 수 없지
2009-12-10
글 : 강지영 (GQ KOREA 패션디렉터)

주인공 ‘외로운 남자’(이삭 드 번콜)는 규칙을 따르고 원칙을 숭배하는 조용한 남자로, 성격과는 상관없이 직업은 ‘무려’ 살인청부업자다. 짐 자무시가 쓰고 감독하고, 크리스토퍼 도일이 찍은 영화 <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이 금욕적인 킬러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가 어떤 일을 맡고 처리하는 동안, 그에게는 철저한 규칙이 있다.

우선은 옷. 언제나 뒷자락이 양쪽으로 트인 사이드 벤트의 투버튼 슈트만 입는데 재킷 길이는 엉덩이를 덮을 만큼 길고 팬츠 길이는 구두의 뒷굽에 딱 떨어지게 맞춘다. 항상 재킷의 단추 두개는 모두 채우고 슈트와 비슷한 톤의 셔츠를 골라 제일 위의 단추만 풀고 입는다. 타이도 매지 않고 선글라스도, 벨트도, 반지도 없다. 구두는 안쪽에 밴드 장식이 있는 검정 고어 부츠.

이렇게 차려입고 틈만 나면 기체조를 한다. 화장실과 기차 안, 호텔방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금욕적인 중년 남자답게 클래식 음악과 갤러리 투어를 좋아한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관심없고, 변변한 음식도 안 먹는(러닝타임 두 시간 내내 그가 먹은 거라고는 오직 서양배 한개뿐이다) 그의 유일한 기호품은 에스프레소. 카페에선 언제나 두잔을 시켜놓고 접선자를 기다리지만, 그 두잔은 모두 자신의 몫이다.

외로운 남자 앞에 나타난 접선자들 역시 같은 서랍 안에 든 양말처럼 뭔가 비슷하면서도 규칙적인 배열로 등장한다. 모두 선글라스를 꼈고 첫 대화는 “스페인어 못하시죠? 그렇죠?”로 시작하며, “혹시 거기 관심있어요?”란 화두로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분야, 예를 들면 음악, 과학, 영화, 예술, 환각 등등을 주절주절 떠들고 별 인사도 없이 사라진다.

‘블론디’, ‘멕시칸’, ‘기타’, ‘누드’ 등의 간단명료한 이름을 가진 접선자들과 ‘외로운 남자’의 의사소통은 성냥갑을 주고받는 것으로 종결된다. 성냥갑 안에는 암호를 접은 종이가 착착 접혀 있다. ‘외로운 남자’는 머릿속에 단단히 글자를 넣어놓고 에스프레소와 함께 종이를 꿀꺽 삼킨다. 성냥갑은 이 영화 속 결말의 전조이고 얘기를 이어나가는 고리이며 짐 자무시의 ‘스타일’이다.

루이비통 코트에 베이지색 모자를 쓰고 나타난 틸다 스윈튼, 랭글러 청재킷을 입고 카우보이 부츠를 신은 채 ‘웨스턴적으로’ 등장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갈색 트렌치와 체크 머플러 차림의 존 허트. 이 멋진 비주얼을 가진 스타일리시한 접선자들도 눈에 띄었지만 <리미츠 오브 컨트롤>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디자인’은 성냥갑이다. 앞면에 트렁크를 입은 복서가 그려진 회화적인 모양의 종이 성냥갑. 바탕이 청록색인 것과 빨강색,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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