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라운드는 뛴 것 같다. 땀에 젖은 온몸은 소금내로, 바짝 말라붙은 입안은 단내로 진동한다. 이쯤 되면 때리는 편이나 맞는 편이나 당장 글러브를 벗어던지고 싶으리라. 6라운드 복싱시합에서 마지막 라운드보다 더 힘들다는 4라운드를 5일째 찍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12월7일 경기도 오산 시민회관에서 진행된 <호야>의 복싱 신인왕전 웰터급 결승전 촬영현장. 마치 샌드백을 상대로 연습하듯 일강(정헌)이 호야(유연석)를 코너에 밀어붙여 머리와 복부를 번갈아 타격한다. 때문에 대사는 숨소리, 표정은 부어오른 멍으로 잠기는 눈뿐. 보통 액션에는 주고받는 합이 있게 마련인데, 이 장면은 굉장히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힘을 가하는 경우라 체력소모는 심하겠지만 동작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 보인다.
허명행 무술감독의 말은 다르다. “(관객이) 보기에 쉬운 동작으로 연출했지만 실제로 배우들이 하기엔 힘든 합.” 다른 무술과 달리 복싱은 두팔로만 보여줘야 해서일 것이다. 무엇보다 배광수 감독은 “내성적이지만 어떤 계기로 감정이 폭발하는 호야와 감정을 한번에 드러낼 줄 아는 일강,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감정선이 만나는 시합이라 더 어렵다”고 설명한다.
열여덟살 호야와 일강이 링에서 그리도 치열하게 싸우는 이유는 단지 신인왕 벨트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링 밖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호야의 이란성쌍둥이 동생인 서야(백진희) 때문이다. 동생 서야의 사랑 고백에 당황한 호야는 얼떨결에 도미(엄현경)를 사귀고, 서야 역시 오빠가 자신을 멀리하자 홧김에 복싱부의 일강을 사귄다. 하지만 일강에게 서야가 ‘깊은 상처’를 받자 호야가 동생을 위해 링에 오른다. 사춘기 시절의 불안정한 마음 상태·이란성쌍둥이간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배우들이 어떻게 표현해낼지가 열쇠다. 영화는 내년 3월 개봉을 목표로 촬영 마지막까지 ‘새하얗게 불태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