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 인터뷰] <아바타>의 제이크 설리
2009-12-30
글 : 김도훈
“280cm 못 넘으면 다 루저라능”

-고작 다리 하나를 고쳐준다는 말에 어딘지도 모르는 행성까지 가서 죽을지 모르는 임무에 뛰어들다니, 역시 해병대다워요.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군요.
=한 가지만 정정하지요. 행성이 아닙니다. 판도라는 위성이에요. 달이나 유로파 같은 위성 말이에요.

-과학자 다 되셨구려. 아무튼 조금 궁금한 게 있어요. 아바타 같은 인공 생명체를 그토록 짧은 시간에 만들어내는 생물학적 기술을 가진 문명이라면 당연히 당신 두 다리 정도는 금방 고쳐야 하지 않나요?
=이 양반이 세상을 아직 잘 모르는구먼. 그럼 대체에너지 개발했다고 다들 석유는 그만 푸나요? 로봇 관절 개발했다고 전세계 모든 장애인들이 로봇 팔다리 달고 다니나요?

-그… 그렇지는 않지요.
=문제는 돈입니다. 기술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합니다. 실용화도 빠른 편이에요. 그러나 신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죠. 21세기 중반 한국에서는 의료보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가의 의약품을 조달하지 못해 죽었다던데요.

-저, 아직은 21세기 초반이라서 그나마 의료보험이 있긴 합니다.
=그렇군요. 역사책에 따르면 21세기 중반에는… 뭐, 암울한 미래를 미리 알려드릴 필요는 없겠군요.

-하지만 당신이 사는 곳은 21세기 초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잖아요. 어쨌거나 지금보다 훨씬 진보한 문명일 텐데요.
=순진한 양반. 세상이 그리 쉽게 변하진 않습니다. 다국적 의약회사들과 정부의 암거래는 먼 미래에도 여전합니다. 보험? 그런 거 소용없어요. 불구의 몸을 고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건 의학적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당신의 자본력 혹은 공정한 정부죠. 후자는 어차피 불가능하고, 전자는 상위 1%나 가능하겠죠.

-암울하군요.
=사람 사는 세상 다 똑같죠 뭐.

-그래서, 그 때문에 나비족으로 살아가길 선택한 건가요?
=그런 이유도 있긴 합니다. 다리 고쳐봐야 지구에서의 삶은 변하지 않아요. 나중에 <아바타> DVD로 나오면 서플을 확인하세요. 우중충한 미래 지구의 모습이 본 영화에서는 잘려나간 터라…. 하여튼 저는 자본과 테크놀로지의 힘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길을 택한 겁니다. 게다가….

-게다가?
=기자 양반. 이건 오프 더 레코드로 해줘요.

-아이고 물론이죠. 제임스 카메론처럼 솔직해지셔도 됩니다. 동료 영화인들 앞에 두고 내가 세상의 왕이라며 소리 지를 정도로 뻔뻔하게 솔직해져도 상관없어요.
=그렇다면 말할게요. 이크란 타보셨어요? 안 타보셨으면 말을 말아.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절벽을 막 활공하는 그 느낌. 캬아, 그거 롤러코스터랑은 비교가 안돼요. F16 타는 것보다 천배는 재미있지.

-어머, 이크란을 무슨 포르셰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냥 포르셰가 아니죠. 포르셰는 세상에서 딱 한명만 타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타는 건 나비족 역사상 단 다섯명만 탈 수 있었다는 초거대 익룡 토루코라고요. 하늘의 제왕. 이걸 타면 어떤 기분이냐면 람보르기니를 250km로 밟으며 쏘나타 탄 서민들을 스쳐 지나가는 기분?

-와아, 그럼 저도 판도라에 가면 그 기분 느껴볼 수 있는 건가요?
=일단 몸부터 바꿔야죠. 지금 그 몸 그대로 판도라에 오면 바로 루저예요. 판도라에서는 키 280cm 못 넘으면 다 루저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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