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친구 그의영화]
[나의 친구 그의 영화] 고통이 몸을 정화시키는도다
2009-12-24
글 : 김중혁 (작가)
피가 철철 흐르고 뼈가 똑똑 부러지는 <닌자 어쌔신>을 보게 되는 이유

요리영화 한편을 보고 난 듯하다. “자, 고기를 썰 때는 이렇게 사선으로 단번에 잘라야 해요, 보세요, 이렇게 썰린 단면이 깔끔해야죠. 망설임없이 자르세요. 자, 깔끔하게 자르려면 뭐가 필요하겠어요? 그렇죠. 숯돌에다 칼을 잘 갈아두어야겠죠.” 영화 <닌자 어쌔신>에서 어찌나 피와 고기와 살과 칼과 뼈를 많이 보았던지 극장문을 나설 때는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로 보이더라. <닌자 어쌔신>에 대한 평은 요리칼럼니스트 박찬일씨에게 넘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박찬일 칼럼니스트라면 아마도 사람 뼈의 강도와 칼날의 각도 같은 걸 치밀하게 계산하고, 흘러나온 피의 양과 잘려나간 단면을 연구하여 맛있는 칼럼을 만들어내겠지만, 내가 알기로 박찬일 칼럼니스트는 이런 영화라면 질색한다. 아마 포스터 근처에도 못 갈 것이다. 나는 이런 영화, 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힘들었다. 칼 쓰는 영화 좋아하고, 피 철철 넘쳐흐르는 영화 좋아하지만 영화 시작하자마자 사람 머리 댕강, 허리 댕강 반 토막, 양쪽 팔 댕강댕강 잘려나가는 걸 보고는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나도 모르게 ‘어~~~허~’ 하는 감탄사- 아저씨들이 사우나에서 자주 내는 바로 그 톤의 감탄사- 가 입에서 자주 흘러나왔다. 징그러운 것이나 끔찍한 것을 볼 때면 내 입에서 그런 감탄사가 자동으로 흘러나오는데, 아마도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 아닌가 싶다. 그토록 처절한 감탄사를 내뱉으면서도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뼈가 똑똑 부러지는 영화를 보는 이유는 몸의 정화를 위해서다. 시각적인 극한을 경험하고 나면 이상하게 몸이 차분해진다.

머리 댕강, 허리 댕강, 팔 댕강 ‘어~~~허~’

피의 잔치를 보고 나니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내 인생 3대 미스터리 중 첫 번째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날 문득 깨어나보니 의무병이 된 것인데, 친구들은 ‘줄을 잘 섰네’, ‘누군가 봐주는 사람이 있었나보네’라며 부러워했지만 그곳에도 나름의 고통이 있었다. 몸은 다른 곳보다 편할지 몰라도 매일 아픈 사람을 만나고 매일 피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의무병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잠을 설치며 피나는 훈련과 훈련을 거듭해야 했다. 약 이름을 외우고(뭐가 이리 복잡하단 말이요!) 핏줄을 찾아 링거 투여하는 연습을 하고(저에게 잘못 찔려서 아팠던 분들께 죄송!) 진단서 쓰고 읽는 법을 배웠다. 그나마 가장 재미있었던 훈련은 상처봉합 연습이었다. 사람의 살을 칼로 찢은 다음 그 상처를 봉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럴 수 없으므로 돼지비계를 대체물로 썼다. 고참병의 설명에 의하면 돼지비계는 ‘사람의 살과 질감이 가장 비슷하며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도 봉합연습용으로 이용한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고참병은 수술용 칼로 돼지비계에 상처를 냈고 우리는 죽었는데 다시 죽고, 자꾸만 또 죽어가는 돼지비계를 살리기 위해 한땀 한땀 온 정성을 다해 바늘로 꿰맸다.

나는 실력이 꽤 좋았다. 내가 봐도 상처를 꿰맨 실의 간격이 촘촘했고 일정했다. 내가 두각을 나타냈던 부분은 ‘돼지비계 꿰매기’와 ‘핏줄 찾아 찌르기’였는데, 타고난 손재주는 어딜 가도 티가 나는 모양이다(하하하!).

군대 의무병 시절 ‘첫 실습’의 기억

스승 밑에서 오랫동안 맞아가며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던 <닌자 어쌔신>의 라이조(비)는 사람을 죽이는 ‘첫 실습’에서 된통 얻어터진 뒤에야 임무를 완수한다. 피를 한 바가지나 흘린 라이조는 빈혈기 때문인지 적의 피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인지 자신을 가르친 스승에게 대들고야 마는데, 나도 그렇게 머리가 어질어질했던 적이 있었다. 스승 밑에서 돼지비계를 꿰매며 오랫동안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던 나에게 맡겨진 첫 번째 임무는 잡초를 제거하다 낫으로 제 손을 찌른 이등병의 상처를 꿰매는 것이었다. 그래, 배운 대로만 하면 된다, 배운 대로만 하면 되는데 배운 게 별로 없어서인지 자꾸만 흐르는 피는 어째서 멈추지를 않고, 지혈을 하면 되는 것인데 거즈에는 피가 한가득 배어나고, 피가 겨우 멈춘 상처를 꿰매야 하는데 들어간 실은 잘 보이지 않고, 매듭은 어떻게 하는 것이었더라, 생각이 나질 않고 우여곡절 끝에 다 꿰매고 나니 실밥이 삐뚤빼뚤, 마음 같아서는 다 뽑고 다시 하고 싶었지만, 아, 이것은 돼지비계가 아니다. 사람의 몸이었다. 부대에서 그 이등병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나는 늘 미안했다.

한번은 사고로 머리가 깨진 병사가 의무실로 온 적이 있다. 군의관과 고참병들이 병사를 치료했고, 나는 멀찍이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는데, 깨진 머리 사이로 뭔가를 본 것 같았다. 그게 뭐지. 뼈? 뇌? 모르겠다. 아무튼 쉽게 볼 수 없는 신체의 한 부분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의무실 바닥은 피로 흥건했고, 공기에는 비린내가 진동했다. 군의관과 고참병은 식염수 같은 걸로 머리를 소독한 뒤에 큰 병원으로 병사를 후송했다. 지금도 가끔 그 장면이 생각난다. 그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내 입에서는 ‘어~~~허~’ 하는 신음 같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 뒤에도 자주 피를 보았고, 나는 조금씩 피에 익숙해졌다. 어지간한 피를 보고는 신음소리도 나지 않았다.

<닌자 어쌔신>을 보면서도 곧 피에 익숙해졌다. 피에 익숙해지니 그제야 비의 연기가 눈에 들어오고, 액션장면도 좋아 보였다. 중반 이후에는 더 많은 양의 피가 솟구쳐 올랐지만 무덤덤했다. 다른 관객도 그러는 것 같았다. 여자 관객의 괴성도 눈에 띄게 줄었다. 피가 넘쳐났지만 피로 보이지 않았고, ‘피’라고 생각되는 붉은색의 ‘어떤 것’으로 보였다. 비린내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았다. 고통에 적응하고 나면 감각의 문은 닫힌다. 인간은 잊기 위해 스스로 감각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무감각한 몸이 편안하긴 하겠지만 때로는 고통이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주기도 하니까. 때로는 절대 잊지 않아야 할 고통도 있는 법이니까. 라이조가 ‘첫 실습’ 희생자의 시계를 들고 다니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고통과 피비린내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지만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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