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애덤스다. <다우트> 이후 일년 만의 재회. 에이미 애덤스는 간이 큰 건지 자신감이 지나친 건지 식탁 밑에서 내일 당장 내다버려야겠다는 주인의 얘길 엿들은 강아지 같은 난감한 얼굴을 하고도 메릴 스트립과의 투톱 주연을 마다하지 않는다. <줄리&줄리아>는 1940년대 파리의 줄리아와 2002년 뉴욕 퀸스의 줄리 얘기다.
줄리아(메릴 스트립)는 살집이 풍만하게 잡히는 40년대의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주부. 겉치레를 싫어하고 실용적인 걸 좋아하는 쿨한 성격이지만, 여자라는 본질과 천성을 온몸과 마음으로 즐긴다. 그래서 요리를 할 땐 남자 유니폼 같은 편한 셔츠를 입고 앞치마는 스커트 허리에 아무렇게나 꽂아둘지언정 사랑받는 ‘하우스와이프’의 표본인 진주 목걸이만은 꼭 챙긴다. 이후 줄리아 차일드가 텔레비전에서 요리쇼를 하는 전설적인 셰프가 된 뒤 독특한 억양의 클로징멘트 ‘본 아페티!’(프랑스어로 “맛있게 드세요”)와 목에 딱 맞게 채운 진주 목걸이는 그녀의 상징이 된다.
줄리(에이미 애덤스)는 별 볼일 없는 중급 공무원으로 9·11 사태의 후유증을 상담하는 지루한 일을 하지만 밤에는 식도락가로 변신해 자신의 블로그에 ‘줄리아 차일드식’ 레시피를 올린다. 줄리아 차일드의 긍정과 낙천, 삶에 대한 사랑은 줄리에게 빛이고 희망이고 구원이다. 한번도 만나지 못했고 서로 다른 시절을 산 줄리아와 더 밀접한 관계를 원하는 줄리에게 남편은 진주 목걸이를 선물한다. 바로 줄리아 차일드의 ‘그 진주 목걸이’다.
따뜻한 감정에 대해서라면 따를 자가 없는 감독 노라 애프런이 만들고 앤 로스가 의상을 맡은데다 음악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줄리가 랍스터와 난투극을 벌일 때 토킹 헤즈의 <사이코 킬러>를 배경음악으로 넣는 센스라니). 그리고 메릴 스트립과 뜻밖의 즐거움 스탠리 투치까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1940년대 파리와 2002년의 뉴욕을 공평하게 분배한 장면들도 즐겁고 ‘르 코르동 블루’와 ‘셰익스피어&컴퍼니 서점’, ‘딘 앤 델루카’ 같은 친숙한 이름들도 반갑다.
무엇보다 <줄리&줄리아>는 죄의식없이 버터와 휘핑 크림, 초콜릿 파이와 마요네즈를 먹는 기분을 기억하게 한다. 고기맛 젤리라는 ‘아스픽’, 닭간과 크림치즈로 속을 채운 닭고기 요리 ‘뿔레 오티 아라 노르망’, 맛있는 디저트 ‘플로팅 아일랜드’(예전에 이태원 르 생텍스에 이 메뉴가 있었다), 줄리아와 줄리의 궁극의 메뉴였던 비프 부르기뇽이 화면에 꽉 찰 땐 냉정한 이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관 따위는 다 잊게 된다. 그저 식욕만 남고, 그 마음이 세상에서 제일 정직하고 가치있는 감정인 듯 느껴진다.